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기구(ILO)는 노조 전임자임금 문제는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노사 자율교섭에 일임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권고했다.”
인터뷰 내내 숱하게 반복해서 나중엔 지겹게까지 들리던 말이다.
지난 9일 양대노총이 주최한 ‘노조전임자의 위상과 국제기준에 관한 국제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팀 드 메이어 ILO 방콕사무소 노동기본권 담당자를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회의실에서 만났다. 그는 이틀간의 일정을 마치고 10일 출국했다.

“전임자임금 법적 금지 안 된다고 밝혔다”

- ILO는 한국의 복수노조·전임자임금 논란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나.
“충분히 알고 있다. 97년 시행하려 했던 노동조합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유예돼 오다가 이번에 한국 정부가 시행하려 하고 있다. 노조 전임자임금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한다는 것 말이다. 또 하나는 복수노조 시행을 둘러싼 것이다. 두 가지 이슈가 노조운동의 가장 큰 이슈이고 노조의 우려를 낳고 있다.”

- 지난 9일 국제세미나에서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법제화하는 것은 국제노동기준이 아니라고 했는데.
“ILO 결사의자유위원회는 노사정이 모두 참여하는 기구다. 결사의자유위는 50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전임자임금 문제는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노사 자율교섭에 일임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법적으로 전임자임금 지급이 금지되면 한국의 노사관계와 단체협상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 한국의 노동계는 전임자임금 지급이 금지된다면 노조 무력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라고 보나.
“법으로 전임자임금 지급을 금지하면 전임자가 하는 일이 대부분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단체협약의 영향을 받는 조합원 비율이 적다. 전임자임금이 지급금지되면 단체협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단협을 적용받는 조합원이나 노동자에게도 부정적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걱정하는 사항이다.”

“전임자임금 금지하면 조합원에게 부정적 영향”

-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준다는 의미는.

“노조전임자는 단체교섭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얻어진 것들을 이행하기 위해 일상업무를 하고 있다. OECD 국가 중심으로 대부분 나라에서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조전임자 활동의 기여가 직·간접적으로 회사 운영상 효율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단체협약과 그 이행을 목적으로 일하는 사람(역할)뿐만 아니라 단순 타임오프로 일하는 사람(역할)까지 모두 포함해 임금이 지급돼야 한다. 회사의 노사관계 혹은 노사협의체에 근거해 지급돼야 한다. 전임자임금 문제는 법적으로 규제하는 게 아니라 노사자율 교섭에 일임해야 한다.”

- 한국의 노사정위 공익위원은 전임자임금 지급금지를 원칙으로 하되 노사교섭·고충처리·산업안전 등 특정 업무에 대해서만 근로시간을 면제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것이 국제기준에 부합하는가.
“법적으로 전임자 역할을 다 규제할 수는 없다. 타임오프시 일을 조정하는 데 많은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타임오프를 실시하는) 영국의 예를 볼 때 전문적인 중재조정 단체에서 이행강령을 만들고 이는 의회에서 비준을 받는데 전문가들이 하는 것이어서 세부적으로 규정돼 있다. 주의해서 봐야 할 점은 이행강령이 어떠한 단체협약보다도 우위에 설 수 없다는 점이다.” 

“한국정부 언젠가는 국제적 원칙 따라야 할 것”

- 한국정부는 ILO 협약 135호와 ILO 권고 143호를 들며 “노조운영 비용은 노조가 스스로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며 입법 여부는 ‘원칙’을 지키기 위한 방법론"이라면서 “전임자임금 지급금지가 국제기준 취지에 맞다”는 입장이다.

“ILO 결사의자유위는 97년 이후 10번이나 전임자임금은 법적 제재가 아닌 노사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밝혀 왔다. 지금 한국 정부가 전임자임금 지급금지가 국제기준에 맞다고 주장하더라도 언젠가는 한국 정부도 국제적 원칙을 따라야 할 것이다.”

복수노조·전임자임금 문제에 대한 입법적 해결이 국제기준에 부합하느냐에 대해 그는 “결사의 자유와 단체협상은 사회정의를 위해 매우 필요하다”며 “어떤 문제를 법적으로 금지하면 협의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다 없애는 것이어서 출발점이 좋지 않다”고 강조했다.

- 같은 맥락이지만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를 법이나 시행령 등으로 강제하는 것 역시 협의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없애 버리는 것 아닌가.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문제는 복잡하다. 유럽은 산별체제이고 미국이나 캐나다는 기업 단위에서 다수 노조가 교섭창구 단일화를 한다. 때문에 이것 역시 국제기준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교섭창구 단일화가 단순히 법제화에 근거하는 것과 노사정 3자 합의를 통해 이뤄지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교섭창구단일화, 법제화와 노사정합의는 큰 차이”

- ILO는 한국이 복수노조·전임자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정부의 접근 방식에 있어서, 이는 직접적으로 한국에서 발전된 단체교섭 체제에 대한 것이기에 훨씬 복잡하다. 이런 문제를 다루려면 장기적 안목을 갖고 있어야 한다. 향후 산업구조가 더 발전되고 미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하다. 단순히 하나의 항목에 집중해선 안 된다. 우리의 우려는 단체교섭이 발전적으로 나가야지 하지 후퇴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메이어 담당자는 한국의 노조와 사용자에 대한 주문도 잊지 않았다.
“노조에도 책임이 있다. 이런 논의를 보면 노조가 뒤에 물러나 앉아 있다가 정부가 제안하면 수용 또는 불수용 여부를 말한다. 노조가 좀 더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하다. 사용자도 마찬가지다. ILO를 만들자고 처음 제안한 측은 사용자다."

- 앞으로 ILO 결사의자유위에선 한국의 노동상황을 다룰 계획이 있는가.
“ILO는 어떤 문제를 미리 계획하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제소가 잇따를 것이다. 그때 ILO가 자문을 제공하고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ITUC·OECD-TUAC 결의문 채택, 심각성 때문”

- 국제노총(ITUC)과 경제협력개발기구 노조자문위원회(OECD-TUAC)은 각각 한국의 복수노조·전임자 문제에 대해 결의문을 채택할 예정이다. 특히 OECD-TUAC의 경우 한국이 OECD 노동감시 대상국에서 졸업한 지 얼마 안 되는 상황에서 결의문이 채택되는 것이다. 결의문 채택이 국제사회에서 의미하는 바는.
“두 단체가 결의문을 채택한다는 자체가 복수노조·전임자임금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지속된다면 ILO에서 더 많은 일들이 이뤄질 것이다.”

- 최근 한국 정부의 공무원노조에 대한 정치활동과 상급단체가입 금지 등이 논란이 되고 있다. 어떤 입장인가.
“공무원노조의 결사의 자유 문제는 지난 95년부터 ILO에 제소돼 왔다. 꾸준히 발전이 있었지만 여전히 결사의 자유에 있어 국가활동과 정치활동에 관한 제재가 있는 것으로 안다.
공무원도 자신의 이익과 연관된 문제에 있어서는 특정한 조직을 구성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정당의 지지 문제에 대해서도 그 정당의 공약을 볼 때 자신의 조합원에게 가장 좋은 노동조건을 보증해 준다고 판단하다면 정당 지지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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