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저녁 서울 삼선동 노동자극단 ‘아해’ 연습실. 한 남자 단원이 청소기를 돌리며 청소를 하느라 분주하다. 건물 지하에 마련된 연습실 벽에는 방음 스펀지가 붙어 있었고, 한쪽 벽에는 공연 때 입은 무대의상들이 어지럽게 걸려 있다.

“정말 앵콜공연을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조연출은 해외여행을 떠났고, 배우 두 명은 결혼과 출산으로 앵콜 공연에 빠지게 됐어요.”

지난 78년 창단된 극단 아해<사진>는 올해 30회를 맞은 근로자문화예술제 연극부문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99년 대통령상을 수상한 후 10년 만이다. 오는 30일 앵콜공연을 앞두고 한창 연습 중인 극단 아해의 김종희(41·사진) 단장을 만났다.
 

올해 아해가 공연한 작품은 선욱현씨의 ‘고추말리기’. 우리나라의 뿌리 깊은 남아선호사상과 낙태를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연출을 맡은 김 단장은 왜 이 작품을 선택했을까. 의외로 간단한 답이 돌아왔다.

“저는 기본적으로 배우가 많이 출연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해요. 다른 극단은 10명 정도 출연시키는데 저는 20명이 기본이에요.”
아해는 매년 2편 이상 정기공연을 하고 있지만, 출연기회가 그리 많지는 않다. 때문에 되도록 많은 배우를 출연시키려는 단장의 ‘배려’다.

배우들은 모두 노동자다. 대기업의 대리에서 홈쇼핑 직원·컴퓨터 프로그래머까지 직업도 다양하다. 일과 연극을 병행하는 이들이지만 공연을 앞두고 2개월은 거의 매일 연습실을 찾았다.

“야근을 하는 배우도 많고 각자 스케줄이 달라서 보통 밤 9시는 돼야 연습이 시작돼요.”
본업은 따로 있기 때문에 연습시간이 늘 부족하다. 송희정(30) 극단 부대표는 “극장에서 공연을 한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조명이 꺼지면 야맹증이 있는 배우들은 서로 부딪치기도 한다”며 “배우들이 공연 첫날에 처음으로 다 모이는 극단도 있다”고 말했다. 연습 도중에 회사로부터 전화가 심심찮게 걸려온다.

이날 저녁 8시50분께 드디어 연습이 시작됐다.
“어머 그새 살이 왜 그렇게 많이 쪘니. 그만 먹어. 물도 조금만 마셔~.”
마냥 언니 같던 김 단장이 매서운 눈빛으로 배우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적한다. 이번 공연에 참가한 배우는 전체 단원 40여명 가운데 22명. 남자보다 여자가 많다.

“신입 단원은 1월에 딱 한 번 뽑아요. 직장인이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어요. 처음부터 연기를 잘하는 사람보다는 체계적으로 훈련시켜서 무대에 서게 하죠.”

들어오는 것은 쉬워도, 주인공을 맡으려면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의상에서 무대·각종 소품·분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단원들이 직접 해결한다. 후배들은 주로 무대에 서고, 선배들은 스태프로 활약한다.

“연습을 하려면 되도록 칼퇴근을 해야 하거든요. ‘연극해서 저래’ 이런 얘기를 듣지 않으려고 회사 안에서 일도, 대인관계 관리도 무척 열심히 하죠.” 송 부대표의 말이다.

지난 3월 처음으로 연습실을 마련한 극단 아해의 김 단장은 “노동자극단에 대한 정부의 예산 지원이 좀 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 해 문화예술제 참가 지원비는 100만원인데, 지난 10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극장 대관료가 일주일에 15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올해 근로자문화예술제 시상식은 29일 저녁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다. 미술부문은 정명봉(47·LG하우시스)씨, 문학부문은 홍미례(36·동막초병설유치원)씨가 각각 대상과 국무총리상을 수상한다. 30일 오후 5시에는 문화일보홀에서 극단 아해의 앵콜공연이 펼쳐진다. 관람료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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