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이 되면 저 돌아가는 게 좋을까요? 아니, 남을 수 있을까요?”
최근 한국노총 공공연맹 간부들의 술자리.
한 공기업에서 파견 나온 간부는 자조 섞인 질문을 던진다.
그의 말은 지난 1일 새벽 통과된 전임자·복수노조 관련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 이래 현재 처한 공공부문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줬다.
개정 노조법에 따라 공공부문 현장은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아직 법 시행일인 7월1일이 되지도 않았지만 일찌감치 파견전임자 복귀, 전임자수 축소 요구 등의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노조법 개정 이후 공공기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유형별로 살펴봤다.
 
임기 남아도 파견 취소
 
지난해 말, 노조법이 개정되기도 전부터 공공부문 전임자 축소의 신호탄이 울렸다. 한국노총 공공연맹과 금융노조가 대표적 사례다.
공공연맹에는 2개의 상임부위원장직이 있다. 위원장을 좌우에서 돕는 중요한 자리다. 그런데 지난해 말 임기가 2년이 더 남은 한 상임부위원장이 돌연 사업장으로 복귀했다.
1년마다 파견기간이 연장되는 시스템인데 회사측이 이번엔 안 된다며 복귀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같은 달 실장급 2명의 파견전임자도 이미 복귀했거나 복귀가 결정됐다. 본인들이 원해서 돌아가는 형식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노조법 개정 탓이 크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유무형의 회사측 압력이 존재했을 것이란 설명이다.
“요새는 회사측이 직접 문서로 전임자를 줄이라는 식으로 요구하지 않습니다. 증거가 남기 때문이죠. 대신 이사장 등이 지나가듯 노조에게 말을 꺼내는 식이죠.”
 

금융권은 축소요구
 
금융노조 소속 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지부에서는 이미 전임자 축소와 파견자 복귀 요구가 대 놓고 이어지고 있다.
신용보증기금은 8명의 전임자 중 3명만 인정할 수 있다고 대폭 축소를 요구했다. 이 가운데 파견전임자는 3명. 결국 파견전임자가 모두 복귀하고 5명만 유지됐다. 기술보증기금은 5명(파견전임자 1명 포함)의 전임자 중 2명만 인정할 수 있다고 요구했다. 노조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기업은행은 16명(파견전임자 3명 포함)의 전임자 중 절반인 8명만 인정할 수 있다고 고수하고 있다. 파견전임자의 자리부터 위태롭긴 마찬가지다.

이들 사업장은 모두 한국노총과 금융노조에 전임자를 파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한국노총에는 본부장급 파견자도 있어서 이는 곧 총연맹의 문제이기도 하다. 파견전임자의 복귀 문제가 상급단체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근로시간면제한도에서 상급단체 파견 포함 여부를 두고 노-정 간 입장차를 보이고 있어 파견전임자의 자리는 더욱 위태롭기만 하다.
 
지난해부터 줄인 곳도
 
상급단체 파견 취소는 현장에서의 전임자 축소 요구와 맞닿아 있는 문제다. 이미 공공부문 현장에서는 전임자 축소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양대노총 사업장 모두 예외는 없다.
앞서 금융공기업 사업장의 경우도 전임자수를 절반가량 줄일 것을 공통적으로 제시했다. 당장 단체교섭을 시작해야 하는 사업장이 닥친 현실인 것이다.

특히 지난해는 정부의 공공부문 선진화 명목으로 전임자 축소를 포함한 단체협약개정 공세가 높았다.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소속 한국전력기술·건강보험공단이 이때 전임자를 축소했다. 공공노조 사회보험지부는 전임자 22명에서 18명, 한국전력기술지부는 6명에서 3명으로 각각 줄였다. 가스안전공사의 경우는 조합활동시간을 줄여야만 했다.
철도공사도 단협을 일방해지하며 전임자수를 20명만 인정하겠다고 노조에 일방통보한 경우다. 이는 현재의 전임자수와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된다.

노조법 개정 전에 공공부문 사업장에선 전임자수와 조합활동시간 축소가 진행돼왔고 이는 올해 단체교섭에서도 더욱 강도 높게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다.
 
단체교섭 7월 이후로 연기

반면 지난해 단체교섭에서 회사측으로부터 전임자 축소 요구를 받았지만 현행 전임자수를 유지하거나 일단 올 7월 이후로 유보하는 방식으로 접근한 경우도 있다.
한전KPS는 지난달 29일자로 새롭게 단협에 합의했다. 전임자수는 변동이 없었다. 현재 전임자는 파견 1명을 포함해 6명이 단협에서 보장되고 있다. 조합원이 3천700명인 점을 감안하면 많은 수는 아니다. 지난해 합의로 2년간 단협효력이 인정됨에 따라 당분간은 전임자 축소 문제가 쟁점이 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력 노사는 지난달 30일부로 단협에 합의했다. 56세에서 60세로 정년을 연장하되 임금피크제를 적용키로 합의해서 사회적 이슈가 됐던 바로 그 합의다.
회사측의 전임자 축소 요구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다만 노조법 개정 여부를 보고 논의키로 함에 따라 공은 7월 이후로 넘어갔다.
조폐공사는 노조법 개정 후 공기업에서는 처음으로 단협에 전임자임금 지급금지를 명문화했다고 떠들썩하게 했던 사업장이다. 노사는 18일 단협에서 전임자 규정을 ‘3명의 전임자를 인정하고 전임자 감축시 재정자립 여부는 노조법에 따른다’고 수정했다.
 
노조선거에도 영향?
 
이번 노조법 개정이 공공부문 노조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오는 5월 노조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있는 한 공기업 노조의 경우 예년과는 달리 후보자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선거가 4~5개월 남은 시점에는 후보자들이 여러 명 거론되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노조법 시행령과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과정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노조 관계자는 “노조 전임자수가 얼마나 줄어들지, 전임자의 임금 저하나 근무평가 불이익 여부 등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춤거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사례는 앞으로 다른 노조 선거에도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교섭시기 혼란·정부지침 우려

대부분 공공기관에서는 교섭을 언제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근로시간면제 한도 총량시간과 범위 등 아무 것도 결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선뜻 나서기 어렵단 이유다.
민주노총은 ‘현재의 전임자·노조활동 유급보장 시간 총량 유지’를 교섭방향으로 제시하며 상반기에 적극 교섭을 요구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회사측이 4월말 고시결정 전에는 소극적으로 교섭에 임하고 이후 고시 상한기준으로 교섭에 임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높다.

더구나 공공부문의 경우 또 하나의 변수가 있다. 근로시간면제 한도와 범위가 결정돼도 정부가 별도의 지침을 내려 사용자의 대응방안을 하달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양대노총 공공기관노조 모두 동의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와 같이 감사·단협평가·기관평가를 내세우며 세부적 지침을 통해 단협을 강제한다면 공공부문 노사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정부는 이참에 공무원·교원노조의 경우도 전임자임금 지급금지의 원칙을 확실히 세우려 할 것으로 보인다. 행정안전부는 20일 공무원노조가 유급전임자를 두는 단협을 체결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공공부문은 민간부문의 시범사례가 된다는 점에서 파견자 복귀, 전임자 축소 등의 사례는 의미심장하다. 오는 7월 시행되는 근로시간면제제도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조법 개정에 따라 제2의 전운이 감돌고 있는 공공부문 노사관계. 노동계가 어느 때보다도 대책 마련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책마련’ 갈 길 바쁜 양대노총 공공노조 다음달 투쟁계획·지침 확정
양대노총 공공기관노조 모두 노조법 개정이 노사관계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노조법 시행령과 근로시간면제한도·범위가 결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선뜻 대책을 강구하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은 지난 19일 공공기관노조특별위원회 운영위원회를 열고 상반기 단체협약 갱신을 앞둔 임단협 지침과 투쟁방향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선 기존 단협유지를 원칙으로 상반기 교섭을 요구한다는 민주노총 교섭방향을 논의했지만 개정 노조법과 임금체계 개편 상황의 불투명성으로 구체적 협상시기에 대해선 결정하지 못했다. 다음달 2일 다시 논의해 결정키로 했다.
박준형 연맹 정책실장은 “현재 민주노총 투쟁계획에 맞춰가며 교섭과 재정대책을 함께 논의하고 있다”며 “다음달 9일 정기대의원대회 이전까지는 정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맹은 또 정부가 지침으로 개정 노조법 시행 전 단협체결을 유보하거나 근로시간면제한도 고시내용을 초과하는 단협체결 금지 등을 강제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 공공기관노조들의 대정부 공동투쟁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한국노총 공공연맹도 19일 중앙위원회에서 올해 사업계획안으로 ‘노조법 개정 후속조치 대응’을 설정하고 노조법 시행령이 확정되면 2월 중 회원조합 워크숍을 갖고 연맹 지침을 마련키로 했다. 한편으로 회원조합 교육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공공연맹은 “올 상반기 개정 노조법 시행령을 둘러싼 노사정 간 첨예한 대립구도 형성은 물론 공공부문 전임자 축소로 상급단체 파견자의 복귀가 불가피해 보임에 따라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최대위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형석 연맹 정책총괄실장은 “공공기관은 사실상 지난 95년 정부혁신지침에 따라 전임자수의 제한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번에 시행령과 총량시간이 정해진다고 해도 별도지침을 통해 한도보다 적게 설정케 하고 낙하산 인사저지 투쟁 등 정부정책 비판도 통제할 가능성이 높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연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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