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의 ‘억지파업’으로 열차 운행이 지연될 수 있으니 양해바랍니다.”
철도노조가 하루 경고파업을 벌인 지난 8일, 한국철도공사는 전국 역사에 공문을 붙였다. 그냥 파업이 아니라 ‘억지파업’이라는 신조어가 지나가는 시민들의 눈길을 붙잡았다. 사실 공사는 6월 벌어진 노조의 작업규정지키기 투쟁(준법투쟁)에 대해서도 법을 빙자한 태업이라는 의미로 ‘빙법태업’이라는 새로운 사자성어를 유포시킨 바 있다.

공사가 ‘억지파업’, ‘빙법태업’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를 보자. 공사는 노조가 쟁의행위의 주된 목적으로 5천115명의 정원감축과 철도 선진화정책 철회,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공사의 경영권 또는 처분외사항으로, 법에서 정한 정당한 쟁의행위 목적에 위배되므로 ‘억지파업’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노조는 공사가 불성실한 태도로 단체교섭을 1년 이상 질질 끌고 있어 쟁의행위가 불가피하다고 반박한다. 이번 경고파업 역시 ‘성실교섭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강조한다. 노사는 지난해 7월 임금·단체협상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총 161개 조항 가운데 절반 수준인 71개만 합의한 상태다. 허준영 사장 취임 이후 올해 5월25일 교섭이 재개됐지만 지금까지 본교섭은 단 2차례 열렸을 뿐이다.

이미 1년이 경과된 단체협상 기간이나, 노사 간 협상진행 정도와 같은 객관적 사실만 놓고 따져 봤을 때, 노조의 이번 쟁의행위가 목적의 정당성을 어겼다는 근거는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공사가 김기태 노조 위원장을 비롯해 42명의 노조 간부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하고 ‘불법파업’ 논쟁을 가열시키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필수공익사업장인 철도는 지금까지 3차례 파업을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결말은 직권중재 회부에 이은 ‘불법파업’이었다. 지도부가 구속·수배됐고 파업 참가자 징계와 손해배상가압류 등 희생도 뒤따랐다. 하지만 직권중재제도가 폐지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필수유지율을 준수하면 불법파업으로 엮일 가능성이 희박해진 것이다.

그러자 공사는 '쟁의행위 목적'이 불순하다며 불법파업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동안 쟁의행위 ‘절차’의 정당성을 어겼다는 이유로 불법이 됐던 철도노조 파업이 이제는 ‘목적’의 정당성 시비로 옮겨 붙고 있는 모양새다. 우려스러운 것은 노동부 역시 공사의 불법파업 주장을 옹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법 집행이 가능한 것인지 노동부에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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