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쇠귀에 경 읽기’란 말이 왜 있는지 이제서야 이해된다. 지난 한 달간 복수노조·전임자임금 문제를 둘러싸고 국제기준 논란이 벌어졌다. 발단은 노동부였다. 전임자임금을 주지 않는 것이 국제기준인 것처럼 주장한 것이다. 임태희 노동부장관은 지난 11일에도 “전임자임금을 주지 않는 것이 국제관행”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지난 9일 국제기준 논란이 종결됐다. 노사정 3자로 구성된 국제연합(UN) 소속기관인 국제노동기구(ILO) 노동기본권 담당자가 한국에 와서 “전임자임금 금지 법제화는 국제노동기준 위반”이라고 확인해 줬기 때문이다.

이 담당자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정부의 논리에 대해 일일이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지속적으로 전임자임금은 법적 금지가 아니라 노사 자율교섭에 일임해야 한다고 권고해 왔다”고 밝혔다. 이어 “그 이유로 전임자임금 지급금지는 한국 노사관계와 단체협상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몇 번이고 못 박아 말했다.

그가 말하는 국제기준의 핵심은 이렇다.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협상은 사회정의를 위해 필요한 것이고, 무언가를 자율적으로 교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애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 문제에서 가장 권위 있는 ILO가 그렇게 말을 해도 노동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ILO 협약과 권고의 문구 하나하나를 비틀면서 “결국 전임자임금 지급금지 법제화가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한다”는 이상한 ‘괴물’을 만들어 냈다.

결국 한국 정부의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와 전임자임금 지급금지 강행방침은 국제사회로부터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국제노총 아시아태평양지역(ITUC-AP)에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 노조자문위원회(OECD-TUAC)까지 한국 노동기본권 상황을 우려하는 결의문을 잇따라 채택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OECD 가입국가이자, 내년 G20 주최국인 한국 정부는 또다시 국제사회에서 ‘사면초가’에 몰리게 되고 말았다.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국제기준은 이미 결론나지 않았나. 그렇다면 모두가 ‘맞다’고 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노사정 간 실질적 협상이 시작된다면 정말로 국제기준에 걸맞는 해법을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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