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이요? 비정규직이 핵심이죠. 그런데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를 조직하기도 어렵지만 비정규직은 방법이 없어요. 노조에 가입했다는 얘기만 들리면 사용자들이 계약해지부터 해버리니. 결국 대부분의 조합원이 노조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서약서를 쓰고 재계약을 하곤 합니다. 계약이 해지되고 나면 생계대책이 없으니,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정종덕 한국노총 중부일반노조 부위원장이 털어 놓은 경험담이다. 그는 2004년 초 중부일반노조에 들어가 올해까지 5년에 걸쳐 노동자 조직사업을 벌였다. 일반노조에 들어갔던 첫 해 7명에 불과했던 조합원은 5년 사이에 600여명으로 늘었다. 정 부위원장은 “꽤 성공한 사례에 속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비정규·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가 어렵다는 얘기다.

노동자 다수는 중소영세사업장 비정규직

노동계에서 비정규노동자와 중소영세사업장노동자를 조직하는 사업이 핵심으로 떠오른 지는 꽤 오래 전이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면서 반대로 노동운동은 거듭 쇄락하고, 노조 조직률은 떨어졌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수를 앞지르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

지금도 이런 추세는 계속되고 있다. 2008년 8월 현재 전체 노동자 1천610만명 가운데 비정규직은 840만명, 52.1%에 달한다. 비정규직 증가는 중소영세사업장이 이끌었다. 100인 미만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의 60.3%, 5인 미만 사업장의 86.3%가 비정규직이다. 가뜩이나 우리나라는 중소영세사업장이 많은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100인 미만 중소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78.6%인 1천226만명으로 절대 다수라 할만하다.

노동계가 비정규노동자와 영세사업장노동자의 조직화를 시도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물론 비정규 노동자와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는 한 묶음이 됐다.

정 부위원장은 “비정규·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를 조직화해도 노동자 숫자가 적고 고용도 불안해 사용자의 협박이나 탄압에 쉽게 무너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부일반노조가 그나마 조합원 숫자를 늘릴 수 있었던 것은 공기업을 중심으로 조직화 사업을 펼쳤기 때문이다. 공기업은 사기업보다는 노조 탄압이 덜하고, 기업 이미지에도 민감하다. 여론이 악화될까 두려워 마음대로 해고나 계약해지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사기업은 조직화 사업에 시간과 공을 많이 들여도 실패하기 일쑤다. 정 부위원장은 “비정규직은 계약 초기 시점에 투쟁을 시작해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계약자체를 무효화시키거나 사실상의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키지 않으면 얼마 안 가 무너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소영세사업장은 조직력이 약해 단체협약을 맺기가 어렵다”며 “일반노조에 속해 있는 다른 조합원들의 지원을 얻어 사용자를 압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비정규직 조직화, 기업·산별 혹은 지역노조?

비정규·중소영세사업장 조직화는 다양한 형태로 시도되고 있다. 대기업의 사내하청이나 1차 하청노동자는 다소 쉽게 노조를 만들고 있다. 정규직 노조의 도움을 얻기도 하고, 독자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는 이점을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2·3·4차 하청처럼 대기업 하청 피라미드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조직화는 더더욱 어렵다. 지원군이라 할 만한 정규직 노조의 조직력이 미치지 못하는 데다, 사업체 지불능력이 부족해 당사자인 노동자도 눈치를 보고 사용자들은 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규모가 작은 사업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은 두말할 나위 없다.

기업단위 노조를 설립하기 어려운 이들 영세업체 노동자들은 산별노조나 지역일반노조에 가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000년대 초반 산별노조 운동이 활성화됐던 시기에는 산별노조가 비정규·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노동운동 세력이 좌표로 삼았던 ‘산별노조론’에는 이런 비정규·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에 대한 희망도 섞여 있었다.

손정순 고려대 강사(경제학 박사)는 “2000년대 초부터 산별노조가 완성적인 형태로 건설됐다면 산업별 교섭체계나 재정과 인력 집중을 통해 비정규·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에 좋은 토대를 쌓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공장의 산별노조 전환이 늦어지고, 거기에 산별노조 운동이 정체되면서 역량을 많이 소실했다”는 회한 섞인 발언이 뒤따랐다. 그는 “지금으로선 비정규·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 대안이 뚜렷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결국 돈과 사람이 관건

비정규직이나 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와 관련해 전문가나 활동가들은 “기업별노조 틀로는 조직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산별노조를 통해 약진할 수 있다는 기대는 바라는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반성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부쩍 ‘지역노조를 중심으로 한 조직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지역노조 역할론’은 지역연대를 활성화해야 노동운동이 살 수 있다는 주장과 맞물려 증폭되고 있다. “노동자의 지역운동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운동적 가치에서 보자면 지역본부나 지역노조를 통한 비정규 중소영세사업장 조직화가 바른 방향”이라는 것.

문제는 재정과 인력이다. 노동계에서는 여전히 산별연맹(노조) 중심의 비정규 중소영세사업장 조직화를 공식 방침으로 내세우고 있다. 재정이나 인력은 지역노조보다 산별노조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정규직 중심인 단위노조와 총연맹이 사실상 비정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에 관심이 없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양대 노총의 대응방안은 비슷하다. 총연맹이 중심이 돼 특정 공단 같은 전략 거점이나 업종을 선택하고, 그곳에 집중적으로 인력을 투입해 비정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이다. 이 모델은 노동유연화가 첨단을 달리는 미국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최대 산별노조인 서비스노조(SEIU)가 80년대 말에 벌인 ‘청소부에게 정의를(Justice for Janitors)’이라는 운동이 그것이다.

미국 서비스노조는 전체 예산 가운데 25%를 투입해 비정규노동자 조직화에 나섰다. 미국 노조들이 평균 5%를 비정규노동자 조직화에 투입하는 것이 비하면 무려 5배에 달하는 예산이다. 서비스노조는 늘어난 재정을 바탕으로 조직활동가를 키워내고 특정 지역의 청소부를 조직하면서 큰 성과를 냈다. 특히 서비스노조는 ‘청소부에게도 인간다운 권리(정의)를 보장하자’는 내용으로 지역시민단체와 여론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전략적 캠페인을 벌이면서 노동운동이 지역운동으로 확장되는 성과를 낳기도 했다.<상자 기사 참조>

전략적 조직 활동 시험 중

한국노총은 2005년 이용득 집행부 시절 “현장과 조직 강화를 위해 10년 안에 비정규직의 10%인 80만명을 조직하겠다”는 이른바 ‘텐-텐(10-10) 플랜’을 세웠다. 플랜에 따라 비정규 조직화를 목표로 하는 비정규실이 따로 설치했다.

당시 한국노총은 지역 거점을 선정하고, 총연맹과 산별·지역지부가 함께 거점에서 일정 기간을 머무르면서 집중적으로 비정규직을 조직하는 사업을 펼치기로 계획했다.
울산·마산·창원 등 주요공단 지역을 목표로 정했다. 그러나 재정과 인력이 투입되지 않아, 구호성 사업에 그치고 말았다.

조기두 한국노총 조직본부장은 “다양한 방안도 내놓고 시도도 했지만 이들을 노조로 묶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다”며 “지역지부를 통해 조직화 사업을 펼치려 하고 있지만 여전히 재정과 인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전략조직화 기금을 바탕으로 비정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 사업에 나서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2005년부터 24명의 조직활동가를 신규 채용해 각 연맹에 배치하는 1기 전략조직화 사업을 펼쳤다. 민주노총은 같은 해 50억원을 목표로 전략조직화 기금을 조성했다. 2009년 8월 현재 모금된 액수는 21억원이며 이 가운데 12억원이 1기 전략조직화 사업에 쓰였다.

금속노조의 ‘1사 1노조’ 사업이나 공공운수연맹의 환경미화원 조직사업, 민간서비스연맹의 화장품·식음료 판매원 조직화 등이 이러한 전략조직화 사업 가운데 하나로 진행됐다. 조직활동가 24명 중 15명이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2기 전략조직화 사업에는 ‘선택과 집중’에 역점을 둘 계획이다.

민주노총 본부가 조직활동가를 지속적으로 운영하면서 특정 지역이나 업종을 선택해 집중적으로 조직활동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조직화 대상으로 선정된 업종을 포괄하는 산별연맹이나 해당 지역본부 간부가 이러한 조직활동에 결합한다. 1기 전략조직화 사업이 조직활동가들이 연맹별로 흩어지면서 집중성이 떨어졌고, 조직화 성과가 기대에 비해서는 미미했다는 평가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이밖에 이주노동자나 청년노동자 조직화 방안도 세우고 있다. 이승철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은 “법·제도 개선 투쟁과 함께 비정규 중소영세사업장 조직화에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를 형성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노총이 앞으로 3년간 총연맹과 산별연맹·지역본부는 물론 해당 지역 비정규·인권운동단체들이 참여하는 전략조직 공동사업단을 구성해 전략적 조직화 사업을 펼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조직화 방식 갈등, 미국노총의 분열로
우리나라도 ‘비정규 제3노총론’ 등장
서비스노조(SEIU)는 조합원 140만명의 미국 최대 산별노조다. 미국 내 노조 가운데서도 미조직 조직화 사업에 가장 활발하게 나서는 노조로 평가받는다. 조합원은 병원·교육과 공공부문 노동자같이 안정된 일자리를 가진 노동자는 물론 청소부와 경비원(건물유지) 등 비정규노동자까지 포괄하고 있다.
서비스노조는 80년대부터 조직률 하락을 경험하면서 미조직 조직화 사업에 뛰어들었다. 서비스 산업의 발달로 조직 대상은 늘었지만 노조가 없는 사업장과의 경쟁에서 뒤쳐지면서 오히려 조합원이 줄었기 때문이다.
서비스노조 조직사업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80년대 말 로스앤젤레스에서 벌인 청소부에게 정의를(Justice for Janitors)‘라는 운동이다. 서비스노조는 재정 중앙집중이라는 산별노조의 장점을 이용해 전체 예산의 25%를 조직 활동에 사용했다.이 운동은 지역사회운동과 맞물려 비정규직은 물론 소규모 사업장 조직화 성공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에서도 다른 지역은 물론 다른 업종 노동자를 조직하는 사례로 전파됐다. 서비스노조는 조직화 사업에 △재정·인력 집중 △지역사회·여론과의 연대 △조합원 대중을 동원한 물리적 투쟁 등의 방식을 사용했다.
민주노총이 2006년 발간한 ‘비정규 노동자 조직화 방안 연구’를 살펴보면, 서비스노조는 2005년에 미국 노조총연맹(AFL-CIO)과 조직화 방식을 두고 첨예한 갈등을 일으켰다. 이들은 존 스위니 AFL-CIO 위원장이 조직사업에 자원을 우선 배분하겠다고 밝혔으나 말만 했을 뿐 실천이 없었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서비스노조는 결국 운수노조와 식품사업노조 등과 함께 AFL-CIO를 탈퇴하고 ‘승리를 위한 변화 연합(Change to Win Coalition)’을 결성했다.
우리나라 노동계에서도 최근 “비정규직 중심의 제3노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 또한 우리나라의 총연맹이 대기업 정규직 중심으로 구성되면서 비정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를 등한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비정규직 3노총론’은 아직 구체적 흐름이 없는 구호성 주장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존 노동조직이 비정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에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역시 미국 노동계의 전철을 되밟을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김봉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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