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중앙법률원(원장 정광호)은 지난 2005년 한국노총이 노동자 법률지원을 위해 설치한 부설기관이다. 일찌감치 노동법률원을 만들었던 다른 노동단체들에 비해 출발은 늦었지만 중앙법률원은 지난 5년간 차곡차곡 성과를 쌓으며 자기 길을 걸어오고 있다.
이곳엔 패기 넘치는 한 변호사가 올해로 4년째 일하고 있다.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과는 인연이 없었다"는 김형동 국장(35·사진, 변호사).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 1층 무료법률상담소에서 김 국장을 만났다.

“다들 법대 나왔냐고 묻는데요. 아닙니다. 원래 언론인이 되고 싶었죠.”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출신의 김 변호사가 사법시험에 응시했던 계기를 들어 보니 왠지 마음이 짠하다. 98년 3월 군에서 제대하고 사회에 나왔는데, 국가가 부도났단다.
“복학하고 보니 이미 학교는 고시열풍이었어요. 별다른 대안이 없었어요.”
김 국장은 그때부터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4년여 만에 합격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노동’과 인연이 없었다.

“사법연수원 졸업을 한 달 가량 앞두고 예비변호사 전문강좌가 있었는데, 그 중에 노동변호사 강좌도 있더군요. 그걸 들으며 노동변호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의 존재를 알게 됐죠.”

김 국장이 2006년 초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뒤 선택한 곳도 중앙법률원이었다.
“무언가 가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중앙법률원은 당시 부설기관이었지만, 향후 독립적으로 운영하겠다는 한국노총의 비전이 마음에 들었어요.”
막상 노동단체의 법률원에 발을 들여 놓았지만,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비전공자였다. 비법대 출신인 데다, 사법연수원에서 노동법학회 활동도 하지 않았다. 김 국장은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노동운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중앙법률원에서 근무하면서 적지 않은 경험을 했습니다. 노동 문제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 것 같아요. 그럴수록 제대로 알고 제대로 도움을 줘야겠다는 책임감이 듭니다.”
김 국장이 “나의 본질은 법률가”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법률구조를 원하는 조합원은 물론이고 총연맹과 산별연맹 등 각 조직에 조언을 하려면 전문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중앙법률원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무엇보다 조합원 구조사건이 확대일로에 있다. 법률원 설립 초기 40~60건에 그쳤던 구조사건이 지난해에는 130여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산별조직과 외부기관과의 법률자문계약도 늘고 있다. 김 국장과 중앙법률원 동료들의 땀이 이룬 소중한 성과다. 그 과정에서 항만예인선노조가 법원으로부터 근로자성을 인정받았고, 비정규직인 고속도로관리원이 소송을 통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그럼에도 김 국장은 "중앙법률원이 보다 많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아직도 중앙법률원을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중앙법률원은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조합원 구조사건에 대해서는 잘 훈련돼 있어요. 올해는 굵직한 노동사건이 많을 것 같은데요. 조합원들이 중앙법률원의 효용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해야지요. 동료들과 함께 실력을 쌓고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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