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탈출’이라는 주장을 하면 공장은 버려야 할 곳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장과 직장을 모두 버리고 밖으로 나가자는 말이 아니다. 노동조합이 주목해야 할 활동이 무엇인지를 냉철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는 뜻이다. 임금의 노예, 임금실리만을 추구하는 ‘공장귀신’이 아닌 ‘잠일술 인생’에 대한 전반적인 성찰과 이를 통해 삶의 시간적 재편, 건강권에 대한 새로운 인식, 가족과 사회관계 및 문화적 영역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 가야 한다.
 
 
대공장 정규직 노조의 새 역할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했다. 현대자동차지부는 노동조합운동에서 언론과 정권, 시민들로부터 가장 많이 두들겨 맞는 모난 돌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현대차를 투쟁의 중심으로 내세운다는 것은 현대차지부도 죽이고 전체 노동운동 또한 죽는 길을 향해 가는 것이다.

현대차지부는 이제 ‘역전의 용사’나 ‘돌격대’가 아니라 새로운 역할을 맡아야 한다.
첫째로 현대차지부는 파업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전투력보다는 현대차라는 사회적 파급력을 활용한 ‘설득과 영향력의 정치를 통한 규범’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

현대차라는 하나의 기업에서 시행되는 제도는 그 자체로 한국 자동차산업의 표준이 된다. 자동차산업을 넘어 제조업, 나아가 한국 노사관계의 새로운 프레임이 될 수 있다.
현대차에서 가장 먼저 제기되고 논의돼 온 주간연속 2교대제는 단순히 근무형태를 바꾸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의 시간배치가 달라지면서 삶의 형태가 획기적으로 달라진다.

더 이상 ‘임금인상’이라고 하는 ‘임금량’의 문제는 핵심이 될 수 없다. 임금제도를 포함해 공장에 얽매인 삶을 바꾸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  

이러한 규범을 만드는 방식은 단순히 파업이라는 군사적이고 물리적인 힘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현대차지부의 간부나 활동가의 역량은 어떤 노동조합의 간부나 활동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이러한 간부와 활동가들이 전투인원을 넘어 정책과 사회적 규범을 만들어 가는 전략가, 노동자의 입장을 노조운동 안과 밖에서 설득하고 확산하는 역할을 하는 집단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돼야 한다. 현대차 내부의 주요한 활동가와 간부들이 노동운동의 전략적 문제를 다루는 ‘정책·전략 단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주간연속 2교대제와 같은 문제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시간·문화·인간관계·지역적 소통까지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금속노조의 정책연구 역량은 한계가 뚜렷하다. 현재와 같이 소수의 외부 전문가를 채용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현대차와 같은 활동가와 간부들의 보고(寶庫)를 방치하지 말고 대대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전혀 새로운 발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

활동가나 간부들의 꿈이 단순히 권력 지향적인 노조의 대의원, 집행부, 위원장이나 혹은 왜곡된 진보정치를 통한 시·도·국회의원이 되는 길만이 아니라 다른 길로도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체 노동자의 삶의 다양한 영역을 개척해 노동자의 희망을 만드는 방향으로 물꼬를 터야 한다.

특히 인식의 전환, 발상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2009년 4월, 이미 금속노조 내부에서는 현대차의 전략을 이렇게 전망하고 있었다.
 
“망한 쌍용차나, 망할 지엠대우차에서 어차피 노조가 대폭 후퇴할 것이니까 임단협 일정을 뒤로 빼서 기다리다가 다른 노조들이 양보하고 후퇴하면 그 분위기를 타고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을 할 것이다.”
 
현대차 노사의 ‘뒤로 빠지기’는 2007년과 2008년에도 나타났으며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현대차가 금속노조에 가입한 이후, 현대차지부는 2007년과 2008년에 다른 지부들과 달리 임단협 시기를 함께하지 않았다.

현대차의 조합원·노조집행부·회사 모두가 원하는 ‘현대차 뒤로 빠지기’를 단순히 ‘비겁함’이나 혹은 ‘맛이 간’ 것으로 이해해야 할까?

비정규직과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현대차지부 조합원들이 더 이상 ‘계급대표주자’가 될 수 없음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현대차를 중심으로 투쟁을 배치하면 실패한다. 15만 산별교섭의 첫해라던 2007년의 실패, 연습게임을 했으니 이제 본게임이라며 반드시 산별중앙교섭을 돌파하겠다던 2008년의 실패를 되풀이할 것이다.

자칫하면 2008년에 그랬던 것처럼 책임공방만 난무할 수도 있다. 금속노조는 “현대차지부가 전체 임단협 일정에 맞추지 않고 자꾸 뒤로 빼서 산별중앙교섭이나 힘 있는 총파업을 못했다”고 주장하고, 현대차지부는 “금속노조가 자꾸 책임도 못지면서 중앙교섭 타결 없이 지부교섭 타결 없다며 현대차지부의 교섭까지 못하게 만든다”는 식으로 금속노조 중앙에 책임을 돌릴 것이다. 현대차지부 간부와 금속노조 간부 간 갈등만 낳고, 현대차 조합원과 금속노조의 거리를 더 멀게 할 뿐이다.

현대차지부의 두 번째 중요한 역할은 사회와의 소통을 이끄는 것이다.
‘배부른 귀족노조’가 노동조합의 상징이 돼 있는 이상 노조운동은 성공할 수 없다. 조직되지 않은 수많은 노동자들마저 노동조합편이 아니라 노조를 비판하는 대열에 동참하게 만든다.

현대차지부가 해야 할 역할은 파업의 빈도를 줄이고 ‘나눔과 연대’를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지역의 어려운 이웃에 대한 활동을 통해 지역의 노동자·서민들과 함께 소통하고 공감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사회공헌활동’은 개량주의적인 것이라는 비판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회사의 광고를 위한 생색내기’나 ‘정치인들의 선거용 사진 찍기’를 넘어 구체적이고 일상적이며 지속적인 ‘나눔과 연대’를 실천해 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배부른 귀족노조’라는 비난을 제거해 나가는 활동이 절실한 시점이다.
사회공헌 활동이 개량주의적이고 시혜적인 것이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으로 외면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개량주의적이고 시혜적인 것을 넘어서’ 더 적극적으로 사회공헌활동을 지역사회와 ‘나눔과 연대’로 발전시키는 것이 해결책이다. 기업의 생색내기용 사회공헌 활동 또한 그 한복판에서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문제를 드러내는 적극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실업이 날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실업노동자·청년실업자와 소통하고 나누며 투쟁하는 새로운 활동을 모색해야 한다.

세 번째의 역할은 ‘보급로를 챙기는 고참’의 역할이다. 누구도 현대차 노동자들이 당장 비정규직들의 투쟁에 그들과 똑같이 파업하고 투쟁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현대차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비정규직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2005년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사업을 위해 50억원 기금모금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한쪽에서는 기금모금 따위로 비정규직 문제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런 종류의 비판은 사업 자체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나온 것이라 할 수 있고 나름대로 타당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나마 할 수 있는 일도 핑계를 대고 빠지는 결과를 낳았다. 언론들은 이를 빌미로 노동조합운동을 싸잡아 비난하기도 했다.
 
“대기업 노조들 ‘비정규기금’ 외면. 민주노총 작년부터 ‘50억 모금운동’, 현대차 등 동참 안해 실적 30% 고작”(한겨레신문 2006년 12월25일)
“정규직, 그들만의 노동운동:절박한 비정규직 고통 외면”
(한겨레신문 2007년 1월23일)
“대기업노조들, 비정규기금 납부결의조차 안돼. 현대·기아차노조, 철도노조 등… 민주노총 전체 납부율 32% 그쳐”
(매일노동뉴스 2007년 5월26일)
“대기업노조 `말로만 비정규직 보호” (연합뉴스 2007년 9월2일)
“‘비정규 기금’ 실적 저조… 대기업 노조가 더 인색”
(경향신문 2007년 9월2일)
“…비정규기금모금운동은 목표액 50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현대차지부·기아차지부·쌍용차지부·철도지부는 아예 기금을 납부하지 않고…” (문화일보 2007년 9월6일)
 

노동운동 내부에는 “대공장 노조들이 투쟁기금이나 지원하고 비정규직의 고용을 위해 기금을 갹출하는 것은 제대로 된 연대를 하지 않고 면피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실리적 노조’ ‘임금인상에 목을 맨’ 노조나 조합원 입장에서는 ‘돈을 내는 것’이 어쩌면 가장 어려운 문제일 수 있다.

현대차나 기아차의 조합원들이 조합비를 내면 금속노조 중앙에서는 그중 상당액을 비정규직이나 중소영세사업장의 투쟁기금으로 쓰거나, 해고된 조합원의 생계를 지원하는 ‘신분보장기금’으로 사용한다.

‘상급단체에 조합비를 엄청나게 내는데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다’는 비판까지 등장하는 마당이다.

이런 반론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비정규직을 위한 기금지원이 개량적이고 시혜적인 것이니 하지 말자’는 주장은 ‘비정규직이나 중소·영세기업의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조합비를 줄이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대공장 정규직 노동조합은 규범을 만드는 역할, 사회와 소통하는 역할, 보급로를 챙기는 고참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전체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시기에 규모와 영향력에 맞는 투쟁의 구심으로 다시 나설 가능성이 유지될 수 있다.
반대의 경우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은 ‘뉴라이트 신노동연합’이나 혹은 엉뚱한 ‘제3의 노총’ 논의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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