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노동조합이 법적 권리마저 정당하게 행사할 수 없는 시대가 됐습니다. 법치국가에서 법에 따라 파업을 하는 게 불법입니까. 대통령 마음에 따라 합법도 되고 불법도 되니 대통령 의중을 모르면 노동조합도 운영할 수가 없는 세상입니다.”

김기태(47) 철도노조 위원장은 “지극히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파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파업참가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며 “지금 가장 속이 타는 것은 대통령일 것”이라고 말했다. 1일 오후 과천 정부청사에서 경제부처 장관 합동기자회견이 열린 시각, <매일노동뉴스>는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철도 노사관계가 악화되면 그만큼 경제에 미치는 타격이 크기 때문에 하루빨리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 ‘타협하지 말라’고 주문하고 있어 출구가 꽉 막혀 있다"며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허준영 사장, 교섭결렬 선언하니 박수 쳐”

당초 철도노조 안팎에서는 이번 파업이 사흘 정도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벌써 엿새째를 넘겨 철도 사상 최장기 파업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파업이 길어지고 있는 원인으로 김 위원장은 허준영 한국철도공사 사장을 지목했다.

“경찰청장 출신인 허 사장은 노사관계를 너무 몰라요. 무지한 데다 기본적인 상식조차 없습니다. 지난 9월 허 사장이 참석한 교섭석상에서 임금협상이 결렬됐는데요. 노조가 교섭결렬 선언을 하니까 그 자리에서 허 사장이 ‘(협상을)다 마쳤다’며 박수를 쳤어요. 사장이 박수를 치니까 사측 교섭위원들도 얼떨결에 박수를 치더군요. 이해가 됩니까?”
김 위원장은 “허 사장이 경찰사회에서나 통할 법한 상명하복식 사고로 노사관계를 이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60여년간 유지·개선된 단체협약을 하루아침에 해지한 것이나, 노사 대표가 참가하는 본교섭이 4차례밖에 열리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기회에 노조의 버릇을 고치겠다’는 허 사장의 발언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김 위원장이 분석하는 이번 파업의 핵심 쟁점은 ‘임금·근무체계 전환’이다. 공사는 연봉제·임금피크제 도입과 비연고지 전출, 직렬 간 전환배치 허용 등을 통해 인력을 보다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운영하기를 원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노조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며 “충분한 조율과 시범운영을 거치면서 방법을 찾자고 요구했지만 허 사장은 소통 자체를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김 위원장은 “지도부조차 확신하기 어려웠던 이번 파업을 도와준 일등공신이 허 사장”이라며 “만약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다면 ‘무능력의 극치인 허 사장은 정부 정책을 시행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인물’이라고 충고하고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불법 생떼 쓰지 말고 대화의 길 열어라”

기획재정부·노동부·지식경제부장관들은 이날 ‘철도파업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강경한 태도로 인해 노사가 협상타결을 위해 만날 기회조차 봉쇄되고 있다. 파업도 들어가기 전에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했던 공사측의 대응과 다를 바 없다. 김 위원장은 “노조가 아니라 정부와 사측이 국민을 볼모로 잡고 파업을 유도하고 장기화를 부추기고 있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노조의 입장은 초지일관 ‘대화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단협 해지 통보로 불가피하게 파업에 들어갔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았어요. 실익 없는 실무교섭 말고 노사 대표가 직접 머리를 맞대고 협상을 해야 이번 사태가 해결됩니다. 대화를 해야 사태를 해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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