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들어 공기업 경영 자율성은 사라졌다. 정부가 공기업 선진화방안을 통해 사실상 경영과 노사관계의 세세한 부분까지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금을 얼마나 삭감할 것인지, 인원은 어느 정도 줄일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까지 내리면서 관리한다. 노사 모두 융통성을 발휘할 수 없어 해법을 찾기 힘들다."

김관(41·사진) 금융노조 수출입은행지부 위원장은 26일 "공기업 선진화는 경영을 효율화하면서 공공이익을 증진시키는 데 있다"며 "그런데 임금삭감·인원축소에 국한된 노동조건 악화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비판했다. 공기업 선진화의 목적은 사라진 채 수단만 남은 꼴이라는 설명이다.

수출입은행도 최근 정원축소와 임금삭감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일감은 늘지만 신입 직원을 뽑을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지금 있는 인원도 줄여야 하는데 새 직원을 뽑는다면 그만큼 기존 직원이 일터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경영의 자율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해법은 만들어 낼 수 없다"며 "노사가 임금을 줄이되 인원을 유지할 것인지, 그 반대로 할 것인지에 대해 선택권이 있어야 해법을 마련할 수 있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정부의 통제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게 김 위원장의 판단이다. 처음에는 인원을 줄여야 한다더니, 이제는 임금도 삭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이 어렵고 조직의 변화가 필요하다면 노조도 함께 고민하고 동참할 수 있는데, 하나를 양보하면 끝없이 양보를 해야 하는 분위기다.

김 위원장은 "인원축소나 임금삭감의 필요성을 이해한다 해도 그것이 끝이 아니기에 노조가 아무것도 동의해 줄 수 없는 것"이라며 "정부가 앞으로 어떤 요구를 들고 나올 것인지 두려움만 앞선다"고 심경을 밝혔다. 조합원들 사이에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버텨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이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최근 수출입은행 노사는 서로 대화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공기업 선진화 지침 앞에선 노사 대화도 무의미하다. 경영진은 경영평가에 목줄이 잡혀 있고 노조는 조합원들의 불안감 때문에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 노사 모두가 막다른 길에 내몰려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수출입은행은 오는 31일부터 3주간 감사원 감사를 받는다. 단체협약 등 노동조건 관련 사항들이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감사원의 지적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사가 문제의 소지가 있는 연월차 등 휴가제도와 각종 복지제도에 관한 문제를 논의했다"며 "서로 의견이 달라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수출입은행의 노사갈등은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라 더 나빠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금융권 산별교섭이 중단된 것과 관련해 그는 "기관별 교섭이 진행된다면 공기업은 노조가 불리한 상황에서 협상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며 "산별교섭을 통해 최대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끝으로 "공기업이 변화할 필요성은 있지만 현 정부가 추진하는 공기업 선진화는 변화의 방향성도 잘못됐고, 그것을 추진하는 수단도 바르지 못하다"며 "최근 들어서는 정부가 잃어버린 지지도를 회복하기 위해 공기업 개혁을 정치 도구화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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