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라 이번주 중으로 노동부 산하에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근면위)가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는 근면위 구성을 마무리한 뒤 노동부장관의 근로시간 면제한도 의결 요청이 나오면 활동을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노조법 부칙에 따르면 근면위는 4월30일까지 근로시간 면제한도를 의결해야 한다. 늦어도 다음주부터는 활동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노동부는 각각 5명의 위원을 지난 19일까지 추천해 달라고 노동계와 경영계에 요청한 상태다. 장관이 선출할 공익위원도 인력풀을 설정해 놓고 내부 협의와 당사자 의사타진 등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면위 활동 시작, 민주노총이 변수
 
노동부는 노동계와 경영계에 위원 추천을 요청하면서 전문가도 포함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소속 조직의 입장을 충실히 따르는 노동계나 경영계 관계자들 외에 전문가들이 포함되는 것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계와 경영계가 노동부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한국노총은 근면위 위원을 현직 임원으로 추천하기로 방침을 정한 상태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추천권한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있다”고 말했다.

경영계도 비슷한 상황이다. 전문가를 포함시키게 되면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의소·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5단체의 관계자 중 일부가 근면위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연말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현대자동차와 계열사들이 경총을 탈퇴했다. 개정안에 대해 단체 간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이는 등 경제단체 내부에 잡음이 생긴 것이다. 경제단체 간 신경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일부 단체를 빼고 전문가를 추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근면위 활동의 주요 변수는 민주노총이다. 5명의 노동계 추천 위원 중 3명은 한국노총에, 2명은 민주노총에 배분될 전망이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다음달 3일 중앙집행위원회, 5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위원회 참가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빠르면 이번주, 늦어도 다음주 초에는 근면위 활동을 시작하겠다는 노동부 계획과 비교하면 위원회가 구성된 뒤에야 민주노총의 최종 결정이 나온다는 얘기다.

민주노총의 결정을 기다리게 되면 노동부장관 의결요청이 있은 뒤 60일 이내에, 4월30일까지 근로시간 면제한도를 결정해야 한다는 현행법을 어기게 된다. 한국노총에서 5명의 위원이 먼저 참가한 뒤 나중에 민주노총이 참가를 결정하면 위원을 바꾸는 방법도 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노동부 관계자는 “장관이 위촉하는 위원을 단 며칠 만에 바꿀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관계자는 “우리 결정을 기다릴 수 없다면 굳이 고민을 하면서 참가 여부를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반박했다.
 
최저임금위와 근로시간면제심의위
 
근면위가 구성된 뒤 어떻게 운영될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기 때문이다. 노조법 시행령에 따르면 근면위에 4급 이상 공무원을 간사로 두게 돼 있고, 전문적인 조사·연구업무를 위해 전문위원을 둘 수 있다. 그 밖에 운영을 위해 필요한 사항은 위원회의 의견을 들어 노동부장관이 정한다.

회의 주기를 어떻게 할지, 산하에 어떤 전문위원회를 둘지, 실태조사와 의견청취를 어떤 방식으로 할지, 위원장의 권한은 어디까지인지 등 확정된 게 하나도 없다. 노동부가 운영규칙 초안을 준비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최종 결정은 근면위가 하게 된다.

때문에 최저임금위원회를 참고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부 관계자는 “최임위 운영방식을 따라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최저임금위와 마찬가지로 근면위도 결정사항을 장관이 고시한다. 위원들의 과반수 참가와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을 하는 방식도 같다. 다만 최임위의 경우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이 각각 3분의 1 이상 출석해야 표결이 가능하다.

올해 근로시간 면제한도 결정은 위원들의 표결로 결론을 내지 못하면 공익위원들이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저임금위와 다르다. 현재 공익위원들이 최저임금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지만,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합의냐, 표결이냐, 파행이냐
 
근로시간면제심의위에서 15명의 위원들이 합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합의하지 않고 표결로 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최저임금위의 경우 표결 없이 노·사·공익위원들이 합의한 경우도 더러 있지만,  노동계와 경영계 중 어느 한쪽이 공익위원의 중재안에 반발해 퇴장한 끝에 표결처리한 사례가 더 많다. 공익위원들이 중재안을 내지 않고 노동계 안과 경영계 안을 동시에 표결에 붙여 결정하기도 한다. 물론 공익위원들의 표가 결과를 좌우한다.

노동계는 근로시간면제심의위에서 이런 사례가 나타나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15명의 위원 중 3명의 공익위원만 어느 한쪽의 입장을 지지하게 되면 결론이 나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직 공무원 출신이 공익위원에 포함될 경우 정부의 의중이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는 셈이다. 중도 성향의 교수들조차 “근로시간면제심의위에 들어가면 들러리를 설 것이 뻔한데 내가 노동계라면 위원회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말할 정도다.

경영계도 이런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노사의 입장차가 평행선만 그리는 것도 능사는 아니지만, 15명 중 몇 명이 결정한 방안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노동계·경영계 모두 반대할 가능성 커
 
근면위에서 공익위원들이 근로시간 면제한도와 총량을 결정한다는 것은 표결에 붙일 특정한 방안에 대해 노사가 모두 반대한다는 뜻이다. 최저임금위에서는 이런 사례가 없었지만 근면위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사관계선진화위원회는 지난해 7월 타임오프제를 뼈대로 한 공익위원 안을 내놓았지만, 노사의 반대로 최종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근면위에서 이 같은 일이 재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럼 공익위원들에게 결정권한이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 정부는 지난달 입법예고한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에는 공익위원 과반수 결정제도를 포함시켰지만, 최종안에서는 삭제했다. 공익위원들이 만장일치로 결정하는 모양새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전운배 노동부 노사협력정책국장은 “지난해 노사정위에서 나온 공익위원 안도 공익위원들의 이견을 조정해서 나온 결과”라며 “공익위원들이 공감대를 형성해 사실상 만장일치 형식을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과 자료 부족 … 결론은 이미 났다?
 
촉박한 시일과 자료 부족도 심각한 문제다.
최저임금위는 87년부터 23년 동안 생계비·유사근로자 임금·노동생산성·소득분배율 등 객관적인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활동해 왔다. 그런데 타임오프와 관련한 객관적인 자료라고 해 봐야 2008년에 나온 한국노동연구원의 전임자임금 실태조사, 한국노총이 지난해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가 전부다.

최저임금위는 노동부장관의 의결 요청이 있은 뒤 90일 이내에 의결하면 되지만, 근면위 의견시한은 60일이다. 짧은 기간 동안 업종이나 규모 등을 아우르면서 누구나 납득할 만한 근로시간 면제한도를 결정하는 것은 역부족이다. 이승욱 이화여대 교수(법학과)는 “노사자율에 맡기지 않고 노동부 산하 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지만, 60일 동안 업종과 규모를 아우르는 근로시간 면제한도를 결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체 근로시간 면제한도는 노동부 머릿속에 이미 그려져 있기 때문에 상급단체 파견 전임자 문제만 결정하면 된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오는 이유다.

 
공익위원들 누가 거론되나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2개월 뒤 15명 위원의 표결로 타임오프 한도를 결정하든, 그 권한이 공익위원들에게 넘어가든 간에 공익위원들의 권한은 절대적이다.
노동부는 내부에서 거론된 공익위원 후보자들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노동부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전문가들을 타진 중”이라고 밝혔지만, 노동부가 말하는 전문가들의 인력풀이 그리 넓지는 않다.
이에 따라 지난해 7월까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사관계선진화위원회에서 활동한 공익위원들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당시 공익위원들은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이철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강성 삼육대 교수(경영학)·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경제학)·이승욱 이화여대 교수(법학)·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인재 인천대 교수(경제학) 등이다.
이들 중 근면위 제도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이승욱 교수는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조성재 연구위원도 공익위원이 될 가능성이 낮다. 지난해 박기성 전 원장 사태와 단체협약 해지에 따른 연구원노조의 파업 등으로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기 때문이다. 다른 한국노동연구원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중도 또는 보수 성향의 박영범 한성대 교수(경제학)·김태기 단국대 교수(경제학)도 이름이 오르내린다. 노조법 시행령은 ‘3급 또는 3급 상당 이상의 공무원 출신으로 노동 문제에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공익위원 자격에 포함시켰다. 이 때문에 노동부 근로기준국장을 지낸 하갑래 단국대 교수(법학)도 거론되고 있다.  김학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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