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 간부들이 요즘 잇따라 장례식장에서 밤을 새고 있다. 조합원들의 사망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리기 때문이다.
15일 철도노조 홈페이지(krwu.or.kr)를 열자 부고를 알리는 공지 2건이 나란히 떴다. 지난달 20일과 21일 조합원 2명이 잇따라 사고를 당해 운명했음을 알리는 내용이다. 오송전기지부 소속 김아무개(42) 조합원은 지난달 20일 오후 2시26분 경부고속선 오송보수기지 전차선로 교육장에서 직무교육을 마치고 전철주에서 내려오다 추락했다.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이송돼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5일 숨을 거뒀다.

또 21일에는 분당차량지부 소속 조합원 이아무개(44)씨가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사에서 잠시 테니스를 치던 중 쓰러졌다. 병원에서 뇌사 판정을 받은 후 사망했다. 평소 특별한 질병이 없이 건강했던 이씨의 사망은 철도 노동자에게 큰 충격을 던졌다. 그가 근무한 분당차량사업소에는 평소 7명이 근무하지만 최근 결원이 발생해 2명이 빠진 상태였다. 노조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공기업 선진화방안에 따라 인력은 주는데 업무는 오히려 늘어나 철도 노동자들이 일상적인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사망부조금 지급건수 1년 새 4배 증가

철도노조는 조합원이 사망한 경우 부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런데 사망부조금 지급건수가 인력감축이 본격화된 지난해부터 부쩍 늘었다. 노조에 따르면 2007년 사망부조금 지급건수는 총 8건이지만 지난해는 39건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 8월까지만 벌써 19명의 조합원이 숨져 부조금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태영 노조 노동안전국장은 “지급대상 범위를 지난해부터 확대한 측면도 있지만 인력은 주는데 업무는 그대로여서 과로가 원인이 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흔히 ‘과로사’로 불리는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숨진 조합원이 지난해만 14명으로,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는 간암이나 폐혈증·자살·작업 중 추락 또는 열차충돌로 인한 사고 등이다. 이 국장은 “철도 노동자의 업무상재해나 사망은 최근까지 급격한 감소추세였으나 지난해부터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철도공사에 따르면 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간 발생한 철도 산업재해는 총 305건으로, 연 평균 11.6명꼴로 숨졌다. 그러나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재해발생건수는 연간 9.6건·사망자 4.6명으로 크게 줄었다. 그렇다면 지난해부터 뇌심혈관계질환을 비롯한 업무관련성 질병 또는 사고로 숨진 조합원이 부쩍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공사는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방안에 따라 4월 공기업 가운데 최대 규모로 대규모 인력감축을 단행했다. 이사회에서 5천115명의 정원감축안을 통과시켰는데 여기에는 지난해 자연감소분 610명도 포함돼 있다.

반면 신규업무는 계속 늘고 있다. 7월 개통한 경의선 복선전철을 비롯해 2012년까지 637킬로미터의 철도가 새로 만들어진다. 공사가 추산한 필요인력만 2천615명이다.

 


4시간 하던 업무, 2시간30분 안에 끝내야

신규업무에 따라 철로가 늘어나고 운행횟수도 증가하는데 인력충원은커녕 정원이 감축되면서 업무량은 배로 늘었다. 보통 선로보수 업무는 열차가 다니지 않는 시간(차단시간)에 진행된다. 차단시간은 보통 3시간30분에서 4시간 가량인데 열차운행이 늘어나 요즘에는 2시간30분안으로 단축됐다.

이태영 국장은 “업무량이 늘어난 만큼 작업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한데 공사는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며 “앞으로도 과로사나 업무상재해가 늘어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신규채용이 이뤄지지 않아 철도 노동자의 평균연령이 높아지는 것도 뇌심혈관계질환의 공포를 키우고 있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전력노조 “비용절감 때문에 올해만 3명 숨져”

한국전력공사에서는 지난해까지 산재사망 사고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위험이 수반되는 업무 상당수가 아웃소싱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 들어 벌써 3명이 업무 중 감전사고로 숨졌다.

2월29일 인천에서 전봇대 부품을 교체하던 한전 직원 두 명이 감전사고를 당했다. 김아무개(43)씨는 그 자리에서, 정아무개(36)씨는 다음날 새벽 숨졌다. 또 7월10일에는 경남 산청에서 고압선 주변에 웃자란 나뭇가지를 자르는 작업을 하던 박아무개(45)씨가 감전으로 사망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원래 협력업체가 했던 업무를 하다 사고를 당했다는 점이다. 전력노조에 따르면 보통 긴급복구작업은 한전이, 일상보수작업은 협력업체가 각각 담당했다. 국제유가 인상으로 적자 폭이 올해 크게 늘어나자, 정부로부터 비용절감 압박이 커졌다. 한전은 아웃소싱 업무 중 일부를 본사 직원들에게 맡겼다.

이성모 노조 산업안전국장은 “2건의 사망사고 모두 불안정한 상태에서 작업을 했던 것이 사망원인”이라며 “인력감축으로 심리적 부담이 큰 데다, 없던 일마저 생기니까 안전확보 없이 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전 역시 올 초 2천420명의 정원감축을 단행했고, 사망자는 10% 인력이 감소한 배전·운영업무에서 발생했다.

무리한 인력감축, 기간산업 ‘흔들흔들’

철도와 전력부문 노동자의 잇따른 사망소식은 국민들에게도 큰 위협요인이 된다.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철도와 전기 안전관리에 구멍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부문 노동계는 “일괄적으로 정원을 축소하고 예산을 삭감하는 공기업 선진화방안의 부작용이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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