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가평군 경춘선 복선전철 터널공사 현장에서 노동자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안전장비 없이 방수작업을 하다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9일 가평경찰서와 건설노조 등에 따르면 지난 6일 오후 8시40분께 조아무개(40)씨 등 노동자 3명이 터널입구에서 숨져 있는 것을 시공업체(경남기업) 현장과장 김아무개(36)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방수액 유독가스 질식사 추정= 이들은 15미터 높이의 터널과 산이 경계를 이루는 틈 사이에서 줄을 타고 방수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했다. 두 명은 아래쪽에서 방수작업을 하고 한 명은 터널 위에서 줄을 조절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장에서는 18리터짜리 ‘아스팔트 프라이머’라는 제품 8통과 희석제·시너 등이 발견됐다. 이것들을 섞어 방수액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스팔트 프라이머는 아스팔트와 휘발성이 높은 용제를 혼합해 제조된 제품으로 유해 위험 물질로 분류돼 있다. 인화성 물질인데다 도포시 가스가 증발되기 때문에 통풍이 안 되는 장소에서 사용할 때는 반드시 환기를 하고 작업해야 한다.

작업 공간은 윗부분을 빼고는 폭이 매우 좁은 공간이었다. 아래쪽에는 물이 고여 있어 습기도 높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해 화학 물질을 다룰 경우 사업주는 물질안전보건자료를 비치하고, 적절한 보호구를 착용하고 작업하도록 지시해야 한다. 밀폐공간에서 작업할 때에는 송풍기 등을 설치해 공기를 순환시켜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은 채 발견됐고, 적절한 송풍장치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노동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아래쪽에서 작업하던 노동자가 먼저 유독가스에 질식돼 쓰러지고 위에서 작업하던 노동자가 이를 발견해 구하려 내려갔다가 함께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고 현장을 둘러본 김상식 건설노조 북부건설기계지부장은 “작업하는 곳에는 제대로 된 사다리도 없이 줄을 타고 이동하게 돼 있었다”며 “쓰러진 노동자를 발견해도 업고 올라올 수 없는 상황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왜 하루 만에 발견됐나= 유가족들은 노동자들과 연락이 닿지 않자 시공사 측에 여러 차례 확인 전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 등은 5일 방수기계가 고장나자 이를 수리했고, 이날 오후 7시까지 작업을 하는 것이 다른 노동자들에게 목격됐다. 다른 노동자들은 먼저 퇴근했고, 숨진 이들은 그 다음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시공사측은 이들이 다음날 작업을 했는지 여부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시공사측이 방수작업을 도급을 주고 작업상태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을 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고 현장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에 따르면 사고 당일 시공사 관계자들은 대부분 휴가중으로, 관리자 2명 정도만 업무를 보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유가족들은 건설사의 노동자 관리가 잘못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편 건설노조는 “올해 연초부터 건설현장에서 수많은 대형사고들이 발생하고 있다”며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과 시공사에 대한 불이익이 적은데다가 정부의 규제완화 분위기에 편승해 현장 곳곳에서 안전사고들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종국 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산업안전노사협의체를 운영해 노사대표가 안전점검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라며 “건설현장에서 산재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장노동자들이 산재사고 예방활동에 주체로 참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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