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7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공기업 및 공무원들이 올해와 내년 2년 동안 연속 임금동결에 자진 협조해 준 것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과연 자진해서 협조한 것일까. 정부에 따르면 공공기관 종사자 임금이 2년 연속 동결된다. 금융공공기관의 경우 5%가 삭감된다. 학자금 무상지원과 사내근로복지기금 출연도 통제된다.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10년도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편성지침안’을 의결했다. 내년 공무원 임금도 동결하기로 했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원성이 높지만 정부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하다. 정부가 공공부문의 임금결정에 개입한 것은 꽤 오래됐다. 그런데 최근에는 세세한 부분까지 손을 대고 있다. 정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공무원·공공기관 임금, 어떻게 봐야 할까.



“정부 지침 때문에 임단협조차 파행 거듭”
김기태 철도노조 위원장




한국철도공사와 임금·단체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다. 원인은 공사가 ‘정부 지침이므로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적 효력조차 없는 정부 지침이 ‘강제적 기준’으로 둔갑해 노사관계를 파탄내고 있는 것이다.
‘자율교섭’은 노사가 원만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정부는 말로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라’고 하지만 지침을 남발하면서 노사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2010년 공공기관 예산편성지침’ 역시 마찬가지다. 노사가 결정할 사항인 임금부터 각종 복지수준을 정부가 통제하고 있다. 정부는 공기업에 과도한 복지혜택을 줄인다는 명목을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철도노동자들은 학자금 무상지원을 받은 적도 없고 ‘과도한 의료비 혜택’도 전무하다. 사내복지기금은 단 한 푼도 없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부패집단인 양 매도하고,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의 희생양으로 삼는 방식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공공부문 노사관계는 수십 년간 노사가 만들어온 역사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대화와 토론으로 구성원 내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우선이다.


“지금은 노조와 사장 필요 없어”
정화영 한국도로공사노조 위원장




정부는 말로는 법과 원칙 강조하면서 실제로는 지키지 않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단체협약을 다 뜯어고치라고 하고 임금과 복지수준을 다 끌어내리라고 한다면 노사가 있을 필요가 뭐가 있는가. 엄연히 노동법이 있고 단협이 있다. 하지만 정부에게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지금은 노조와 사장이 필요 없는 상황이다. 노사 단체교섭도 할 필요가 없다. 정부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데 교섭이 왜 필요한가.
노조 위원장으로서 조합원에게 너무 부끄럽다.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자신을 볼 때 자괴감마저 느껴진다. 이렇게 되면 누가 제대로 노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2년째 임금동결이 된다는 것은 2년 연속 실질임금이 삭감된다는 의미다. 조합원 생활에 타격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말할 필요도 없다.
양대노총 공공기관노조들이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정책에 반발하고 있지만 정부는 보지도 듣지도 않고 있다. 노동자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일방적으로 정책을 발표한다.
오늘도 정부청사 앞에서 양대 노총 공공기관노조들이 간부 결의대회를 갖고 대정부 교섭을 촉구했지만 여전히 쇠귀에 경 읽기다. 정부가 임금이든 단협이든 법에 정해진대로 하면 된다. 단협을 고치라고 하는 정부가 또 어디 있겠는가.


“공공부문 노동계 연대 강화해야”
박홍수 한국거래소(통합)노조 위원장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편성지침안은 공공부문의 자주적인 노사관계에 대한 매우 큰 압력이다. 정부가 폭력적인 방법으로 공공부문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완전히 없애려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국거래소(통합)의 경우 올해 임금삭감에 합의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내년에도 그럴 생각이 없다.
정부는 이번 지침에서 공공기관은 동결인데 반해 금융공기업은 내년에도 5% 이상 임금을 삭감하라 했다. 금융공기업은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에 가장 취약하다. 고임금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정부가 ‘배고픈 건 참아도 배`아픈 건 참지 못 한다’는 국민 정서를 십분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중요한 문제는 이제 노동계가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하는 점이다. 그래서 공공부문의 노조 간 연대강화를 제안한다. 공공부문 사업장의 노조들은 같은 위기의식을 가지면서도 노조끼리 연대는 부족하다. 공분은 있지만 연대투쟁의 전선은 만들지 않고 있다. 더 이상 개별 사업장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로 연대를 뒤로 미뤄서는 안 된다. 공공기관에 대한 정부지침은 사업장 단위에서 절대 막아낼 수 없다. 정부 탄압에 각개격파만 당하기 때문이다.


“공무원 당사자와 보수협상 논의하자는 것”
정의용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사무총장




자진 협조했다는 말은 직선적으로 표현하면 MB 혼자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어이없는 일이다. 보수를 동결한 것을 동의해 줄 수는 없지만, 현재 총체적인 경제위기 상황에서 공무원의 이익을 위해 동결을 부정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공무원 당사자와 보수와 관련해 논의하고 협상하자는 것이다. 어차피 정부의 입장도 이해한다. 내년 이후에는 반드시 임금과 관련해 논의해야 한다. 다음주 공무원노총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찾아가 얘기할 것이다. 내년에 임금을 인상해달라는 얘기는 안 한다. 다만 당사자하고 논의를 하자는 것이다.
공무원들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일이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자기들 임의대로 발표한 것이다. 더 이상 독단적인 정책 운영은 하지 말아야 한다.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공무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면 당연히 동참한다. 국가경제·서민경제 살리기에 충분히 동참할 수 있다. 하지만 4대강 사업처럼 헛돈 쓰는 데 예산을 쓰기 위해 서민의 허리띠까지 졸라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고통 감내를 왜 하위직만 해야하나”
라일하 통합공무원노조 사무처장




공무원노동자들은 2002년부터 거의 2%씩 임금을 올렸다. 호봉승급 인상분이어서 물가인상률을 감안하면 마이너스였다. 지난해에도 사실상 5% 임금이 삭감됐다. 정부는 경제위기 이후 공직부문이 고통 감내를 선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생계형 노동자에게만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정부의 예산은 정해져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부자감세 정책 때문에 세수는 늘어나지 않은 반면 정권이 쓰고 싶은 돈은 많아졌다. 대표적인 사업이 4대강이다. 다른 부처들은 배분됐던 돈을 조금씩 줄이거나 사업을 폐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공무원이나 공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해 충당하려는 속셈인 것 같다. 필요한 비용을 하위공무원들의 임금이나 각종 수당예산을 축소해 사업비를 마련할 가능성이 높다.
공무원노조가 압도적인 찬성률로 통합하고 지도부를 구성한 것은 정부에 대한 공무원 노동자들의 반발이 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계문제와 관련해서 공무원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있다. 조합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모아서 대정부 투쟁에 나설 것이다.


“지침은 공통기준일 뿐”
김성길 기획재정부 정책총괄과 사무관


정부의 예산편성지침은 공공기관들의 예산편성을 위한 공통기준일 뿐이다. 지침을 기준으로 경영진이 불합리한 부분을 바꾸면 된다. 말 그대로 기준이다. 정부의 지침은 법적으로 보장돼 있다. 정부가 노사 간 협상을 강제할 권한은 없다. 지침을 기준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은 경영진의 노력에 달려있다. 노사교섭을 무력화 시킨다는 노조의 주장은 과도하다.
그리고 노조에서 주장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면 반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동안 언론이나 감사원·국회에서 공공기관의 불합리한 관행에 대해 많은 지적이 나왔다. 오죽하면 ‘신의 직장’이라고 하겠나. 공통기준을 제시해 그동안의 잘못된 관행들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예산편성지침이 합리적인 기준없이 정해진다고 하는데, 지침은 정책적 판단 사항이다. 공공기관의 주인은 국민이다. 충분히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해 판단을 하는 것이다. 노조가 원한다고 다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공공기관이 일반기업처럼 이윤을 내는 것도 아니라 더 신중하게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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