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탠더드(국제기준)는 정부가 주로 외쳐 온 구호다. 지구촌이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면서 국제적인 규범·기술·제도를 따라야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핵심 논리다.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추세라는 것이다.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면서 강조했던 것도 글로벌 스탠더드였다.

그러던 정부도 ‘노동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해서는 슬쩍 꼬리를 내린다. 우리나라가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은 24개에 불과하다. ILO 협약 188개 중 비준한 협약은 18%에 그친다. 때문에 ILO 회원국인 183개국 중 우리나라는 128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30개 가입국 중 27위에 그쳤다. 이러다 보니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해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는 노동계가 되레 국제기준을 준수하라고 외치는 것 아닌가.

문제는 최근 정부가 국제노동기준에 대해 아전인수식 해석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복수노조-전임자임금’ 둘러싼 정부의 태도가 바로 그렇다.

ILO는 ‘결사의 자유 허용’ 등 4개의 핵심협약을 비준하라고 권고해 왔는데, 이것은 ‘복수노조-전임자임금’ 문제와 관련돼 있다. 최근 노동부의 태도는 이미 ILO 핵심협약인 ‘결사의 자유 허용’ 조항을 비준한 것 같아 보인다. 물론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르면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가 내년부터 허용되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노동부는 또 전임자임금의 경우 지급금지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노사교섭·산업안전 등 기타 법에서 근로시간면제 허용을 규정하고 있다고 강변한다. “노조 일만 하는 노조 간부의 급여는 조합이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한다”는 것이다. 임태희 노동부장관은 한발 더 나아갔다. 임 장관은 복수노조-전임자임금 조항이 담긴 현행 노조법을 그대로 시행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런 태도야말로 ILO 협약에 대한 아전인수격 해석이다. ILO 협약에 따르면 복수노조의 경우 87호 협약을 통해 '사전인가를 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해 단체를 설립하고 그 단체에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차별없이 가진다. 또 '단체가 자유로이 대표자를 선출하고 관리와 활동에 대해 결정하고 계획을 수립할 권리'를 가진다. 특히 공공기관이 권리를 제한하거나 간섭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도 있다.

그럼에도 한국 노조법은 복수노조를 허용하되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는 ‘규제’를 두고 있다. 공공기관의 '권리 제한과 간섭'을 제도화하겠다는 발상이다. 이는 노사가 교섭대표와 교섭방식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라는 ILO 협약의 취지를 외면한 것이다. ILO 협약의 취지는 하나의 단체협약이 적용되더라도 협약체결의 권리는 모든 단체에 허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단체교섭권을 보장하고 있는 우리나라 헌법 정신에도 부합된다.

전임자임금 문제도 마찬가지다. ILO 135·143호 협약에 따르면 근로자 대표가 직무를 신속하고 능률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기업으로부터 적절한 편의가 제공돼야 하며, 임금손실 없이 근로면제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비용부담과 관련해서는 '해당 국가의 노사관계 제도의 특성 및 해당 기업의 필요·규모·능력을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또한 노사 자율적으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 ILO 협약의 취지다. 협약 어디에도 전임자임금 지급을 금지하거나, 노조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은 명시돼 있지 않다. 때문에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97년 이후 10차례에 걸쳐 전임자임금은 법적 제재가 아닌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한국 정부에 권고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이 권고가 ILO 협약과 충돌하며, 우리 노동관계법은 ILO 협약 취지에 부합한다고 강변한다. ILO 협약을 고려하면 '노조 전임자에 대한 편의제공은 해당 국가의 법령·단체협약·관행으로 정할 수 있다'는 논리다. 노동관계법으로 규제하는 것도 ILO 협약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협약을 자주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노동부 입맛대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ILO 협약의 의미는 해당국가의 노사관계제도의 특성과 기업의 필요·규모·능력을 고려하라는 것이지, 법률로 전임자임금을 규제하라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 옳다는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의의 권고가 있었던 것이다. 또 근로시간면제 등 적절한 편의를 제공하더라도 ‘임금상실’이 없어야 한다. 노동부의 주장은 종전에 지급돼 온 전임자임금 중 노사교섭 등 일부 시간에 해당하는 임금만 주겠다는 발상이다. 노조 활동에 쏟은 시간은 전임자임금에서 빼겠다는 것이다. ILO 협약에서 금지하는 '근로자대표의 임금상실'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전임자의 역할을 법적으로 규제하겠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전임자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합의된 관행이나 전통도 없는 우리 현실에서는 오만에 가까운 발상이다.

노동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는 한마디로 ‘노사 자율’이다. 정부 스스로도 노사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이것이 최선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더 이상 정부 스스로도 감당되지 않는 법적 규제에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복수노조-전임자 문제는 노사 자율에 맡기라는 국제기구의 권고를 수용해야 한다. 그것이 정부가 신주 모시듯 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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