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기아자동차 회사측 임금협상 교섭위원 전원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국내 주요 대기업 노사관계에서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다.

사장이 포함된 임원 20명의 사직서 제출은 경영실적과 무관하게 이뤄졌다. 집단사직의 배경이 임금협상이었다는 점에서 현대·기아차그룹에서 차지하는 기아차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기아차는 99년 현대차그룹으로 편입된 이후 독자적인 영역이 축소됐다. 그룹 내에서 현대차와 기아차는 '형'·'동생' 관계로 불린다. 그룹의 중심은 동생인 기아차가 아니라 형인 현대차다.

해마다 진행되는 노사 간 임단협도 예외는 아니었다. 임금협상마저도 기아차가 현대차를 앞지를 수 없다는 논리가 작용했다. 현대차 임단협은 기아차 임단협의 바로미터였다. 과거에도 현대차가 먼저 타결한 뒤에 기아차가 동일한 내용으로 타결하는 수순을 밟았다.

2002년 이후 현대차와 기아차 노사가 맺은 임금협약을 보면, 2007년을 제외하고는 두 회사가 해마다 같은 액수의 임금인상에 합의했다. 2002년 9만5천원·2003년 9만8천원·2004년 9만5천원·2005년 8만9천원·2006년 8만5천원·2008년 8만5천원 등 인상 폭이 같았다.

2007년에는 기아차 임금인상액(7만5천원)이 현대차 임금인상액(8만4천원)에 미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해 기아차가 현대차보다 먼저 임단협에 타결했기 때문이다. 뒤늦게 현대차가 임단협에 타결하자 기아차 조합원들 사이에서 "임금협상을 다시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두 회사의 임단협은 다시 원래의 공식으로 돌아갔다. 현대차가 지난해 9월22일 8만5천원 인상에 합의하자 6일 뒤인 같은달 28일 기아차 노사가 동일한 합의를 이끌어 냈다.

그런데 올해 또다시 임단협 역전현상이 발생하는 조건에 직면했다. 현대차지부는 조기선거체제로 전환하면서 6월 중순 이후 임단협을 중단했다. 반대로 기아차지부는 대응수위를 높이며 임금협상 속도전을 전개했다.

문제는 지부의 요구사항인 월급제와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의 경우 기아차가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점이다. 임금인상액만 결정했던 2007년과는 다르다.
기아차 임원들이 집단 사직서 제출을 통해 임금협상을 현대차 타결 이후로 연기하려는 이유다.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내고도 그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기아차의 우울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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