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제품 조립공장에서 입사 두 달차인 주부사원이 통근버스 안에서 발작을 일으켜 숨졌다. 그는 부정맥을 앓고 있었는데 사인은 ‘심인성 급사’로 밝혀졌다. 기존 질병이 급격히 악화돼 사망에 이른 것이다.

그는 사망 4일 전부터 매일 4.5시간 연장근무를 했다. 하급심은 동료들과 똑같이 연장근무를 했기 때문에 심인성 급사를 일으킬 정도로 과로를 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과로 이외에 달리 사망의 원인을 찾을 수 없다면 업무상재해로 인정하는 것이 경험칙과 논리칙에 부합하다면서 기존 판결을 뒤집었다.

실수연발 주부사원, 야근 후 급사

2006년 5월 전자제품 조립공장에 입사한 서른 한 살 주부사원 ㄱ씨는 다른 사람보다 일손이 느려 실수가 많았다. 그동안 전업주부로만 살다가 처음으로 공장에 취직하다 보니 ‘초짜’로 온갖 실수를 저지르기 일쑤였다.

전자제품의 스위치를 조립하는 부서에서 소속된 그는 부품공급팀에서 일했다. 80여 종의 부품을 자재창고에서 손수레에 싣거나 손으로 들어 조립라인으로 운반하는 업무를 맡았는데, 조업라인에 부족한 부품을 미리미리 파악해 제때 공급해야 하는 게 그의 업무였다.

결국 ㄱ씨는 입사 두 달 만에 대형사고를 쳤다. 부품을 필요한 곳에 제때 운반하지 못하면서 조업라인 가동이 3시간 중단된 것이다. 이로 인해 ㄱ씨는 상사로부터 심한 꾸중을 받았다. 갑작스런 생산차질로 동료들도 야근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틀 후. 연장근로를 마치고 오후 10시쯤 집으로 돌아가는 통근버스에서 ㄱ씨는 발작을 일으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사망한 뒤였다. 부검결과 사인은 심인성 급사로 밝혀졌다. ㄱ씨는 평소 부정맥을 앓고 있어 약을 복용하기도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ㄱ씨의 유족보상금 및 장의비청구를 거부했다. 기존 질병이 악화된 것이므로 업무상재해로 볼 수 없다는 이유다. ㄱ씨의 유족은 소송을 제기했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기존질병 악화"

이 사건의 원고는 ㄱ씨의 유족,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이다. 하급심은 ㄱ씨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다고 판결했으나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의 판결요지는 이러하다.

“과로의 내용이 일반적으로 감내하기 곤란한 정도이며, 본인에게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질병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진 경우 과로 외에 달리 사망의 유인이 됐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업무상 과로와 신체적 요인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해야 한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ㄱ씨의 업무특성상 신입사원이 적응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 점 △ㄱ씨의 상사인 생산조장 조아무개씨도 조사 과정에서 이를 인정했으며, ㄱ씨가 다른 직원들에 비해 업무파악이 빠른 편이 아니었다고 진술한 점 △ㄱ씨가 사망 전 연속 4일간 4.5시간씩 연장근무(하루 12시간 이상을 근무한 셈)한 점과 사망당일 연장근무 후 통근버스에서 발작을 일으켜 사망에 이른 점 △ㄱ씨의 실수로 조업라인의 가동중단 사고가 발생, 동료들이 추가로 연장근무를 해야 했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두 달 남짓밖에 안 된 ㄱ씨에게는 큰 심적 부담과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주요하게 고려했다. ㄱ씨의 기존질병인 부정맥이 업무와 관련이 없다 하더라도 과로와 스트레스가 이를 악화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은 원심이 업무상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심리를 다하지 않고 채증법칙을 위배해 사실을 오인했거나,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업무상재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결했다.

[관련판례]
대법원 2009년 3월26일 판결 2009두164 판결 유족보상및장의비부지급결정취소
광주고법 2008년 12월4일 판결 2007누1674
광주지법 2007년 9월20일 판결 2007구합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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