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대처 전 수상은 이른바 ‘영국병’을 고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대처 전 수상은 강성노조와 파업이 영국병의 핵심이라고 여겼다. 대처 전 수상의 노동정책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는 전국광산노조 파업에 대한 대응방식이다.

영국노총(TUC) 산하의 대표적인 산별노조인 광산노조는 지난 84년과 85년에 걸쳐 무려 51주 동안 파업을 벌였다. 대처 전 수상과 보수당 정부는 탄광을 폐쇄해 노조에 맞섰다. 북해에서 대규모 가스유전이 발견되면서 보수당 정부의 탄광폐쇄라는 강경책이 가능했다. 탄광산업이 사양화되고 있었던 탓이다. 대체에너지원 확보로 파업의 효과가 줄어들자 보수당 정부는 파업사태의 원만한 해결에 소극적이었다. 보수당 정부의 대응은 광산노조 길들이기 또는 무력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광산노조의 파업기간 동안 보수당 정부는 무려 2만명 이상의 경찰력을 동원했다. 이 기간 동안 경찰에 의해 체포된 조합원만 1만여명에 달했다. 이들에게는 불법파업을 벌였다는 이유로 강도 높은 형사처벌과 벌금조치가 내려졌다. 보수당 정부는 파업에 대한 강경대응뿐 아니라 노동관계법 개정작업도 병행했다. 파업 이전에 비밀·우편투표제 도입, 정치파업과 연대파업 금지, 불법파업 참가 조합원 해고 허용, 불법파업으로 발생한 손해에 대한 법률적 면책조항 폐지…. 79년부터 97년까지 이어진 노동관계법 개정의 핵심 조항들이다.

대처 전 수상과 보수당 정부가 파업 대응과 노동법 개정작업을 추진하면서 내세운 구호는 바로 ‘법과 원칙’, ‘노사자율주의’였다. 노사자율주의는 경찰력에 의한 파업 강경진압과 의회의 다수주의에 기댄 허울 좋은 ‘이름’에 다름 아니었다. 사실상 노조 무력화를 위한 명분에 불과했다.

영국 보수당 정부의 광부파업 처리 과정은 쌍용자동차 파업사태 후속처리와 매우 유사하다. 최근 법원은 쌍용차 파업 사태의 책임을 물어 쌍용차 조합원과 금속노조 간부에 대해 대량 구속결정을 내렸다. 무려 64명의 노조간부들이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차디찬 형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97년 한총련 출범식과 관련해 195명이 구속 기소된 후 12년 만에 대량 구속사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노사 간, 노노 간의 앙금과 상처를 털어 버릴 수 있도록 도와 줘야 할 검찰과 법원이 생채기를 내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검찰과 법원은 이달 5~6일 진행된 진압작전 과정에서 나타났던 경찰의 폭력진압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회사측 용역직원들의 불법 폭력행위에 대해서도 불구속 처분했다. 노조간부 대량구속에 비하면 불공평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검찰은 한술 더 떠 생존권과 일자리 유지를 요구했던 쌍용차 조합원과 상급단체 간부들에 대한 '색깔론'까지 거론했다.
 
쌍용차지부 파업에 외부세력이 개입했고, 평택공장의 복지동 내 별도 사무실에 군사위원회를 설치해 파업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산별노조인 금속노조 간부가 산하 쌍용차지부를 지원한 것은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검찰은 초보적인 노동관계법조차 숙지하지 않은 채 외부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검찰과 법원의 공안몰이로 인해 쌍용차 노사의 후속 실무협상도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점거농성을 풀면서 쌍용차 노사는 농성 참여자 640명 중 48%를 구제하기로 했다. 그런데 노조간부 대다수가 구속됨에 따라 실무협상 자체가 열릴 수 없게 된 것이다. 회사측은 아예 노조와 협의 없이 구제해야 할 인원을 선정하겠다고 공언했다. 정리해고 사태의 원인이었던 회사측의 밀어붙이기식 행태가 다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내세운 파업사태 불개입과 노사자율 해결원칙은 허울 좋은 명분일 뿐이다. 되레 정부가 노조 길들이기 또는 무력화에 앞장서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쌍용차를 본보기 삼아 민주노총의 핵심인 다른 완성차노조와 금속노조를 손보려 한다는 지적이다. 경찰력과 의회 다수주의에 기대 철권통치를 했던 80년대 대처 전 수상의 반노동조합 정책이 되살아나는 양상이다.

정부는 어렵게 이뤄 낸 쌍용차 노사의 대타협을 더 이상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쌍용차가 생존하려면 노사 간의 화합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노사 합의사항이 원만히 이행되고, 조업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려면 노조간부 무더기 구속과 색깔몰이 공세를 중단해야 한다. 법과 원칙은 최소한 공정하고 형평성 있게 적용돼야 그 효과가 커진다.

노사자율에 의한 문제해결은 정부의 적극적 중재와 조력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정부의 적극적 중재와 조정 아래 대화와 타협을 이뤘던 사회적 대타협 사례도 있지 않는가. 개별 기업의 노사분규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지역사회는 중재와 지원 노력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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