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행정안전부가 입법예고한 공무원 복무·보수규정 개정안에 대한 의견수렴이 이달 10일 마무리된다.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통과되면 공무원은 앞으로 직무수행과 관계없이 정치지향적인 목적으로 특정정책을 주장하거나 반대할 수 없게 된다. 회계담당자의 입회하에 공무원 본인이 1년 범위 안에 서면으로 동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조합비 원천징수도 금지된다.

이런 행안부의 ‘압박’은 통합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을 막으려는 데서 출발했다. 그런데 정부의 의도(?)와는 다르게 한국노총 산하 공무원노조까지 무력화되는 결과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노조들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공무원노조의 상급단체 가입을 금지하는 공무원노조법 개정안까지 발의한 상황이다. 50년 동안 한국노총을 상급단체로 두고 있던 체신노조의 경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2일 서울 서린동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이항구 체신노조 위원장(55)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 공무원 복무규정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 우체국 민영화를 반대하는 것도 금지될 수 있다. 개정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노조활동을 제한하려는 복무규정 개정안에 반대한다. 그렇다고 복무규정 개정으로 우리 노조가 목소리를 낼 수 없다고는 보지 않는다. 민영화 반대는 적극적인 정치행위라고 볼 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권리이고 노조의 의무다. 노조는 마땅히 조합원의 생존권과 노동조건을 지켜야 한다. 체신노조는 국민들에게 보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적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일해 왔다. 합리적인 노사관계를 만들기 위해 그간 체신노조가 해온 노력들은 간 데 없고, 한 적도 없는 정치행위를 거론해 최소한의 권리를 빼앗으려 한다면 이는 체신노동자들에게 큰 상처가 될 것이다.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정상적인 결의를 거친다면, 얼마든지 정부를 상대로 싸워 나갈 수 있다."


- 보수규정 개정안이 통과되면 체신노조에 어떤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나.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꼴이다. 회계담당자 입회하에 본인이 서명한 경우에만 공제가 가능하도록 보수규정을 개정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노조를 무력화시켜 말살시키려는 발상이다. 공무원의 불법활동을 막겠다는 이유로 50여년 동안 시행해 왔던 조합비 원천징수를 막겠다는 것은 빈대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것과 다름없다. 국가 발전이나 대국민 서비스 제공에도 지장이 있을 것이다. 정부가 너무 서두르고 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 않았나. 공무원노조는 단체행동에 제약을 받지만, 우리는 합법적으로 파업할 수 있는 단체행동권을 가지고 있다."

-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지난 9월 공무원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회에서 통과되면 체신노조도 한국노총에 가입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문제다. 한국노총과 더불어 개정안이 가결되지 않도록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교섭을 전개하고 있다. 체신노조는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각 지역구 의원들을 활발하게 만나고 있다. 이 문제는 한국노총에도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노총에서도 적극 대응하고 있다."

- 통합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을 계기로 정부의 공무원노조에 대한 압박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통합공무원노조가 출범하면서 예견된 문제이기도 하다. 체신노조는 그동안 국가발전에 나름대로 기여해 왔다고 자부한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다. 공무원 조합원이 주축인 체신노조도 예외없이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과거 97년 외환위기 상황에서도 정년을 4년이나 단축했다. 그럼에도 상급단체 가입을 제한하고, 원천징수를 금지한다면 조합원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체신노조는 지난 1958년 창립했다. 전국 3천700여곳의 우체국 집배원을 비롯해 기능직 공무원 등 2만6천여명이 가입해 있다. 창립 이듬해인 1959년 한국노총의 전신인 대한노총에 가입했다. 50년째 한국노총을 상급단체로 두고 있다. 체신노조의 조합원들은 ‘사실상 노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으로 분류된다. 일반 비정규직도 있다. 노조는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적용을 받으며,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받고 있다. 때문에 일반 공무원노조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 체신노조의 입장이다.

- 정부의 공무원노조 대응 방침에 어떤 문제점이 있다고 보나.
"민주적인 절차가 모두 생략됐다. 법이라는 것은 입법취지가 분명해야 한다. 왜 이 법을 만드는지(혹은 개정하는지) 이해당사자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정부 방침대로 하면 노조가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 정치행위를 안 하던 노조까지도 선의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 올해 가장 중요한 사업은 무엇이었나.
"신년사에서도 밝혔지만 체신노조가 무엇을 하는 노조인지 국민에게 알린다는 것이 올해 목표였다. 국민과 같이 호흡하는 노조가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조합원들은 주민들에게 직접 노출돼 있다. 지금도 산간오지에서 편지배달뿐만 아니라 봉사를 하는 조합원들이 많다. 말 한마디라도 지역주민들에게 따뜻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정부와 국민이 우리 같은 노조를 육성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와 국민이 안 지켜 주면 누가 우리를 지켜 주나. 정부 방침이 그대로 시행되면 100% 충돌할 수밖에 없다."

-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를 앞두고 있는데.
"전임자임금과 복수노조 문제 등 현안 해결을 위해 체신노조가 앞장설 것이다. 하지만 체신노조는 힘이 있다. 무엇을 같이해야 하는지 조합원들이 잘 알고 있다. 집행부를 믿고 잘 따라 주고 있다. 전 조합원이 한마음을 가지면, 그것이 곧 힘이 된다. 꼭 전투적으로 무엇을 한다고 해서 힘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한국노총 노동자대회에 조합원 1만여명 정도가 자발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최근 갑작스런 현안 때문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는 이 위원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노조의 뜻을 관철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상급단체 가입 제한과 조합비 원천공제 금지는 반세기가 넘게 인정돼 온 체신노조의 권리를 일시에 몰수하려는 것입니다. 공무원 보수규정 개정을 취소하거나, 단서조항으로 공무원노조법이 아닌 일반 노조법의 적용을 받고 있는 현업공무원은 예외로 해야 합니다. 정부가 결단을 내릴 때입니다.”

[약력]
1991~1997 체신노조 서울마포우체국연합 지부장
2002.12~2008.4 서울지방본부 위원장
2008.4~현재 체신노조 위원장
2009 한국노총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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