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동운동이 위기라고 한다. 노조운동 전체에 관해 거창하게 감히 말하지 않겠다. 다만 필자가 10년 동안 몸담았던 금속노조(연맹)를 보자. 금속노조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현대자동차지부와 기아자동차지부의 선거에서 조합원들은 산별노조, 즉 금속노조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이탈현상이 두드러졌다. 선거공약으로 기업지부 존치를 내세우거나 금속노조를 탈퇴해 기업별노조로 전환을 주장한 후보가 선전했다. 금속노조는 기업지부로의 전환을 추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금속노조가 출범 이후 가장 중요한 과제로 내걸어 온 산별교섭구조는 아직도 요원하다. 분명 현재 금속노조는 위기다.

그러면 무엇이 이 위기를 만들었는가. 이에 대한 진단은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 자본이다, 정권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다, 대기업지부다…. 그러나 필자는 감히 단언한다. "금속노조다."

2. 반문할지 모른다. 어떻게, 감히, 설마, 그래도 금속노조라고 단언할 수 있느냐고. 금속노조는 2001년 2월 금속산업연맹 소속 사업장들이 조직형태 변경을 통해 산별노조로 출범했다. 그리고 2006년 11월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대우자동차 등 대공장노동조합까지 통합해 조합원 15만명 규모의 산별노조로 새롭게 출발했다.

산별전환 이후 금속노조는 모든 권한을 가졌다. 조합원을 위한 일체의 교섭권 및 체결권은 금속노조 위원장이 갖게 됐고, 파업 등 쟁의권한도 금속노조로 집중됐다. 금속노조 규약 제8장 교섭과 쟁의편을 살펴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다. 이것은 조합원의 임금 등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과 투쟁이 금속노조의 몫으로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조합원과 노조활동을 위해 단체협약 체결을 통한 권리를 확보하고, 그 확보된 권리를 보호하는 것은 금속노조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금속노조는 조합원의 권리 확보와 보호를 위한 투쟁은 방치됐다.

금속노조는 산별교섭이 모든 것이었다. 조합원의 권리 확보를 위해 금속노조가 내세웠던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조합원들이 절박하게 요구하는 것이었는가. 금속노조의 총파업은 산별교섭 쟁취를 위한 것이었다. 투쟁은 교섭구조에 관한 것이었다. 조합원의 권리를 확보하고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투쟁은 과거 기업별노조였던 지부·지회 등 사업장 조직에 맡겨 놓았다. 심지어 산별교섭을 이유로 사업장 교섭 타결을 지연시키기도 했다. 조합원에게는 조합원의 권리확보를 위한 협약 체결에 산별노조는 무관심했고, 오히려 저해하는 것으로 보였다. 나아가 사업장 조직이 조합원의 권리보호를 외면해도 방치하는 사례까지 있었다. 금속노조는 지부집단교섭을 통해 사업장 협약 체결에 관여했지만, 형식적인 교섭구조에만 관심을 뒀을 뿐 사업장 협약 조항의 구체적인 내용은 언제나 사업장의 몫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속노조 누군가는 대공장 정규직운동은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공장 정규직 조합원은 산별노조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었다. 실제로는 대공장 정규직의 노조운동에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금속노조가 희망이 되지 못했다. 누군가는 대공장 정규직이 양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대비해 비정규 노동자의 현재 권리상태가 정규직 노동자 때문인 것으로 인식시켰다. 산별노조가 대공장 정규직 조합원의 교섭을 통한 권리 확보와 그 보호를 방치하면서 정규직 조합원의 권리 확보를 위한 교섭의 내용은 노조의 관심이 아니었고, 관찰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것이 비정규직의 것과 비교되면서 노조는 대공장 정규직이 양보해야 비정규직에 나눠 줄 것이 있다는 자본·권력·언론의 선전공세에 그대로 노출됐다. 금소노조가 방치하면서 사업장 조직은 그 조합원에 한정된 협소한 시야와 이해에 갇혀 사업을 했고, 자기 조합원이 아닌 비정규 노동자는 보호대상이 아니었다.

3. 노조는 조합원의 권리 확보와 확보된 권리의 보호를 존재한다. 노조가 이를 수행하지 않으면 조합원이 외면하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이것을 노조가 하지 않으면 조합원은 이를 하겠다고 하는 자, 그것이 어느 누구, 어느 정파, 비록 사용자에 가까운 세력의 누구라도, 사업장 조직이든 아니든 그들을 선택하고 그들이 하도록 할 것이다. 금속노조에서는 그랬다. 교섭구조가 모든 것이었고, 조합원의 구체적인 권리 확보를 위한 협약은 사업장의 몫이었으며, 이를 위한 실질적인 교섭과 투쟁은 사업장 조직이 수행했다. 조합원은 지부·지회 등 사업장 조직에 의존해 고용과 권리를 지켜야 했다. 2001년 노조가 설립된 후, 2006년 대공장이 가입한 이후에는 더욱더 구조조정이 일반화됐고, 조합원의 고용보장과 확보된 권리는 매우 위태로웠다. 노조가 방치·외면한 상태에서 조합원은 사업장 조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사업장 조합원에겐 산별노조는 뜬 구름이었고, 그 구호는 공허했다.
 
산별노조는 전체 조합원을 위한 교섭구조라는 꿈을 꿨지만, 정작 조합원은 고용과 권리가 침해되는 현실 속에 살고 있었다. 금속노조가 산별교섭 쟁취를 외칠 때 조합원은 고용불안에 시달렸고, 중앙교섭 관철을 위해 파업을 지시할 때 사업장교섭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조합원은 무엇을 택해야 하는가. 자신을 지켜 줄 사업장 조직인가, 공허한 당위만 외치는 산별일까. 그래서 어떻게, 감히, 설마, 그래도가 아니라 현재 위기는 금속노조가 만들었다고 단언한다.

4. 혹 다시 반문할지 모른다. 산별노조이기 때문에 산별교섭을 해야 한다고. 개별 사업장 조합원이 아닌 비정규직까지 망라한 전체 조합원을 위한 단체협약을 체결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산별교섭구조의 확립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그랬다. 금속노조 등 산별노조는 그래서 그토록 산별교섭구조에 모든 힘을 집중해 왔다. 그랬던 것인데 그것이 과연 민주노조운동의 주력인 금속노조가 모든 힘을 쏟아야만 할 것이었는가. 이에 대해서는 필자는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산별노조는 기업별노조의 조직형태 변경을 통해 세워졌다. 이 때문에 금속노조 등 산별노조는 기업별교섭구조가 아닌 산별노조의 독자적인 교섭구조 확립을 존립 이유로 파악하고, 이에 집착하게 됐다. 그리고 산별노조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외국의 산별노조의 교섭구조는 기업별교섭구조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를 참조해 이러한 교섭구조를 확립하고자 했다. 기업별교섭구조로 말미암아 발생된 비정규직과 정규직, 대기업과 중소·영세사업장 사이의 근로조건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전체 사용자들이 참여하는 사용자단체와의 산별교섭을 통해 일거에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결론은 산별교섭 쟁취였다. 그런데 산별교섭구조는 노조가 희망하고 요구한다고 해서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법적으로 교섭방식을 강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금속노조를 상대하기 어려운 사업장 사용자들을 중심으로 산별교섭에 참여하고 사용자단체를 구성했다. 또한 어렵게 사용자단체에 참여한 사용자라도 탈퇴하면 다시 가입하도록 강제할 방법이 없다. 왜 도대체 잘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애당초 노조가 사용자들이 자율적으로 조직할 수밖에 없는 사용자단체를 강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조는 다시 입법을 통해 강제하도록 시도했다. 그러나 법 제도를 통해 이를 강제하는 것은 위헌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 과연 산별노조가 자신의 독자적인 교섭구조를 만들기 위해 사용자들을 하나로 단결해 노조에 대응하도록 조직하고자 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인지 필자는 의문이고 이러한 의문을 여러 차례 던졌다.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 사용자가 참여하는 사용자단체가 조직된다면 과연 이것을 상대로 현재의 금속노조가 제대로 교섭력과 투쟁력을 발휘해 대응할 수 있을까.
그래서 필자는 말한다. 왜 산별교섭구조가 가장 주요한 목표여야 하고 여기에 ‘올인’해야 하느냐고.

5. 누구가는 물을지 모른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무슨 대안을 갖고 있느냐고.
1980년대 이후 민주노조운동은 조합원의 권리의 확보와 보호를 통해 일어섰다. 오늘 민주노조가 서지 못한 사업장은 그 활동가가 그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권리의 확보와 보호를 위해 노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확신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 금속노조의 위기는 금속노조가 사업장 조직에 맡겨 뒀던 단체교섭 등 조합원의 권리 확보 및 권리 보호 투쟁을 직접 철저히 관장해 나선다면, 민주노조를 세웠던 당시처럼 금속노조 간부 활동가들이 이에 헌신한다면 극복된다. 다행히 금속노조 등 산별노조는 이에 복무할 많은 간부 활동가를 갖고 있다. 그동안 금속노조가 산별교섭구조에 매달리면서 이들이 사업장 조합원의 권리 확보에 복무하고 투쟁하는 것이 운동의 대의를 손상시키는 것이라는 인식을 줘 이들을 주저하게 하고, 그것이 조합원들로 하여금 이들을 불신하도록 했을수도 있다.
 
사업장 조합원의 고용 등 권리를 침해하는 사용자의 행위에 맞서는데 노조가 집중하고 투쟁한다면 조합원은 노조편이다. 이 투쟁 과정을 통해 조합원은 누가 진정 조합원을 위해 투쟁하는 자인지 판단하게 될 것이다. 조합원의 권리의 확보와 보호를 노조가 아닌 다른 조직이나 세력에게 맡겨 두지 마라. 조합원을 지켜라. 그러면 그들이 노조를 지킬 것이다. 산별노조가 조합원을 지켜 준다면, 조합원은 지역지부 등 조합원을 위한 조직형태를 고민하는 노조의 조직적 전망을 이해할 것이다. 이상이 위 물음에 대한 필자의 답변이다.

"금속노조는 1980년대 이후 전노협 등 민주노조운동의 결과이며 이를 지켜내야 하는 것은 노동운동에 복무하는 자 모두의 몫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