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인플루엔자가 제조업 사업장으로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국내 최대 제조업 사업장인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신종플루 감염자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1일 노동계에 따르면 현대차 울산공장 도장1부에 근무하는 40대 초반의 노동자가 최근 신종플루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는 현재 인근 병원에서 격리치료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자동차에서도 최근 3명의 감염자가 발생해 노사협의를 통해 신종플루 관련 대처 방안을 마련한 상태다.

대규모 제조업 사업장의 경우 노동자들이 공동 작업을 하기 때문에 환자가 섞여 있을 경우 감염 확산은 시간문제다. 현대차 울산공장만 해도 3만5천여명이 하루 두 끼 이상 공동으로 식사를 하고 공동 샤워실을 이용하고 있다. 특히 울산공장에는 40대 이상의 노동자가 많다. 평소 호흡기 질환이나 심혈관질환·간기능질환·당뇨 등을 앓고 있는 경우 더 위험하다. 7일 이내에 37.8°C 이상의 발열과 함께 콧물 또는 코막힘·인후통·기침 중 한 가지 이상의 증상이 있는 경우 즉시 진료를 받고 회사에서는 가급적 출근을 자제시켜야 한다.

현재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의 임원선거가 진행 중인 가운데 후보들도 회사측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열띤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전진하는 현장노동자회’(전현노)측은 ‘현대차, ‘신종 인플루엔자 A’ 드디어 상륙’이라는 제목 아래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임시회의를 즉시 개최할 것을 요구했다. ‘민주현장투쟁위원회’측도 일본 후생성 보고서를 인용하며 정부와 회사측에 신종플루 대책 수립을 촉구했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즉시 개최해야

노동부는 지난달 31일 신종플루 대유행에 대비한 ‘사업장 업무지속계획 수립 매뉴얼’을 배포했다. 노동부는 사업주(CEO)를 중심으로 신종플루 대유행에 대응하기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권고했다.

일부 대기업들은 신종플루 대유행에 대비해 별도의 예산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스크 등을 확보해 지급하고, 해외 출장을 다녀온 직원에 대해 정기검진을 받게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대기업 중에는 정부가 제시하는 지침보다 높은 수준으로 대응방안을 마련한 곳도 있다”고 말했다.

중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별도의 예산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신종플루 감염 예방을 위해 중소사업장의 경우 많은 사람이 모이는 직원식당이나 식료품 저장실을 폐쇄하고 대신 직원들에게 도시락이나 음료수를 배급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직원들 간의 접촉 기회를 줄이기 위해 이런 대책을 실시하는 사업장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사업장 안의 예방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개최다. 산업안전보건법(19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해 노동자와 사용자가 동수로 구성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설치·운영해야 한다. 위원회는 상시 노동자 100명 이상을 사용하는 사업장과 공사금액이 120억원 이상인 건설현장, 산업재해 발생빈도가 높은 유해·위험업종으로 5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에 의무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3개월마다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게 돼 있지만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는 임시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 위원회는 해당 사업장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정할 수 있다. 신종플루 확산처럼 위기 상황에서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진다.

인천공항에서 경비업무를 하는 조합원 11명이 집단으로 신종플루에 감염된 공공운수연맹의 경우 최근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확보하기 위해 대사용자 요구지침을 내렸다. 연맹은 즉각 산업안전보건위원회(또는 노사협의회)를 개최해 △신종플루 감시 체계 마련 △백신 보급 시점에서 위험 직순 순위를 정해 접종을 조기에 받을 수 있도록 요청 △신종플루 예방법 전 직원 특별교육 실시 △보호구 사용 △신종플루 감염환자 발생시 산재 처리 △치료와 요양에 필요한 비용과 충분한 기간 보장 △신종플루 확산 방지를 위한 방역체계를 갖추고 인력·시설·인력 확보 등을 요구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병원사업장 안전대책 의외로 허술

놀라운 점은 2차 감염이 가장 우려되는 병원 사업장도 신종플루에 대비한 노동자 감염 예방 대책이 허술하다는 것이다. 최근 보건의료노조가 산하 17개 민간·공공병원을 상대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5개 병원은 노동자들에 대한 안전대책을 전혀 마련하지 않았다. 마스크 착용이 대책의 전부인 곳도 있었다.

특히 재정이 어려운 지방의료원 등은 별도의 격리병원을 마련하지 못한 채 환자들을 받고 있어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지방의 한 의료원에서는 임신 중인 간호사가 신종플루 환자를 접해 감염된 사례가 발생했다.

노조는 신속하게 임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또는 감염관리대책위원회를 개최해 감염 확산 방지 대책을 논의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감염의심자와 확진자에 대해 응급 처치와 함께 유급 병가를 요청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병원 사업장의 경우 국·공립사업장과 민간중소병원·지방의료원 등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적용받지만 사립대병원은 사학연금법을 적용받는다. 사학연금법상 재해보상을 위한 신청은 사업주가 해야하기 때문에 사업주의 도움 없이는 업무상 재해로 판정받기 쉽지 않다.

 

신종플루 감염, 산재일까?
사업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신종 인플루엔자에 감염됐다면 산업재해로 인정될까.
현재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에는 신종플루를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할 것인가 여부를 판단할 별도의 매뉴얼이 마련돼 있지 않다. 병원 사업장처럼 업무로 인한 감염이 확실시 될 경우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기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되는 경우는 사업장 안에서 동료에게 신종플루에 감염됐을 경우다. 이런 경우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도 논란이 될 수 있지만 신증플루가 어디서 감염됐느냐 여부를 따지기 어려워 산재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신종플루 바이러스의 원인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산재로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건강보험으로 처리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업무를 하다 신종플루에 감염돼 사망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경우 산재로 인정될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업무를 통해 전염된 것을 증명하는 것이 문제”라고 밝혔다.
산재로 인정될 경우 요양기간이 4일 이상이면 휴업급여가 지급된다. 취업하지 못한 기간 전체에 대해 1일당 평균임금의 70%가 지급된다. 집단 감염 사례가 발생한 일부 사업장에서는 요양기간 동안의 임금을 100% 지급받고 산재를 신청하지 않은 사례도 있다. 조현미 기자


 

신종플루 지역감염 점차 확산
우리나라에서는 멕시코로 자원봉사를 다녀온 수녀가 지난 5월2일 신종인플루엔자 확진환자로 판명된 이후 지난달 31일 현재 감염환자는 4천293명으로 늘어났다. 이 가운데 2천494명은 완치됐지만 3명은 숨졌다. 신종플루는 돼지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사람을 통한 감염이 가능하게 된 신종 호흡기감염질환이다. 발열과 콧물·인후통·기침 등 전형적인 계절 인플루엔자와 유사한 증상을 일으키는데 증상 발현 후 7일간 전염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영희 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가족부로부터 제출받아 지난달 27일 공개한 ‘신종 인플루엔자 가을철 대유행 대비 방안’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향후 신종플루 사망자가 1만명에서 2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입원환자는 10만명에서 15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부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일뿐이라며 공식입장이 아님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수치도 정부가 항바이러스제와 백신 등으로 적극적인 방역대책을 세웠을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정부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정부는 10월과 11월에 신종플루 유행이 정점에 도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방역대책이 없을 경우에는 전체인구의 20%가 감염되고 이 중 2만명에서 최대 4만명이 사망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종플루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는 이유는 최근 전염경로가 불투명한 지역사회감염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신규 감염자의 절반 이상은 해외여행 경험도 없다.  조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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