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벌어진 77일간의 생존게임은 더 이상 세간의 관심사가 아니다. 서로를 향해 비수를 꽂았던 ‘산 자’와 ‘죽은 자’는 고용불안의 트라우마(상처·상흔)를 안은 채 ‘남은 자’와 ‘떠나는 자’가 됐다.

노-사, 노-노 간 격렬한 대립은 몇 개의 숫자로 조합된 기록을 남겼다. 7천100여명의 쌍용차 직원 가운데 2천800여명의 노동자가 일찌감치 희망퇴직을 택해 공장을 떠났다. 노사 합의에 의해 686명의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합원 가운데 329명(기존 3년 무급휴가 신청자를 포함하면 468명)은 무급휴직과 영업전직으로 고용관계를 유지하게 됐다. 357명은 희망퇴직과 분사를 통해 고용관계가 해소됐다.

77일간의 공장점거 농성과 관련 집회에 참석했던 노동자와 관계자 80명(25일 현재)이 구속상태에서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금속노조와 쌍용차지부에 제기된 손해배상·가압류 합산금액은 무려 125억원에 달한다. 쌍용차 노조는 2개로 쪼개졌고, 당초 정리해고 계획 인원 2천646명 가운데 지금은 100여명만 남아 회사를 상대로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


구로정비사업소 정리해고자 “분사로 나의 일자리 사라져”

지난 21일 저녁 서울 구로동 주택가 한 사무실. 33제곱미터(약 10평)가 채 안 되는 이곳은 쌍용차를 수리·정비하는 일을 했던 노동자들이 전세를 얻어 마련한 ‘쌍용차 정리해고 특별위원회’(정특위) 사무실이다. 책상과 컴퓨터 몇 대, 냉장고와 싱크대, 소파와 작은 밥상 한 개, 간이옷걸이가 전부인 조촐한 살림이지만, 복직의 희망을 버리지 않은 정비공장 노동자 13명이 꿈을 키워 가는 소중한 공간이다.

김경민(40)·김정우(50)·정형구(41)씨가 기자를 맞았다. 언론은 이들에게 ‘계륵’ 같은 존재다. 때론 번거로운 상대고 때론 분노의 대상이지만, 자신들의 투쟁 소식을 세상에 알리는 메신저를 홀대할 수는 없다. 정형구씨가 계란까지 푼 라면을 끓여 기자 앞에 차려낸다. 그는 억울하다고 했다. 폭도로 매도된 사실을 떠올리면 잠이 안 온다는 그다.

“8월6일 노사가 무급휴직과 희망퇴직 인원에 대해 최종 합의한 뒤 농성자들이 경찰에 연행됐잖아요. 평택경찰서로 끌려가 조사를 받고, 밤 11시30분께 평택역에서 밤차를 타고 구로에 왔어요. 같이 풀려난 동료들과 간단히 술 한잔 하고 집엘 갔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자는 둥 마는 둥 했다는 정씨는 다음날 아침 출근시간에 맞춰 작업복을 챙겨 입고 쌍용차 구로정비사업소로 향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출근하는 ‘산 자’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공장 출입을 막더라고요. 제가 정말 화나는 게 뭔지 아세요? 점거농성을 할 때 회사물품 하나라도 아끼고 보호하려고 했는데, 구사대들이 집기를 다 부수고 우리에게 덤터기를 씌우는 거예요.”

정씨는 정리해고자다. 회사측의 희망퇴직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희망퇴직원을 제출했다면 위로금을 챙길 수 있었다. 희망퇴직자는 정리해고자에 비해 퇴직금도 많다. 퇴직금 산정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정리해고를 택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폭도로 매도된 것에 대한 명예를 회복하고 싶어요. 돌아갈 자리도 없고요.”
쌍용차 정비사업소는 서울 구로를 비롯해 천안·대전·광주·부산에 있다. 구로를 제외하고는 모두 분사화가 완료됐다. 정비공장에서 일했던 희망퇴직자들이 해당 사업소의 소사장이 된 것이다. 만약 회사가 정상화돼 정씨가 생산라인에 투입된다고 하더라도, 정비 노동자인 그가 컨베이어벨트를 타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정씨는 요즘 하루 4만원인 실업급여를 받아 생활하고 있다. 재취업보다 명예회복이 더 중요하다는 그의 마지막 자존심은 지켜질 수 있을까.


창원엔진공장 희망퇴직자 “쌍용차 출신이라고 재취업 안돼”

지난 15일 저녁 경남 창원시 상남동의 한 음식점. 창원 엔진공장에서 일했던 이갑호(39)·이규홍(41)·이태환(38)씨를 만났다. 이들은 희망퇴직을 선택했다. 해고자 복직투쟁에 열심히 참여하겠지만, 새로운 일자리가 구해지면 새 삶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냐며 멋쩍어했다.

근황에 대한 얘기가 먼저 오갔다. 이태환씨는 “어머니를 모시고 고용지원센터에 가 본 적은 있는데, 막상 내가 가서 실업급여 교육을 받으려니 만감이 교차했다”며 쑥스러워했다. 이갑호씨는 “에어컨 설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며 “일이 없을 땐 민주노총 경남본부 사무실에 마련된 창원 정특위 일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이규홍씨는 자신의 재취업 실패기를 털어놨다. ‘쌍용차 출신은 뽑지 말라’는 소문이 창원공단 내에 파다하게 퍼져 재취업이 어렵다고 했다.
“자동차 공장 출신이 어딜 가겠어요. 아는 사람 인맥까지 동원해 자동차 협력업체 7곳에 이력서를 넣는데, 4곳에서 합격 취소 통보를 받았어요.”

출근날짜까지 받아 놓은 상태에서 입사가 취소되기도 했다. 입사를 추천해 준 사람에게 이유를 물으니 “쌍차 출신 뽑지 말래요”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씨만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아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달 입수해 공개한 ‘쌍용자동차 퇴직근로자 재취업 현황’(9월18일 기준)에 따르면 정리해고·희망퇴직 노동자 2천646명 가운데 10.5%인 279명만이 취업에 성공했다.<본지 9월28일자 1면 참조> 10명 중 1명만 재취업에 성공한 셈이다. 정리해고자의 재취업이 어렵다는 점은 연구결과에서도 확인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고용보험 통계를 활용해 외환위기 당시 정리해고자의 재취업 현황을 분석해 보니, 해고된 뒤 1년 안에 임금근로자로 재진입하는 비율은 50%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씨는 77일에 걸친 장기농성에 따른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다고 했다. 농성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뒤에도 침대에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가 침대 대신 택한 것은 차고 딱딱한 베란다 바닥이었다.

“농성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회사측 선무방송과 저공비행하는 경찰 헬기 때문에 밤에도 잠을 제대로 못 잤어요. 참다참다 새벽 2시가 넘어 선 채로 졸다가, 새벽 5~6시쯤 회사측이 고용한 사설경비용역들이 난리를 치기 시작하면 잠에서 깨곤 했죠. 불과 몇 달 전까지도 잘 쓰던 침대가 불편하더라고요. 아침에 일찍 눈이 떠지니 TV를 많이 봐요.”

또 다른 잠버릇도 생겼다. 베란다에 누워 자꾸 창 밖 하늘을 쳐다본다. 이씨는 5월22일에서 8월6일까지 한여름을 농성장에서 보냈다. 농성자들의 바람과 달리 유독 올 여름 평택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비를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밖에서 무슨 소리라도 나면 깜짝 놀라서 내다보게 되고…. 저만 그런 게 아니에요. 대부분 그랬어요.”

지난 17일 오후 평택시청 대강당. 조명이 꺼지고 조용한 음악이 흐른다. 평택공장 해고자들의 부인 7명과 해고자 1명이 강사의 설명을 듣고 명상에 잠긴다. 몸의 긴장을 푸는 요가 동작도 따라해 본다.

금속노조는 이날 의료부문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평택공장 해고자와 가족을 상대로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총 8회에 걸쳐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이날은 3번째 모임이 있던 날이다. 대규모 정리해고 이후 심신이 피폐해진 노동자와 가족을 상대로 심리치유가 진행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참여는 저조한 편이다. 강사로 나선 권용식 노동건강연대 전문위원은 “노조 집행부가 대거 구속돼 참여자를 모집하기 어렵고, 생계나 육아의 어려움 때문에 참여율이 낮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들이 해고자와 그 가족을 상대로 치유활동을 벌인다면, ‘산 자’를 대상으로 한 심리치유 프로그램은 별도로 진행되고 있다. 평택시가 노동부의 지원을 받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마음의 상처를 보듬는 일조차 ‘산 자’ 따로 ‘죽은 자’ 따로인 웃지 못할 상황이다.

본사와 완성차 조립라인이 있는 평택공장 근처로 발길을 옮겼다. 생산라인에서 근무하다 현재 무급휴직 중인 ㅇ(46)씨를 만날 수 있었다. 당초 정리해고 명단에 올랐다 무급휴직자로 분류된 이들은 ‘죽었다 살아난 자’로 통한다. 그는 “갑갑하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평택공장 무급휴직자 “복직 기약 없고 빚만 늘어”

“실업급여도 못 받아요. 그동안 받았던 실업급여도 도로 뱉어 내야 합니다. 복직이 될 때까지 회사에서는 4대보험료만 내줍니다. 신차(C200)가 출시되더라도 시장상황을 봐야 되니, 복직은 빨라야 내년 하반기가 될 것 같은데….”

ㅇ씨는 이중취업에 걸릴까 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다고 했다. 가족들 역시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었다. 월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지난해부터 빚을 지기 시작했다. 1년도 안 된 사이 빚은 2천만원으로 불었다.

어렵게 재취업에 성공한 ㄱ(32)씨도 만났다. 공교롭게도 그는 노조의 파업이 기업 회생을 가로막는다고 비판하며 집회를 벌였던 협력업체에 재취업했다.

“수십 곳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다 떨어졌어요. ‘쌍용차 이력이 문제’라는 얘기를 듣고 이력서에 쌍용차 경력을 일부러 뺐더니 취직이 되더라고요. 남들은 밸도 없이 관제데모한 업체에 취직을 했냐고 하는데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갈 곳이 없어요.”

비정규직 수습사원인 그는 쌍용차에 다닐 때보다 월급이 70%나 줄었다. 복지혜택은 언감생심이다. 그래도 공구를 다시 잡으니 마음만은 편하다고 했다.


살아남은 노동자들 “우리도 불안하고 마음 아파”

정리해고의 그물망에 포획되지 않고 살아남은 노동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괴롭긴 매한가지다. 인원이 줄면서 업무량이 급증했고, 자신에게 ‘새총’을 겨눈 동료에 대한 증오와 실직한 동료에 대한 죄책감이 교차한다. 대규모 구조조정 후 기업 내 조직 구성원이 겪는 정신적 황무지화 현상(ADD증후군 : After Downsizing Desertification Syndrome)을 겪고 있는 것이다.

평택공장 도장팀에서 근무하는 A(39)씨와 조립팀에서 근무하는 B(32)씨. 이들은 정신없이 돌아가는 공장 안에서 화장실 갈 틈도 없이 일하고 있다. 예전엔 시간당 완성차 17대를 뽑아냈는데 요즘엔 22대를 뽑는다. 공장 안에는 잠깐 앉아 쉴 수 있는 의자도 없다. 대규모 정리해고가 진행되면 과로사 비율도 증가하기 마련이다. 인력감축은 노동강도 증가로 이어진다.

경제성만을 고려한 대규모 정리해고가 외려 생산성과 효율성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A씨와 B씨는 공장 안에 떠도는 흉흉한 소문이 늘 마음에 걸린다.
“어느 라인이 외주화된다더라, 사무관리직이 대거 구조조정 된다더라…. 이런 소문을 들으면 불안하죠. 해고자들을 봐도 그렇고….”

월급은 깎이고 복지혜택도 줄었다. 그들은 파업 사태를 겪으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일자리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고 했다.

형, 동생하던 동료들끼리 격렬하게 대립했던 기억은 이들에게도 치유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B씨는 매일 아침 이런 생각을 떠올린다고 했다.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가는 걸까? 회사가 매각돼 새 주인이 찾아오면 또 어떻게 될까?”

구은회·김은성 기자
 

“쌍용차 노동자들의 앓고 있는 마음의 병은 무리한 경찰력 투입이 키운 사회적 질병입니다.”
백남순(41·사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업국장의 말이다. 포천의료원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로 일하는 백 국장은 최근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들을 상대로 진행 중인 심리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77일간 파업농성이 진행된 평택공장에서 의료지원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지옥 같은 상황을 겪은 해고자들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표출할 수밖에 없는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노사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는 회사측과 기다렸다는 듯이 강압수사를 벌이는 검찰과 경찰이 그들의 병을 키우고 있어요.”
백 국장에 따르면 해고자들은 만성 소화불량과 수면장애, 환청과 대인기피증 증세를 보이고 있다. 해고자 10명 중 4명은 고도의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 대규모 구조조정에 따른 후유증이다. 2001년 정리해고를 겪은 대우자동차 노동자들도 같은 증세를 보인 바 있다. 당시 대한산업의학회가 대우차 정리해고자의 정신건강상태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해고자들은 △현직자에 비해 생활이 불규칙해지고 △음주·흡연 횟수가 늘고 △부부 간 대화가 줄어든 대신 싸움이 늘고 △부부 간 성관계가 감소하고 △자녀·친척·친구·이웃과의 갈등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쌍용차 노동자들에게도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의료부문 시민단체들이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 257명의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70.1%가 부부관계가 악화됐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81.4%는 동료관계 악화를, 84.1%는 이웃관계 악화를 호소했다. 사회에 대한 불신도 상당했다. 응답자의 98%가 회사에 대한 불신을, 98.8%가 국가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주변인과 주변환경에 대한 불신은 파업 참가 조합원들의 심리를 위축시켰다. 조사대상의 42.8%에게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발견됐다. 자살 등 극단적 선택을 야기할 수 있는 고도 우울증 상태인 응답자도 41%에 달했다. 백 국장은 그러나 쌍용차 해고자들을 ‘환자’로 취급해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노동자들이 자신감도 많이 떨어져 있고 정당한 자기 의사표현도 주저하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환자로 바라봐서는 곤란합니다. 엄연히 문제를 일으킨 주체가 있는데 거기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노동자들 개개인에게 해결하라고 방치하는 건 일의 선후가 맞지 않아요.”
그는 해고자들이 회사측과 검·경찰에 대한 분노와 배신·절망감을 어찌하지 못해 안절부절하는 상태라고 전했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유발한 대인기피증으로 집 밖에 나오지 못하는 해고자도 여럿이라고 했다. 우선적인 치유책은 해고자들의 부담감을 덜어 주는 것이다.
백 국장은 “평택시와 정부는 긴급 구제 대출을 통해 교육·치료비 등 실질적인 생활비를 지원하는 등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근본적인 치료방법은 따로 있다고 했다.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들에게 분명하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주변의 힘이 많이 필요해요. 평택공장으로 모여들었던 그 많은 연대단체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해고자들이 자본과 정부의 노동탄압에 맞서 견딜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힘을 모아야 합니다.” 김은성 기자

“엄마·아빠의 고통을 아이들도 고스란히 느끼고 있어요.”
쌍용차 해고자 고동민(35)씨의 부인 이정아(36·사진)씨는 요즘 7살짜리 딸과 5살짜리 아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아빠가 구속된 뒤 아이들은 부쩍 엄마를 찾는다. 엄마와 떨어지기 싫다며 유치원에도 가지 않는다. TV를 보면서도 곁눈질로 엄마를 찾는다.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고, 종종 자신의 화를 이기지 못해 부수고 때리는 폭력적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파업에 참여한 가정의 아이들이 대부분 그래요. 늘 집 밖으로 돌아 엄마 속을 썩이던 옆집 아들은 이제 방문 밖으로도 나가지 않으려고 해요. 또 다른 아이는 우연히 파업현장에 있던 모습이 언론에 보도된 뒤, 또래들이 놀리자 스트레스로 원형 탈모증이 생겼어요.”
이씨는 어른들의 상처를 닮아 가는 아이들을 볼 때면 말문이 막힌다. 그래도 주변에서 도와주는 손길이 있어 아이들을 보듬을 여유가 있다고 말했다.
“내 손으로 만든 밥을 직접 먹여 주니까 그나마 아이들이 안정을 찾는 것 같아요. 그게 요즘 저의 유일한 낙이에요. 생활비나 병원진료비 등은 이름 모르는 분들의 도움까지 받고 있어요.”
이씨는 출산을 앞두고 있다. 보건소 선생님의 배려로 초음파 검사도 무료로 받았다. 주변의 엄마들이 밥과 반찬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일주일에 두 번 수원구치소로 남편 면회를 가는데, 태어난 아기가 돌이 되기 전에 아빠가 나올 수 있을지 늘 걱정이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보며 ‘싸우면 저렇게 힘들어지는구나. 눈감고 조용히 살아야 하는 게 세상이치구나’라고 생각할까 봐 두렵기도 하다.
“파업이 끝나고 나니 더 힘든 것 같아요. 세상의 편견에 맞서고, 우리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제가 더 힘을 내야죠.”  김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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