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들의 민심이 요즘 흉흉할 대로 흉흉해졌다. 시중은행은 임금반납으로, 국책기관은 임금삭감으로 월급봉투가 얇아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억지로 쉬라고 하는’ 연차휴가 강제사용에 대한 은행원들의 불만도 높다.

한 시중은행의 은행원 이아무개씨는 지난 26일부터 연차휴가를 보내고 있다. 20년간 은행에서 일한 이씨는 몸이 아파서 휴가를 쓴 경우를 빼고 연차휴가를 쓴 게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동료·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휴가를 못 쓰는 게 관행으로 굳어진 지 오래고, 혹시나 인사고과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까 노심초사했기 때문이다.

“사실 쉬고 싶죠. 은행 일이 엄청 힘들거든요. 그런데 제가 휴가를 가면 옆에 있던 동료가 그 업무를 떠맡아야 합니다. 속으로 비명을 지르면서 일합니다.”

은행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티를 못 내지만 연차휴가 강제사용에 불만이 적지 않다. 은행의 1년 장사를 마무리하는 연말마감을 앞두고 일손 하나가 아쉬운 시점이기 때문이다. 시절이 하도 어수선하니 그저 할 말 못하고 살 뿐이다.

그런데도 한쪽에서는 이를 두고 ‘즐거운 비명’이라고 비꼰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은행원 경력 20년의 이씨는 올해 정부 압박에 따른 노사합의로 연차휴가를 쓰면서 전체 급여 중 300만원이나 줄었다. 이씨는 '그래, 차라리 연차휴가를 보내며 제대로나 쉬어 보자'는 생각도 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그는 다음달 1일 치르는 파생상품 관련 자격증시험 준비를 하느라 연차휴가를 다 보내고 있었다. ‘자기개발’이라고 치켜세우는 사람도 있지만, 업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격증을 따는 일로 휴가를 보내는 것이 과연 진정한 휴식인지 모를 일이다.

보통 은행원들이 휴가를 내면 은행에서는 아예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다. 올해 남은 2~3개월 동안 연차휴가를 10일 또는 그 이상을 쓰라고 하니, 이동식저장장치(USB)에 업무파일을 담아 집으로 가서 일하는 편법까지 동원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금융노조 일부 지부들이 이런 움직임을 감지하고 감시활동을 강화하겠다고 밝힐 정도니 말이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임금을 깎고, 연차휴가를 강제로 쓰라는 정부의 불도저식 밀어붙이기에 은행원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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