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붐세대는 2차 대전 이후에 태어난 세대를 뜻한다. 미국은 46년부터 64년까지 태어난 7천200만명이, 일본은 47년부터 49년까지 출생한 806만명이 이 세대에 속한다. 한국은 55년생부터 63년생까지 712만명이 해당된다. 베이비붐세대는 청바지와 저항문화를 주도했으나, 대량소비시대를 이끌기도 한 모순적인 세대다. 경제위기에는 해고의 1순위로 전락해 고용불안증을 달고 사는 세대이기도 하다.

젊음은 오래가지 않는 법. 베이비붐세대도 일선에서 은퇴할 시점이 다가왔다. 아름다운 노후를 떠올릴 법하지만 이들의 은퇴는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바로 '고령화' 때문이다. 한국은 2026년이면 고령인구가 20%로 팽창해 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현장에서는 이미 인력 고령화 현상이 뚜렷해졌다. 이대로 가다간 노동인력의 양적 축소로 인한 성장동력의 훼손이 불가피하다.

이런 가운데 지난 14일 노동부·보건복지가족부·여성부 등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내년 업무계획으로 '정년 60세 연장'과 '임금피크제 확산'을 보고했다. 이에 따르면 베이비붐세대가 앞으로 9년간 집중적으로 퇴직할 예정이기 때문에 정년연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내년에 노사민정협의체에서 정년연장 논의를 시작할 계획이다. 현행법에는 고령자 고용촉진을 위해 '사업주가 정년을 정하는 경우 60세 이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의무사항이 아닌 권고사항이다. 사용자가 지키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정년연장을 법제화한다니 환영할 만하다. 8월 한국노총과 한나라당 간 고위정책협의회에서 합의한 정년연장의 '확대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정부의 발표가 산업현장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데 있다.

정년연장을 위한 전제인 임금피크제의 실태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임금피크제는 일정연령 이상으로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일정시점부터 임금을 삭감하는 것을 말한다. 정부는 임금을 줄여 고령인력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민간기업의 임금피크제 도입률은 5.7%에 불과하다. 그나마 공공기관은 26.7%에 해당돼 민간기업보다는 훨씬 웃돈다. 정부가 적극 권장한 탓이다.

임금피크제가 인기 없는 이유는 뭘까. 기업들은 정부의 전폭적 지원이 있으면 모를까, 고령인력의 고임금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노동계도 마찬가지다. 정년이 연장되는 것도 고용이 연장되는 것도 아닌데 줄어드는 임금을 수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임금피크제 도입 유형 가운데 정년보장형이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정년연장이나 고용연장형은 민간기업에서 많이 채택하고 있지만, 그 수는 턱없이 적다. 고령인력이지만 기술인력을 확보하려는 몇몇 대기업에 국한된 현상이다. 되레 공공기관은 정년보장형을 선호한다. 정부도 정년'연장형'보다 '보장형'에 중점을 두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조만간 임금피크제 '표준모델안'을 발표할 예정인데, 아마 정년보장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대해 기재부는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에 역행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게다가 노동부는 노동자대표의 동의를 얻어 도입할 수 있는 임금피크제를 개별 노동자의 동의만 있으면 가능하도록 하는 법 개정마저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정년연장을 법제화한들 노동계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실효성은 없고 포장만 그럴 듯한 정책으로 여기지 않겠는가. 그것도 노동조합마저 따돌리고 개별 노동자의 동의만 얻어 임금피크제를 실시하겠다고 하니 노동계는 수긍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이미 기재부는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에 따라 임금피크제뿐 아니라 개별연봉제와 성과급제를 함께 도입하겠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노동계는 정년연장이라는 화려한 포장 안에 임금체계를 유연화하는 수단으로 임금피크제를 끼워넣었다고 비판한다. 말이 '유연화'지 임금을 삭감하려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연금수급 연령을 높이는 대신 기업들은 정년을 연장하는, 이를 전제로 일정 시점부터 임금을 줄이는 방식은 외국에서도 이미 시행해 온 고령사회 대비책이다. 우리 정부의 방식은 이러한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다. 때문에 노동계의 주장은 근거없는 낭설이 아니며 반발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정리해고라는 벼랑으로 내몰더니 이제는 임금피크제로 생활임금마저 삭감하는 것은 베이비붐세대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고령사회에 대비하고자 한다면 베이비붐세대가 겪고 있는 고용불안증부터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만 임금피크제가 정리해고 대체수단이나 인건비 절감 수단으로 비춰지지 않을 것이다. 이를 전제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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