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산업별노조를 이끌고 있는 박유기(44) 전국금속노조 위원장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금속노조 소속 최대 단위조직인 현대자동차지부와의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또 기업지부 해소를 골자로 한 금속노조 조직개편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이 같은 관심은 금속노조가 처한 현실을 반영한다. 완성차노조들이 산별노조로 전환해 금속노조의 규모가 기존 4만명에서 15만명으로 확대된 지 3년이 됐지만, 조직의 실상은 기업별노조의 연맹체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외연 확대의 속도는 더디고, 상당수의 기업지부는 여전히 중앙교섭에 불참하고 있다.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는 기업지부 해소 문제도 마찬가지다. 기득권 축소에 반발하는 기업지부의 정서가 여기에 반영돼 있다.

그러나 기업지부만 싸잡아 비판하기에는 현재의 교섭구조가 안고 있는 문제점도 만만치 않다. ‘중앙교섭-지부집단교섭-지회보충교섭’으로 이어지는 단선적인 교섭구조는 업종별·산업별 혹은 원하청 관계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의제를 담아내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을 받아 왔다. 중앙교섭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 기업지부들은 ‘기업 안으로’, ‘기업별로’를 외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박 위원장은 결코 자유의 몸이 아니다. 그는 현대차노조 위원장 출신이다. 박 위원장 자신이 ‘이기적인 정규직노조’라는 비판을 수없이 들었다. 그런가 하면 박 위원장은 지금의 금속노조가 만들어지도록 기틀을 닦는 역할도 했다. 현행 노조 규약은 그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다. 양쪽의 고민을 내밀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강점이라면, 조직적 결단이라도 이를 밀어붙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그의 약점이다.

지난 16일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박 위원장은 “지금 필요한 것은 시간과 소통”이라고 강조했다. 조직개편이나 교섭구조 다변화, 고착화 양상을 띠고 있는 정규직-비정규직 갈등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플레이에 일희일비 않겠다"

박 위원장은 최근 부산 한진중공업과 창원 효성중공업·대림자동차 등 경남지역 투쟁사업장에 다녀왔다. 단골 노사분쟁 사업장도 있고, 고용위기에 따른 구조조정 사업장도 있다.

“효성중공업은 막대한 순이익을 내고도 임금을 동결하겠다며 직장폐쇄까지 한 사업장입니다. 대림자동차는 정부의 오토바이 규제강화 정책이 인력 구조조정을 부채질한 경우고요. 정부의 기업 프렌들리 정책이 자본에 엄청난 자신감을 불어넣고, 고용위기까지 확산하고 있습니다.”

박 위원장은 경남지역 방문 길에 울산 현대자동차에도 들렀다. 이경훈 현대차지부 지부장과의 만남은 언론에 실시간 중계되다시피 했다. 이 지부장의 교섭권·체결권 위임발언, 현대차지부의 조합비 납부 보류, 재임 시절 납품비리 관련 박 위원장에 대한 조합원 권리정지 1년 징계건 등은 연일 언론의 주요기사로 보도됐다. 이에 대해 박 위원장은 "언론이 사안을 지나치게 부풀렸다"고 지적했다.

“교섭권·체결권은 기본적으로 노조에 있습니다. 현실을 감안해 권한을 위임하더라도 지역지부 정도까지 가능하지, 기업별 단위까지 교섭권을 다 줄 수는 없습니다.” 노조의 규약에 따르되, 교섭권 위임은 조직체계를 흔들지 않는 선까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조합비 문제에 대해서는 기업지부 해소를 골자로 한 조직체계 개편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한 혼선이라고 설명했다.

“지부가 조합비 납부를 보류하겠다는 것은 이미 노조에 보고된 사안입니다. 노조 모르게 지부가 전격적으로 결정한 일이 아닙니다. 조직체계 개편이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부 역시 교부금 축소에 대한 부담이 있었을 겁니다. 지부는 납부한 조합비의 56%를 교부금으로 내려 받지만, 지회는 40%만 받게 됩니다. 그러나 아직 체계개편을 매듭짓지 못했기 때문에 교부금은 기존대로 교부됩니다. 가예산도 그에 맞게 잡아 놨고요.”

박 위원장은 자신이 직접 연관돼 있는 징계 문제에 대해서는 지부의 현명한 판단을 구하는 수준에서 말을 아꼈다. 노조 규약에 따르면 지부 등 하급단위에서 발생한 징계건은 위원장에게 보고하도록 돼 있다. 위원장에게 심사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자칫 자신의 징계건을 자신이 심사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박 위원장은 “금속노조 법률원에 문의한 결과, 노조 위원장 탄핵 여부는 조합원 총회에서 다뤄질 문제라는 의견서를 받았다”며 “노조와 지부의 발전을 위해 자주 만나 대화하기로 한 만큼 지부도 현명하게 판단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기업지부 해소, 시간이 필요하다

언론이 조장한 것이든, 현재의 금속노조 시스템이 야기한 것이든 간에 노조와 현대차지부의 갈등은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논란을 통해 조직체계 개편을 위한 앞으로의 논의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졌다. 박 위원장은 다음달 열리는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이 문제를 매듭짓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기업지부 해소는 박유기 집행부가 공약으로 내놓은 최우선 과제이기도 하다.

“이미 선출돼 있는 기업지부 임원들에게 강제로 직을 내놓으라고 해서 될 일도 아니고, 기업지부 해소를 2년 뒤로 유예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닙니다. 유예할 경우 현재의 기업지부 구조는 고착화될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복안은 무엇일까. 박 위원장은 "자신의 임기 안에는 반드시 결론을 내겠다"고 말했다.

“지금의 금속노조는 중앙과 위원장에게 권력이 집중돼 있는 구조입니다. 지역지부 중심의 운영, 산업·업종별 정책기능이 강화된 중앙으로 이원화할 시점이 됐습니다. 그런데도 기업지부 조합원들의 의식수준은 단지 ‘지역지부로 가면 망한다’는 데 머물러 있어요."
지역지부를 중심으로 한 노조 운영이 조합원의 권리와 이익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설득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무적 혼선을 최소화 하기 위한 보완책도 필요하다.

"조직체계 개편에 따른 조합비 배분 문제는 대공장이든 중소·영세 사업장이든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사안입니다. 조합원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듣고, 1년 안에 로드맵을 내놓을 생각입니다.”

업종별, 원하청 특성 반영한 중층적 교섭 필요

박 위원장은 지금까지의 금속노조에 대해 전략과 전술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전 집행부의 중앙교섭 외연확대 추진전략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것이다.

“2007년 교섭에서 체결된 확약서는 결과적으로 사용자들에게 중앙교섭에 참가하지 않아도 된다는 명분만 부여했습니다. 중앙교섭의 의제·절차·방법을 합의한 뒤 다음해 교섭에 나오라는 내용인데, 사용자들은 ‘합의가 안 돼 교섭에 못 나간다’고 버텼죠.”
그는 근본적으로 교섭체계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자본과 노조가 교감을 쌓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간연속 2교대제 문제는 현대차지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현대·기아차 노사는 물론 수많은 부품업체 노사가 머리를 맞대지 않는 한 풀 수 없어요. 교섭의 틀을 넘어야 합니다. 완성차업체 노사 간 간담회, 원하청 노사 워크숍 등 대화의 틀은 다양할수록 좋다고 봅니다. 산별노조로 전환한 뒤 금속연맹 시절보다 업종별 현황 파악이 안 되고 있습니다. 노조 정책실과 교섭실 역량을 강화할 생각입니다.”

임금 등 노동조건이 천차만별인 비정규직과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사문화된 원칙에 얽매이지 말자는 게 그의 생각이다. 조직화·차별철폐·정규직화라는 대원칙을 무시하자는 게 아니라 비정규직 문제가 곧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 역시 사회적 방식을 통해 풀어야 한다"며 "산별노조가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에 집착하는 이유는 고정적으로 써야 될 돈이 있기 때문입니다. 의식주와 관련한 지출을 제외하면 자녀 사교육비로 나가는 돈이 가장 많을 겁니다. 현대차의 경우 자녀 학비가 지원됩니다. 하지만 대다수 노동자들이 회사에서 자녀 학비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임금의 양극화는 이런 부분에서부터 비롯되는데요. 사회적 임금으로 임금 편차를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산별노조를 지향하는 이유입니다.”

[약력]
1984 울산공업고등학교 졸업
1988 현대자동차 입사
1998 정리해고 투쟁 관련 구속
2006 현대차노조 위원장·산별노조 전환
2007 성과급 미지급 투쟁 관련 구속
2009 금속노조 위원장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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