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당국은 23일 신종플루에 감염된 71세 노인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국내에서 신종플루로 숨진 사람은 모두 10명, 두 자릿수대로 진입했다. 국민의 심리적 불안감도 높아지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콜록콜록 기침만 해도 따가운 시선이 느껴질 정도다.

사업장의 신종플루 대책은 여전히 임기응변에 그치고 있다. 서비스 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들은 무방비로 신종플루 감염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사용자의 조삼모사식 대응으로 이중·삼중의 피해를 입고 있다.

내로라하는 대형 백화점은 신종플루가 유행하자 판매직 노동자에게 해외여행 후 일주일간 출근금지 명령을 내렸다. 혹시나 외국에서 신종플루에 감염됐을 가능성을 우려해서다. 백화점 판매직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은 백화점에 직접고용되지 않은 위탁·임대매장 소속이다.

백화점에서 화장품을 판매하고 있는 한 노동자는 회사가 성과달성 인센티브로 제공한 해외연수를 유급휴가로 다녀온 후 백화점의 지침에 따라 일주일간 집에서 쉬어야 했다. 문제는 출근할 수 없는 일주일을 회사에서 무급휴가로 처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백화점은 하루에도 적게는 수백 명, 많게는 수천 명의 손님이 오가기 때문에 신종플루 감염 위험이 크지만 정작 마스크조차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다”며 “근무자들의 신종플루 예방은 나 몰라라 하면서 다짜고짜 출근하지 마라는 조치는 납득하기 힘들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백화점뿐만이 아니다. 한 보험회사 콜센터도 마찬가지로 해외여행자의 출근을 일주일간 막고 있다. 물론 무급휴가다. 때문에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 노동자들은 신종플루 감염 사실을 쉬쉬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특수고용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는 더 심각하다. 불공정한 갑-을 계약으로, 신종플루로 인한 격리치료 기간에 발생한 손실마저 물어내야 한다.

보건당국은 신종플루의 지역사회 감염이 일반화되면서 감염경로 파악을 포기해 버렸다.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이 내놓은 ‘신종플루 업무상재해 판정지침’에 따르면 업무관련성을 노동자가 입증하지 않는 한 산재보상은 불가능하다. 보건당국조차 손 놓아 버린 역학조사를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것은 너무한 처사라는 비판이 높다.

공단에 따르면 이미 4명의 노동자가 신종플루로 산재 인정을 받았다. 업무로 인해 신종플루에 감염됐을 개연성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엄격한 잣대의 업무상재해 판정지침을 세우기 이전에, 사업장의 신종플루 예방대책이 그만큼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는지 따져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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