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이 없는 게 아니라, 일감을 만들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채길용(50·사진)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지회장의 말이다. 신규선박 수주량이 급감해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회사측 주장에 대한 반박이다. 채 지회장은 30일 오후 서울 갈월동 한진중 건설부문 본사 앞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무능경영이 수주난을 부추겼다"고 주장했다.

한진중은 최근 대형 조선소 가운데 처음으로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지난 23일까지 희망퇴직을 접수한 데 이어 전체 노동자 2천800여명 중 30%를 정리해고하겠다고 통보했다. 회사측은 설계부문 분사 계획도 밝혔다. 조선부문 잉여인력을 비조선부문으로 전환배치하는 자구책도 내놓았다.

한진중의 구조조정은 사실상 올해 초부터 시작됐다. 첫 희생양은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이었다. 한진중은 조선소 가운데 처음으로 협력업체 간 저가경쟁을 부추기는 최저낙찰제를 도입했다. 한진중이 원하는 입찰 요건을 맞추지 못한 중소 협력업체들이 도산하기 시작했다.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퇴직금조차 받지 못한 상태로 해고됐다.

두 번째 희생양은 수습사원과 신입사원이었다. 한진중은 올해 취업규칙을 변경해 신입사원의 수습기간을 3개월 이내에서 12개월 이내로 늘렸고, 수습기간의 임금도 급여의 90%에서 80%로 낮췄다. 장기근속한 숙련노동자라고 해서 희생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회사측은 올해 임금·단체협상에서 △기본급 삭감 △상여금·격려금 전액 삭감 △휴일과 산재 보상비 축소 등 단체협약 일부 변경을 요구했다.

하청 노동자부터 해고, 이번엔 정규직 차례

이런 가운데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까지 나온 상황이다. 현재까지 약 330명의 노동자가 희망퇴직원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측은 앞으로 최소 600명은 더 줄여야 정상적인 회사 운영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진중은 올해 단 한 척의 석박도 수주하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수주물량 감소는 한진중만이 겪고 있는 문제는 아니다. 글로벌 경제위기에 따른 해운업계의 불황은 조선업 수주가뭄으로 이어졌다. 조선업계의 최대 고객인 대형 해운사들은 이미 발주한 물량을 취소하거나 인도 연기를 요청하고 있다.

“회사측 주장은 일감이 없으니 사람을 줄이겠다는 건데요.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지난 10년간 4천277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이익을 냈고, 지난해에는 조섭업계 최고인 5천10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습니다. 올해만 해도 3분기까지 3천300억원의 영업이익과 1천57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고요. 수주 물량도 2012년치까지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한진중의 경영난은 조선업의 구조적 어려움 외에 세습경영에 따른 부작용도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한진중의 수주계약 담당 상무는 조남호 회장의 장남이다. 채 지회장은 “올해 단 한 건도 신규수주를 하지 못한 경영진이 책임을 져야지, 왜 그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답답해했다.

정리해고 반대투쟁으로 새해 맞는 노동자들

여기에 ‘우량 물량’만 수주하려는 업계의 관행도 수주난을 가중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대부분의 대형 조선소들은 업계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수주잔량에 기댄 나머지 신규수주에 매달리지 않았다. 저가 수주를 꺼렸기 때문이다. 가격이 떨어진 선박을 수주하면 다른 선주들로부터 가격인하 재협상에 시달린다. 입맛에 맞는 물량을 고르다 보니 그렇잖아도 부족한 일감이 더욱 부족해졌다. 채 지회장은 “직원의 절반 가량을 내보낼 정도로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다고 주장하기 전에, 회사는 일감 늘리기 노력부터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추진되면서 벌써부터 인력 누수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회사측이 설계부문 분사계획을 내놓자, 해당부서의 직원들이 집단퇴직을 선택한 것이다. 지회는 핵심부서 인력의 집단이탈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채 지회장은 “회사측이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노사가 그동안 체결한 각종 고용안정 협약이 무용지물이 됐다”며 “무능경영의 책임을 노동자에 전가하는 회사측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회는 다음달 4일부터 한진중 부산 영도조선소 앞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한다. 새해를 해고 반대 투쟁으로 시작하는 셈이다. 한진중 노동자들의 구조조정 반대투쟁이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조선업종 노동자들의 격한 투쟁이 예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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