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 좋은 사기극을 중단하라.”
지난달 행정안전부가 공무원 복무·보수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을 때 행정부공무원노조(위원장 정범희)는 행안부를 강하게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조합비 납부까지 시시콜콜 간섭하겠다는 것은 명백한 권력남용이며 공무원 노동자라는 신분을 악용해 개개인의 정상적인권리마저 짓밟는 ‘파시즘적 행태’”라고 꼬집었다.

최근 정부의 전방위적인 공무원노조 탄압으로 대정부 교섭이 좌초할 위기에 놓여 있다. 복수노조인 공무원노조들이 교섭단을 꾸리는 데 1년이 걸렸다. 하지만 예비교섭이 시작되자마자 전국공무원노조가 법외노조 통보를 받으면서 노정 간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공무원노조와 정부 간 교섭이 쉽지 않다는 것은 행정부공무원노조와 행안부의 교섭만 봐도 알 수 있다. 2007년 3월 시작된 2006년 단체교섭이 아직까지 타결되지 않고 있다. 2006년 하반기에 실무교섭이 시작된 점을 감안하면 햇수로 4년째다.

4일 서울 신문로1가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정범희(46)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의 기본적인 생각은 공무원노조를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공무원노조에 대한 탄압에 대해서는 “공무원은 정권의 머슴이 아닌 국민의 공복”이라고 강조했다.
행정부공무원노조에는 16개 중앙행정부처와 3개 국립대 공무원 노동자 등 2만여명이 가입해 있다. 상급단체는 공무원노조총연맹이다.


- 2006년 단체교섭은 어디까지 진행됐나.
"지금도 교섭은 진행하고 있다. 최근 12차 본교섭이 끝났다. 원래 주 1회 본교섭을 하도록 약속돼 있었는데 정부의 불성실한 자세 때문에 매주 교섭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마지막 쟁점은 노조활동 보장이다. 각종 회의나 대의원대회·교섭을 근무시간 외에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법에 근거가 없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다는 정부측 입장과 단협을 통해 최소한 노조활동을 보장해야 한다는 우리의 요구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교섭을 하면서 ‘영혼이 없는 관료’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조율할 것은 조율해야 하는데 앵무새같이 똑같은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노조활동이 보장되지 않으면 교섭 타결은 어렵다."

현재 노조는 조합 활동을 근무시간 외에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단체교섭이나 노사협의회·노조 총회·대의원대회·운영위원회 등 회의와 노사가 협의한 교육 등은 근무시간 내에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행안부는 단체교섭과 협약체결을 위한 노조활동에 대해서만 근무시간 내 활동을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참여정부 시절 구 행정자치부 공무원단체 업무지침은 단체교섭뿐만 아니라 대의원대회나 총회 참가도 보장했다. 이 지침은 이명박 정부 들어 폐지됐다.

- 내년 공무원 임금이 동결됐다.
"노조라는 게 조합원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공무원노조는 조합원 지위 향상은커녕 노조의 기본적인 역할마저 못하고 있다. 공무원노조법(8조)상 조합원의 임금(보수)도 교섭할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정부는 법령과 예산을 수반하는 사항은 교섭할 수 없다는 이유로 2년째 아무런 대화 없이 일방적으로 동결하고 있다. 고위직은 모르지만 6급 이하 하위직들은 최저생활비 수준의 봉급을 받고 있다. 물가는 계속 오르고 교육을 안 시킬수도 없고,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 공무원노조가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공무원은 관료사회다. 윗사람이 지시하고 순응하는 권위주의적인 문화가 지배적이다. 고위관료들은 ‘영혼 없이’ 정권에 순응할 수 있다. 공무원노조들이 권위주의적인 문화나 불합리한 부분을 개선하고 있다. 공무원은 실질적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공복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정권의 머슴이 아니다. 정권은 5년으로 유한하지만 나라는 영원하다.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위한 공무원이 돼야지 정권을 위한 공무원이 되면 결국 국민이 불행해진다."

2007년 12월 당시 행정자치부와 공무원노조총연맹은 첫 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가칭 ‘공무원노동관계특별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노동3권을 온전하게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공무원의 노동기본권 신장을 위해 관련법령과 제도를 포괄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 위원장은 “해고된 공무원은 위원으로 참여할 수 없다는 행안부의 고집 때문에 2년 넘게 논의기구조차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노사정 각자 알아서 대표를 뽑아 보내면 되는 것 아니냐”며 답답해했다.

정 위원장은 “공무원노조법 자체가 노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든 법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저지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만들다 보니 갈등만 양산하고 있다”며 “노정 갈등이 확대·재생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 공무원노조 탄압이 거세지고 있다.
"공무원노조의 시국선언이나 정부정책 반대의 처벌근거가 미약하다. 법령은 개정에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대통령령(시행령)을 개정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권 제한은 법률로만 가능하다. 위헌소지가 있다. 복무·보수규정 개정은 노조의 기본 활동에 지배·개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법적 절차를 무시한 안하무인격 일방적인 행태를 묵과할 수 없다. 공무원노조법상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공무원은 30만명이다. 이중 75%가 노조에 가입돼 있다. 10만여명은 통합공무원노조에 가입돼 있고, 나머지는 공무원만의 독자노선을 가고 있다. 정부가 공무원노조를 탄압하니까 언론에서는 통합공무원노조가 공무원노조의 전체인 양 비춘다. 안타까운 부분이다. 공무원만의 독자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행정부공무원노조를 포함해 공무원노총이 더 열심히 활동해 합리적인 노동문화를 정착시킬 생각이다."

- 국토해양부 출신 공무원인데. 4대강 정비사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왜 이렇게 단기간에 졸속적으로 해야 하나 의문이다. 행복도시가 백년대계라면 4대강 사업도 백년대계 아닌가. 단기간에 어마어마한 예산을 들여 하겠다는 것인데 사실 누가 봐도 이것은 졸속일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해도 될까 말까한데 무슨 천리마 운동하나. 환경재앙이 올 수도 있다. 50년 만에 정권이 교체된 일본도 이전 정권이 추진한 토건사업들을 폐기하고 복지 쪽에 예산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가고 있다. 복지예산을 줄여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퍼붓고 있다. 건설업자만 배불리는 사업이다. 최근 논란이 되는 행정도시도 마찬가지다. 행정도시의 근간은 국토 균형발전이다.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하고 지방도 공존할 수 있는 큰 틀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기본 철학도 없고 원칙도 없는 상태에서 정치인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서로 논쟁만 일삼고 있다."

- 올해 행정부공무원노조의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나.
"힘들고 어려운 한 해였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정부나 국회에서 탄압이 심해질수록 내부적으로 단결할 수밖에 없다. 단결해야 노조에 힘이 실린다. 조합원들이 노조에 희망을 크게 갖고 있다. 앞으로 바라볼 곳이 노조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개별적인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공무원들이 노조에 바라는 기대치가 높아졌다."

정부나 보수언론은 “공무원이니까 안 돼”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에 대해 정 위원장은 “공무원들이 만든 노조는 정부기관도 아닐뿐더러 독자적인 법인”이라며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언론이나 정부는 과거 권위주의 사고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공무원이 공복인 것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약자와 서민을 위해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복지국가를 최우선 과제로 삼지 않고 가진 자들만 배불리는 정부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약력]
1993년 환경부 공무원 임용
2003년 건설교통부 직장협의회 수석부회장
2007년 건설교통부 2대 노조 위원장
2008년 행정부공무원노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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