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 암 역학자이자 국제암연구소(IARC)의 수장이었던 존 히긴슨은 세계의 지역별 암 발생률을 분석하면서 “모든 암의 80~90%는 환경 요인(Environmental factors)때문에 발생한다”고 선언했다. 여기서 환경은 전 생애에 걸쳐서 경험하는 것으로 먹는 것·사는 장소·일하는 곳(작업장)·숨 쉬는 공기·먹는 물·결혼여부 등을 모두 포함한다. 지난 64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러한 환경적 요인을 관리(통제)한다면 전체 암의 4분의 3이상은 예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환경적 요인이라고 해서 모두 관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형질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관리하기 어렵다. 반면 흡연·음주·건강에 해로운 음식물 등 생활습관과 관련된 요인은 개인선택에 따라 관리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오염된 대기나 수질·토양·열악한 작업환경은 어떨까. 이러한 요인들은 대부분 개인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개인이나 조직 또는 사회가 이 문제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결정함에 따라 악영향을 회피하거나 줄일 수 있다. 즉, 다양한 환경적 위험요인 중에서 선택과 통제가 가능한 요인을 우선 제거하는 것이 암 예방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오래전부터 IARC와 같은 국제기구나 외국 정부기관에서는 화학물질(또는 물리적 인자도 포함)의 발암성을 확인하고 그 목록을 공표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발암물질을 확인·공표하는 것이 암 예방의 최우선과제라고 인식하고, 이를 통해 1차 예방(발암물질 금지 또는 대체를 통한 사전 예방)을 촉구하고 동기를 부여했다. 유럽을 비롯한 선진외국에서는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정부의 발암물질목록 외에도 최신 연구결과를 참고해 발암물질·돌연변이물질·생식독성물질·생체축적물질·환경호르몬 등 환경과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물질들(고위험물질)의 자체 목록을 작성해 공표해 왔다. 활동의 목적은 노동자·시민에게 올바른 발암물질 정보를 제공하고 정부의 실질적인 관리를 촉구하거나 기업을 압박해 개선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이러한 운동에 노키아·소니에릭슨 등의 기업은 물질금지나 대체·공정변경 등으로 답했다. 기업 스스로 고위험물질 금지계획을 수립해 추진한 사례도 있다.

암 예방과 발암물질의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서는 발암물질 목록을 작성해 공표하는 것이 노동자·시민의 건강을 보호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항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 또는 시민·사회단체는 이와 같은 노력이 없거나 부족했다. 다행히 지난 4월 노조·시민환경단체·전문가 등 단체와 개인 100여명으로 구성된 발암물질감시네트워크가 발족했다. 감시네트워크는 발암물질 감시운동의 일환으로 최신 자료를 종합해 발암물질목록을 작성 중에 있으며 가까운 시일 내에 이를 공표할 예정이다.

최근 한 사업장 노조 요청으로 안전보건교육을 진행했다. 교육주제는 발암물질이었다. 사전에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물질목록을 받아 외국의 발암물질목록과 비교해 물질별로 암 호발부위 정보를 전달하고 협소한 국내 발암물질 관리규정도 설명했다. 아울러 감시네트워크에서 앞으로 발암물질목록을 공표하고 노동자가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노동안전담당자가 제대로 이해하고 한 발짝 더 나가는 방향까지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런 목록이 있으면 정말 좋겠네요. 교육도 확실하겠고. 발암물질이 어느 공정에서 쓰이는지, 조합원들이 몇 명이나 취급하는지 환기는 적절한지 감안해서 위험도에 따라 관리하면 되는 거죠? 측정이나 검진에서 다룰 수 있는지 검토해보고…. 노사가 자체적으로 추진해 볼 수도 있겠는데요?”

선택과 통제가 가능한 발암물질을 다루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올바른 발암물질 정보가 노동자·시민에게 제공되고 더 나아가 정보가 소통되면 발암물질 사용을 금지하는 변화를 만들 수 있다. 노동자 ·시민이 발암물질에 대한 알권리를 적극 요구하고 눈과 귀를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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