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안전보건 분야에서 이슈는 단연 ‘석면’이었다. 노동자들의 석면 문제가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한 한계도 있었지만, 석면특별법 제정을 위해 노동자들이 직접 서명운동에 돌입하고 석면질환 노동자를 찾기 위해 캠페인을 벌인 것은 주목할 만했다.

노동부는 지난 4월 석면함유 건축물을 철거하고 해체할 때 지켜야 하는 안전보건조치에 대한 세부 규정과 석면조사기관·해체제거업자 지정요건 등을 규정했다. 그런데 노동부가 이런 내용을 담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하자 노동계가 반발했다. 석면의 피해 당사자인 노동자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노동부가 배포한 ‘산안법 시행령 조문별 제·개정 이유서’를 보면 이 사안에 대한 주요 이해당사자와 정당별 의견이 포함돼 있다. 이유서에 따르면 환경부와 서울시·한국경총 등이 석면조사 대상을 축소하고 석면조사 예외 인정을 요구했다. 국내여건을 감안해 주택의 경우 200제곱미터 이상만 석면전문조사기관이 조사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었다. 특히 경총은 석면해체·제거업체를 통한 작업 대상의 축소·제한을 촉구했다.
하지만 노동계가 어떤 의견을 밝혔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조기홍 한국노총 안전보건연구소 국장은 “석면관련 산안법을 개정할 당시 석면 해체·제거 노동자의 건강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노동계 의견을 수렴해 제도적 보완을 했더라면 보다 좋은 제도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국장은 “정부 관료와 일부 전문가들의 얘기만 수용하다 보니 현장과 괴리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산안보건정책심의위 회의 2년간 ‘0건’

그렇다면 노동부가 안전보건정책을 심의하고 운영하는 데 노동계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것이 비단 석면 문제뿐일까. 최근 노동부가 공개한 ‘노동부 정부위원회 현황’ 자료를 보면 산업안전보건정책심의위원회는 2007년 본회의 한 차례, 같은해 분과위원회 2차례를 실시한 이후 더 이상 회의를 개최하지 않았다. 그나마 2007년 회의도 서면회의였다.<표1 참조>
 
 


산안정책심의위는 지난 90년 정부 입법으로 설치됐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7조)은 산업안전·보건업무에 관한 기본계획과 중앙행정기관에 관련된 주요 정책을 종합적으로 심의·조정하기 위해 노동부에 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산업재해 예방에 관한 중장기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관련 정책에 관한 사항을 중앙행정기관과 심의한다는 것은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위원회는 안전보건정책·산업안전·건설안전·작업환경관리·건강관리 전문위원회 등 5개 분과위원회로 구성돼 있다.

위원회 위원은 총 28명이다. 노동부차관을 위원장으로 노동부 산업안전보건국장과 기획재정부·법무부·행정안전부·교육인적자원부·지식경제부·보건복지가족부 등 당연직이 11명이다. 위촉직 위원은 한국안전학회 회장을 비롯한 학계 4명, 경총 등 기업계 5명, 노동계 5명 등 17명이다. 노동계는 한국노총의 경우 사무총장과 전국택시노조연맹 위원장·전국금속노조연맹 위원장, 민주노총에서는 민주노총 부위원장·건설노조 위원장 등이 위원으로 위촉돼 있다. 위촉직 위원들의 구성을 살펴보면 나름대로 노사정을 모두 포괄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위원회 회의는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노동계 목소리에 귀 닫은 노동부

위원회 개최와 관련한 예산도 있다. 2007년 774만원 중 225만원가량이 집행됐다. 2008년과 2009년에는 각각 564만원과 2천492만원이 예산으로 책정됐지만, 집행되지는 않았다. 노동부 관계자는 “중장기 계획의 경우 산재예방 5개년 계획이 있는데 5년마다 한 번 심의할 수밖에 없고 다른 안전보건정책은 그다지 많지 않다”며 “산업안전보건정책심의위원회의 기능이 고차원적이기 때문에 회의 개최 건수가 적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위원회뿐만 아니라 노사의 의견을 수렴하는 노동부 산업안전보건국 내 각종 태스크포스(TF)도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노동계 관계자는 “정현옥 국장이 부임한 이후로 1년 동안 노사의 의견을 듣는 회의가 거의 없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김은기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심의위원회뿐만 아니라 명예산업안전감독관제도 TF 회의 등 각종 회의가 많았는데, 이명박 정권이 집권한 이후에는 노사정 간에 소통이 단절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영규 노동부 안전보건정책과 서기관은 "노동계가 의사를 밝히는 기회 자체를 박탈한 적은 없으며 제도개선 TF에는 노사단체가 모두 참가하고 있다"며 "다만 노동부의 정책과 법 제도 개선시에 노동계의 주장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밝혔다.

산안정책심의위 졸속 폐지 논란

정부는 지난해 5월 국무회의에서 정부 내 위원회 정비계획을 확정했다. 각종 위원회가 난립해 의사결정 속도를 떨어뜨리고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거의 운영되지 않고 있었던 산안정책심의위도 도마 위에 올랐다. 결국 지난 16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산안법 7조가 삭제되면서 산안정책심의위는 6개월 뒤 폐지된다. 위원회의 기능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산업재해보상보험심의위원회로 통합된다. 향후 산재보상보험심의위는 산업재해보상보험 및 예방심의위원회로 운영될 예정이다.<표2 참조>
 
 


문제는 별도의 심의위에서도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던 기능들이 통합되면서 더 위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두 위원회의 성격도 현저히 다르다. 산안정책심의위가 노사정이 산재예방에 관한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중앙행정기관끼리 조정하는 기구라면, 산재보상보험심의위는 산재보험 제도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보험료율을 결정하는 등 산재기금운용에 관한 기능이 강하다.

결국 위원회를 정비해야 한다는 정부의 계획 때문에 위원회의 중요성과 기능에 대한 의견수렴 없이 졸속 폐지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산업안전보건정책을 심의할 때뿐만 아니라 심의위원회 존폐 문제에서도 노사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것이다.
김은기 국장은 “심의위 위원들조차 위원회가 폐지되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며 “두 위원회의 기능이 통합된다고 해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조기홍 국장은 “통합되는 심의위에서 분야별 전문위원회가 신설되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노동계가 먼저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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