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복수노조 허용 및 전임자급여 지급금지에 관한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그대로 시행하겠다고 임태희 노동부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이 밝힌 데 대해 한국노총 등 노동단체가 총파업으로 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노동단체 대표자들은 잇따라 삭발식을 개최한 데 이어 전국을 순회하고 연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사태의 심각성과 투쟁의 필요성을 알리고 있다. 필자는 전임자급여 지급금지에 관해 지난주에 이 칼럼에서 다룬 바 있다. 오늘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연대해 저지하겠다고 한 복수노조 허용 문제를 살펴본다.

2) 복수노조는 이미 노조법에서 허용하고 있다. 다만 노조법 부칙 제5조 제1항에서 사업(장) 단위(즉 기업단위)에서 복수노조의 설립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에 기업별노조가 존재하는 사업(장)에 새로운 기업별노조를 설립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을 뿐 기존노조 또는 신규노조가 지역별·일반·산별노조 등 초기업별노조에 가입할 경우 노조법상 복수노조에 해당하지 않는다. 물론 기존노조와 신규노조가 모두 초기업별노조의 지부·분회·지회 등이라도 이것이 기업별노조처럼 조직이 운영되는 경우 법원(판례)은 기업별노조에 준해 보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노조법상 설립이 금지되는 복수노조에 해당한다. 따라서 현재 복수노조 허용 문제는 기업단위에서 복수의 기업별노조의 허용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3) 복수노조 허용은 민주노조운동이 오랫동안 주장해 온 것이다. 그런데 최근 노조는 산별노조 등 초기업별노조로 급격히 재편됐다. 노동부가 지난해 발표한 ‘2007년 전국노동조합 조직현황’에 따르면 2007년에 이미 전체 조합원의 과반수 이상이 산별노조(민주노총 70.9%, 한국노총 24.2%) 소속이다. 더 이상 기업별노조가 지배적이지 않고 기존의 기업별노조도 산별노조체제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이처럼 초기업별노조가 대세를 형성하고 있는 조건에서 노조법 부칙의 기업 단위 복수노조 설립 금지는 더 이상 노조운동의 장애물이 아니게 됐다. 오히려 산별노조 차원에서 기업 단위의 복수노조 설립금지에 관한 노조법 부칙조항을 조직 활동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전국금속노조는 2001년 2월 설립 이후 기업별노조가 존재하는 사업장이라도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이 아닌 경우에는 조합에 가입시켜 지회·분회 등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확대해 왔다. 이러한 조직 활동을 통해 노조법 부칙 제5조 제1항에서 금지한 복수노조는 기존노조와 신규노조 모두 기업별노조이거나 이에 준하는 노조라는 법원의 판례를 만들어 왔고 이것을 노조의 조직 활동에 적극 활용해 왔다. 기업별노조가 존재하는 사업장에서 금속노조의 지회·분회 등이 설치되면 사용자는 노동부의 해석을 받아 복수노조라고 주장하면서 교섭에 응하지 않는다. 이때 노조는 사용자를 상대로 단체교섭응낙 가처분소송이나 단체교섭응낙 청구소송을 통해 법원의 결정이나 판결을 받아 사용자와의 교섭을 진행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해 왔다. 복수노조 설립금지에 관한 노조법 부칙조항이 조직 활동에 더 이상 아무런 장애가 되고 있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금속노조 등 산별노조에서 노조법상 복수노조 설립금지 조항은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복수노조 설립허용이 민주노조운동의 오랜 숙원이었고 노동자의 자주적 단결권 보장에서 중요한 문제라고 외쳐봐야 소용없는 짓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외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과거 운동의 관성에 따른 주장이거나 관심의 대상이 산별노조가 아닌 기업별노조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임태희 노동부장관이 복수노조 허용에 관한 노조법을 그대로 시행하겠다고 선언한 것에 대해 적극 환영해야 한다. 그러나 기업별노조 운동에 더 이상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노조 활동가에게는 굳이 적극 환영할 일이 아니다.

4) 복수노조의 허용에 대해 정부는 그동안 교섭창구 단일화를 전제로 삼아 왔다. 노조법 부칙 제5조 제3항에서 2009년 12월31일까지 교섭창구 단일화방안을 노동부장관이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과거 노동부장관들은 이를 이행하겠다고 했는데, 임태희 장관은 과감하게 일단 현행 노조법에 따라 복수노조를 시행하고 추후 보완하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교섭창구 단일화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다가 전임자급여 지급금지 등 노조법의 시행이 유예됐던 전례가 반복되지 않을까 염려돼 이와 같은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결단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지만, 복수노조허용과 관련해 그 과감성은 칭찬해 줄 만하다. 법률이 명령한 것을 법을 집행해야 하는 장관이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니 말이다. 더 나아가 교섭창구 단일화방안을 아예 장래에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면 근로자의 단결권 보장에서 한 획을 그은 노동부장관으로 평가될 것이다. 임 장관의 발언과는 별개로 현재 복수노조의 허용에 관한 문제는 교섭창구 단일화방안의 마련에 관한 문제로 전치돼 있는 상황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복수노조의 허용에 관한 문제는 기업 단위에서의 복수노조 설립에 관한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기 때문에 산별노조 등 초기업별노조체제로 노조운동의 흐름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에서는 단결권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절박한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현재 상황에서는 복수노조의 허용이 문제가 아니라 이것을 위해 교섭창구의 단일화를 법으로 강제하도록 한 노조법이 노조운동의 장애물이다(혹 기업별노조를 조직할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노조운동의 장애물이라고 주장한다면 필자는 왜 꼭 기업별노조로 조직해야 하는지 물을 수밖에 없다).

5) 교섭창구 단일화방안에 관해서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등에서 과반대표제·비례대표제 등 다양한 방안이 제출되고 논의돼 왔다. 그러나 교섭창구 단일화방안은 어떠한 방식이든지, 근로자의 단결체인 노조 스스로 자율적으로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헌법 제33조 제1항에서 보장한 근로자의 단체교섭권을 침해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의 경우 이미 복수노조체제에 있고 그에 따라 복수의 노조들이 하나의 사용자를 상대로 교섭을 진행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했지만, 복수노조를 허용하지 않을 만큼 심각한 혼란은 없었다. 기업 단위 복수노조를 허용한다고 해 그 혼란이 심각할 것이고 이 때문에 교섭창구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단체교섭권은 헌법상 근로자의 기본권으로 보장된 것이고, 이에 대해 사용자는 단체교섭에 응해야 할 상대방으로서의 지위를 갖는 것이다. 상대방으로서의 지위에서 발생하는 사용자의 불편을 이유로 근로자의 단체교섭권 자체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교섭창구 단일화방안은 기본권 제한입법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문제상황을 가지고 근로자의 단체교섭권 보장을 고민한다면 산별노조 등 초기업별노조의 단체교섭권을 보장하기 위해 그에 대응하는 사용자단체의 구성을 노조법을 통해 강제하는 등 산별교섭 등 초기업별교섭체제의 보장을 위한 입법이 필요하다. 필자는 과거 토론회 등에서 굳이 노조의 교섭창구 단일화를 하겠다고 한다면 사용자도 마찬가지로 산별노조의 교섭에 대해 사용자단체를 통해 교섭에 응하도록 입법을 통해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6) 현재 복수노조 허용에 관한 노조법의 시행을 앞두고 있다. 2010년 1월1일부터 기업 단위에서 복수노조도 허용된다. 양대노총은 복수노조 허용 및 전임자급여 지급금지에 관한 노조법 시행을 저지하겠다며 연대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복수노조 허용에 관한 노조법 시행을 저지하겠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복수노조 허용을 저지하겠다는 것인가. 당연히 아닐 것이다. 교섭창구 단일화를 전제로 한 복수노조 허용을 저지하겠다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복수노조 허용도 저지되고 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외부에서는 양대노총이 연대해 복수노조 허용을 반대하고 있다고 본다. 차라리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섭창구 단일화를 위한 법 개정을 반대한다.” 복수노조 허용은 굳이 주장할 필요가 없다. 이미 노조운동은 기업별노조체제를 벗어나 있고 노조운동에서 기업 단위 복수노조가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다. 그리고 임 장관이 복수노조 허용에 관한 노조법을 시행하겠다고 한다면 이를 저지하겠다고 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임 장관이 노조법 시행 전에 돌변하거나 혹은 노조법 시행 이후에 교섭창구 단일화를 법으로 강제하겠다면 그때는 이를 반대하고 저지해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