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없는 성장’이라는 신조어가 눈길을 끌고 있다. ‘고용 없는 성장’이란 말에 익숙한 상황에서 이 신조어는 낯설다. '투자 없는 성장'이라는 신조어가 왜 나왔을까.

최근 한국생산성본부가 주식시장에 상장된 제조업체 250곳을 분석해보니 지난 1999년부터 2008년 사이 기업 매출액은 연평균 11.23%씩 증가했지만 종업원 수는 0.75% 늘어나는데 그쳤다. 투자 또한 줄어 유형 고정자산을 노동자수로 나눈 노동장비율은 99~2003년에도 평균 8.19% 였지만 2004~2008년에는 3.42%로 대폭 하락했다. 1인당 교육훈련비도 같은 기간 22.26%에서 0.76%로 급감했다. 매출 증가가 고용과 투자로 이어지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과 ‘투자 없는 성장’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평균 11% 이상 늘어난 매출액(돈)은 어디로 흘러갔던 것일까. 기업 구조를 단순화하면 보통 이익금은 유보금과 감가상각을 포함한 재투자 비용과 주주 배당금, 종업원 임금인상에 쓰인다. 투자와 고용 없는 성장이라면 배당금에 돈이 쏠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고배당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지는 오래다. 2007년만 해도 은행권 주주 배당금은 당기순이익의 30~50%에 달했다. 2007년 12월 결산법인 255개사가 배당한 현금은 10조5천718억원으로, 2006년 9조5천272억원보다 10.96%가 늘었다. 고용도 투자도 늘지 않는데, 배당금만 크게 증가한 것이다.

외환위기 직후부터 우리나라는 ‘주주자본주의’ 혹은 ‘금융자본주의’로 급속히 재편했다. 정부가 동북아 금융허브라는 구호를 내세우면서 거품이 커졌다. 최근 금융위기 이후 주춤했지만, ‘금융대박’의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

몇 해 전부터 불었던 펀드열풍으로 2007년 펀드 가입 계좌가 2천만개가 넘어섰고 경제활동인구의 20%에 달하는 460만명이 직접 주식투자를 한다. 임금인상은 모든 종업원에게 골고루 돈이 배분되지만 주식은 돈 많은 사람(대주주)이 더 많은 배당금을 가져가는 시스템이다. 주식시장은 이제 돈이 돈을 낳는 투기판으로 변했다.

투자와 성장이 사라진 자리를 주식투기와 높은 배당금이 대체하면 기업이나 시장은 거품만 가득찰 뿐이다. 거품이 꺼지면 고통이 커진다. 최근 금융위기 과정에서 무너진 초국적 금융기업과 제조기업의 사례는 이를 증명한다. 기업이 지속되고 성장하려면 고용과 투자는 필요충분조건이다. 기업가의 벤처정신이 필요한 것은 이러한 영역에서다. 고용없는, 투자없는 성장은 기업의 생명을 단축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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