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업·특근해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대학에 보내 봤자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 자식이 88만원 세대라면 부모세대는 공장에 묶여 죽도록 일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노동으로 보내고, 지친 몸을 이끌고 자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하는 ‘잠일술 인생’을 보낸다.
 
다수의 패배

앞서 지적한 다섯 가지 프레임이 가져온 결과는 무엇인가? 다수의 패배다. 국민의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의 패배를 의미한다. 고용도 불안하고 임금도 낮고 권리도 없는 비정규직의 확산은 다수 노동자의 패배를 보여 주는 생생한 증거다. 그나마 노동자 중에서도 대공장의 조직된 노동자들은 노동3권은 물론이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임금상승의 혜택을 누렸다.

다수의 노동자가 패배하는 동안 조직된 대공장 노동자들은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이 성공은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배부른 귀족노동자’라는 사회적 공격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 매년 쏟아지는 비난은 단지 보수언론들의 악의적인 왜곡선전에 머물지 않는다. 조직되지 않은 비정규직과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취업난에 허덕이는 다수의 노동자들 또한 대공장 노동조합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쏟아 내고 있다.

87년 이래 20년의 역사를 가진 민주노조 운동은 ‘민중과 노동자의 희망’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비판대상이 됐다. 노동운동의 총체적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20대여, 민주노총을 타격하라!

…(생략-대졸초임삭감에 대해) 노동시장에 늦게 나와서 좌절하는 20대가 분노할 대상을 찾는다면, 그것은 정부나 기업보다는 노동계일 수밖에 없다. 노동계는 그들이 장차로 대변해야 할 예비 노동자들의 권리를 실탄 하나 쏴 보지 않고 정부와 기업에게 양도했다. 왜 더 나쁜 놈들을 때리지 않느냐는 질문은 우문이다. …(중략)… 민주노총은 자신들은 이미 책임을 지고 있다고 항변할 것이다. …(중략)… 사실 민주노총은 연일 기자회견을 하면서 위에서 내가 말한 것과 같은 ‘잡 셰어링’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중략)… 냉정하게 바라볼 때 민주노총의 반발은 대졸초임 문제 그 자체보다는 그것이 기존의 노동자들에게 미칠 수 있는 파급효과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그러한 이기주의는 정당한가? …(중략)… 노동조합이 노동자 전체를 대변하지 않기 때문에 일부 노동자를 위한 특권의 성채가 되는 것이다. …(생략)   
 - 2009년 3월6일 미디어어스. 인터넷 논객 h씨
 
경제위기는 공황을 예견하고 있건만 공황기의 노동자들은 그것을 이겨 낼 구심점을 잃어버렸다. 대공장 노조들로 대표되는 노동운동은 불만과 비난의 표적이 됐다. 경제위기가 깊어 가면 갈수록 노동운동은 언제든지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자본은 성공한 것인가?


외환위기 이후 다수 노동자가 패배했고 노동운동이 실패했다면 자본은 성공했을까? 전체적으로 볼 때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고 해고가 쉬운 비정규직이 늘어난 것은 사회적으로는 실패라고 해도 자본에게는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과 못지않은 부작용도 뒤따랐다. 외환위기 당시 정리해고를 했던 한 기업의 핵심 경영자는 이렇게 말한다.
 
“정리해고는 함부로 할 것이 아닙니다. 너무 힘든 과정을 거쳤어요. 해고시켰더니 밖에서 싸우게 되고, 다시 인원을 뽑으려고 하니 해고된 종업원을 우선 채용해야 하고……. 복직을 했지만 한 번 해고됐던 사람은 아무리 애를 써도 회사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대규모 정리해고를 했던 D사의 경우 해고 뒤에 복직했던 노동자들이 독립적인 조직을 결성했다. 이 조직은 매년 단체협상 시즌에 강경한 목소리를 내면서 노사 갈등을 증폭시켰다.

회사는 시장상황의 변화에 맞는 유연성을 원한다. 잘 팔리는 상품은 재빠르게 많이 만들어야 한다. 잘 팔리는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은 잔업·특근이 넘친다. 그러면 잘 팔리지 않는 제품을 생산하던 공장에서도 잘 팔리는 제품을 생산하고 싶어 한다. 생산물량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은 노동자들은 생산량이 줄면 고용불안이 온다는 생각에 휩싸인다. 잔업·특근을 많이 해서 한 푼이라도 더 벌고 싶다. 그래서 생산물량을 다른 공장으로 옮기는 것을 반대한다.

다른 방법도 있다. 생산물량을 이동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을 이동시키는 방법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공장으로 덜 바쁜 공장의 사람들을 ‘전환배치’하는 것이다. 노동자가 다른 공장에 가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새로 적응해야 하고, 사람관계도 바뀐다. 과거 휴업·순환휴직·부서변동을 거치며 결국 정리해고로 갔던 악몽이 떠오른다. 때문에 저항한다.

‘경직성’과 비교하면 ‘유연성’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느낌이 좋다. ‘유연성’이라는 것은 ‘깨지기 쉬운 것’과는 다른 것이다. 내공이 깊어야 유연하고, 자신이 있어야 유연하다고 했다. 깊은 신뢰가 없는 관계는 불안하다. 조금이라도 상대가 이상한 모습을 보이면 관계가 깨질까 의심하고, 뒤통수칠까 의심한다. 그런 상황에서 전환배치니 물량이동이니 하는 얘기만 들어도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런 불신과 불안 속에서 ‘유연성’은 없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유약성’만이 있을 뿐이다.

하나의 이념처럼 ‘도요타주의’를 탄생시킨 도요타자동차는 ‘스트레스에 의한 관리’ ‘마른수건 쥐어짜기’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평생고용보장’이라는 기초 위에서 생산의 유연성을 발휘했다. 평생보장된 고용이라는 내공이 유연성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어려울 때 자르고 내다 버렸던 한국의 자동차회사들에게 도요타와 같은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도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한국 자동차산업의 노조와 조합원들이 경직돼 있다고 비판하면서 유연성을 받으라고 밀어붙이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하지 못하다. 어려울 때 내다 버렸던 자식이 늘 불안해한다고 근본적 치유 없이 윽박지르는 것은 자식을 두 번 죽이는 것이다.  

구조조정 이후 생긴 고용불안증은 자본에게도 부담으로 돌아갔다. 일부 기업은 2009년 사업계획을 설명하면서 “과거의 정리해고 방식은 하지 않겠다” “미국식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부를 비롯한 언론도 ‘100만 실업대란’ 따위를 떠들면서 일자리 대책을 얘기한다. 경제위기가 깊어지면 이런 약속이 과연 지켜질까? 그들의 말을 믿을 만한 근거를 찾아볼 수가 없다.
 
물방울 떨어뜨리기(Trickle Down)는 없다

물방울을 떨어뜨리면 바닥이 젖는다. 부자 감세를 하면 경제를 살려 모두가 잘산다는 것도 이를 닮았다. 그러나 미국 부시 정권도 실패했다. 한국의 이명박 정부만이 부자 감세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노동운동에서도 한때 ‘물방울 떨어뜨리기’ 효과가 있었다. 조직된 노동자들이 투쟁하면 전체 노동자의 권리가 늘어나고 임금도 인상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현재 사회를 가리켜 ‘승자독식사회’라고 한다. 위에서 물방울을 떨어뜨린다고 해서 바닥까지 적시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재벌 원청회사들은 굴지의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하청회사들은 재벌의 횡포 때문에 힘겨움을 호소한다. 오랫동안 문제로 지적된 원청회사들의 납품업체에 대한 이른바 ‘납품가격 후려치기’도 여전하다. 이 같은 현상은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재벌회사들은 수십조원의 잉여금을 가지고 있지만 부품사들은 당장의 운영자금도 부족하다. 은행들은 취약한 중소사업장에 대한 대출을 꺼린다. 정부가 중소기업 자금지원을 독려한다지만 별로 나아진 게 없다는 것이 납품하청업체들의 호소다. 

이런 문제는 노동 내부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자본은 조직된 정규직을 건드리기 어렵다. 때문에 비정규직을 늘리고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쥐어짠다. 조직된 대공장 노동자들의 투쟁도 더 이상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인상과 권리 향상에 기여하지 못한다.

노동부의 2007년 사업체 근로 실태조사는 자주 인용된다. 조사결과 모든 조건이 같을 때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시간당 임금총액이 15.2% 적었다. 300인 미만 중소기업의 격차는 12.2%였지만 3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은 격차가 31.8%로 벌어졌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의 격차는 9.5%였지만 노조가 있으면 32.6%에 달했다. 노조들이 임금격차 해소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았다는 근거가 된다.

회사는 성과금을 포함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지불하고, 노동자들은 연대를 포기하고 공장 안에 갇혀 자기 것만 챙기는 모습을 ‘담합적 노사관계’라고 한다. 재벌은 중소·영세사업장을 쥐어짜 승자독식 구조를 만들고, 대기업 노동자들은 이를 방치하면서 비정규직을 방패 삼아 고용을 보장받는 현실이 바로 재벌 대기업이 주도하고 일부 노동자가 공유하는 ‘승자독식’의 원리다. 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변명의 여지가 없지는 않다. ‘고용불안증’ ‘공장감옥’ ‘경기장에서 일어서기’ 프레임은 대공장 안에서도 강력하게 작용한다. 대공장 노동자들도 잔업·특근에 얽매이는 등 장시간 노동의 피해자이자 불안에 의해 착취당하는 위치에 있다. 심야노동을 없애고 실제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주간연속 2교대제에 대해 현대차 조합원 다수가 동의하고, 최근 몇 년간 이것이 핵심쟁점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명은 ‘일부만 일어서기’와 ‘1등보다 미운 10등’의 프레임 때문에 잘 통하지 않는다. 대공장 노동조합이 자신의 힘과 실력을 자신의 이익을 넘어 다수의 노동자와 민중을 위해 사용하는 모습을 확고하게 보일 때 비로소 변명이 통하게 될 것이다.
 
부모는 잠일술 세대, 자식은 88만원 세대

몇 년 전, 한 정유회사 노동자들이 어용노조를 무너뜨리고 민주노조를 시작했다면서 교육을 요청했다. 교육 전에 강사가 조합원들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임금은 얼마쯤 받습니까?”
“마침 월급봉투가 여기 있습니다.”
“아니, 이게 월급 맞아요?”
깜짝 놀란 강사는 되물었다. 월급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조합원 평균 연봉이 얼마쯤 되나요?”
“글쎄요. 적어도 1억원은 넘습니다.”
“아니, 그렇게 돈을 많이 받으면서 굳이 민주노조 하겠다고 고생하는 이유가 뭡니까?”
“말도 마십시오. 말도 마세요. 우리는 저쪽 ○○○의 조합원들이 너무 부러워요.”
“아니 그쪽 사람들은 잔업·특근까지 해 봐야 연봉 5천만원인데 뭐가 부럽습니까?”

그 조합원의 얘기는 이랬다. 연봉은 많이 받지만 직장생활의 즐거움이 없다고 한다. 상급자의 눈치도 봐야 한다. 초등학생인 자식도 반장선거 때면 자유롭게 유세도 하고 공약도 내거는데 자신은 노조 선거 기간에도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산다는 것이다. 심지어 휴일에 취미생활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상급 관리자가 낚시를 좋아하면 낚시에 따라가야 하니 자기 생활이 없다는 것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라는 얘기가 있다. 거기에 빗대어 ‘행복은 연봉순이 아니잖아요’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공장과 사회가 높은 담으로 분할된 현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내 자식도 남들이 보내는 대학에 보내야 한다. 초등학생이라고 해도 남들이 외국어 연수를 보내면 내 자식도 보내야 한다. 남들이 더 큰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 빚을 내서라도 옮겨야 한다. ‘경기장에서 일어서기’의 프레임이 강하게 작용하는 현실에서 나 혼자 앉아 있을 순 없지 않은가! 나만 경기를 볼 수 없는데…….

경제위기가 닥치기 전, 웬만한 제조업에서는 매일 잔업 2시간을 했다. 그것도 모자라 주말특근까지 했다. 현대차에서 365일 중 351일을 일하다 죽은 노동자에 대한 얘기들이 한참을 떠돌았다. 남편이 골골거리는데 어떻게 할 거냐는 설문조사에서 상당수의 아내들은 보약을 먹여서라도 잔업·특근을 계속하게 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아무리 대공장의 노동자라고 해도 24시간 중 10시간 이상을 공장에서 보내야 했다. 쉬는 시간과 출퇴근을 합치면 12시간가량 된다. 나머지 12시간 중 6~8시간을 잔다면 남는 시간은 기껏 4~6시간이다. 이 시간들의 상당 부분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동료들과 술을 마신다.
 
“우리가 12시간씩 일하잖아요. 야간근무를 할 때는 11시간씩 하는데, 밥 먹는 시간까지 회사 안에 있는 시간이 12시간씩이잖아요. 제가 게을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할 것이 없어요. 저녁 8시 퇴근하고 집에 오면 어디 바람 쐬러 갈 겁니까, 뭘 하겠어요? 숙소에 가만히 있어요. 갈 곳이 없어요. 그 시간에 어디 가겠어요? 갔다 왔다 하면 바로 자야지요.”  - 현대차 승용1공장 차체부 노동자 (2005년 현대자동차 현장실태조사 결과)

“현장에서 쌓인 피로는 나가서 소주 한잔 마시면 괜찮아지지요. 일주일에 4일은 술을 마셔요. 시작하고 1시간 정도 간다고 봐야지요. 잠자는 게 저는 야간이 더 나은 것 같아요. 야간 때 5, 6시간 자요. 오전에 안 자고 오후에 자는 것이지요. 오전에 자 버리고 나면 오후에 피곤해요. 낚시를 가든지 운동을 하든지 하고 낮에 잡니다. 주간 때는 술을 많이 마셔 피곤하죠. 그래도 술을 안 먹으면 낙이 없잖아요. 사람들하고 얘기하다 보면 술을 마시게 됩니다.”
- 현대차 승용1공장 의장부 노동자 (2005년 현대자동차 현장실태조사 결과)
 
현대자동차와 같은 대기업의 노동자들 상당수가 주야 맞교대를 한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은 의외로 적다. 격주 심야근로를 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여유시간은 들쭉날쭉하다. 노동자는 시간적으로도 착취당한다. 자조 섞인 얘기지만, 지친 몸으로 자고,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고, 그나마 짬이 나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이라도 마셔야 하는 인생은 말 그대로 ‘잠일술 인생’이다.

공장에 대부분의 시간을 빼앗기는 노동자는 가족과의 유대감을 높일 여유가 없다. 인생의 반려자는커녕 단순한 ‘현금인출기’에 불과하다고 토로한다. 가장 소통이 안 되는 사람이 남편이고, 가장 소통이 안 되는 사람이 아빠인 세상이다. 노동자들이 인간관계마저 착취당한다고 하면 과도한 것일까?
 
“집에서 불만이 많아요. 아이들한테 미안하고 집사람한테는 할 말이 없지요. 애들한테 왕따 당하지요. 아이들하고 집사람이 따로 놀고 나 따로 있고 그래요.”  (현대자동차 소재공장 경합금주조부 노동자)
 
“쉬는 날 되면 쉴 줄도 모르고, 놀러 갈 줄도 모르고, 어디가 맛있는 곳이 있는지 안 가보니까 모르지요. 일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해서 조금이라도 벌어 놓자. 그러다 보니 어느새 청춘이 다 지나가고 돌이켜 보면 벌써 40~50세, 정년까지는 많이 남았지만 그것도 잠깐이거든요. 나중에 좋은 날이 오면 즐겁게 재미있게 살겠지 그랬는데 그날이 오지 않네요. 항상 부족하고 힘들고 살아가는 게 너무 재미없어요. 매일 특근에 잔업, 야간근무 이렇게 살다 보니 언제 봄이 오는지 언제 여름이 가는지 몰라요. 한번씩 야간하고 볼 일 있어 식당에 가 보면 전신에 회식하는데, 여자들이 맛있는 거 다 먹고 남자들은 돈만 벌어 주고…….  세상이 그렇더라구요. 남자들이 불쌍해요.”   (현대자동차 소재공장 단조부 노동자)
 
한국 최대 공업도시 중 하나인 울산의 한 노조간부는 말했다.
“하루는 유치원 선생님이 그림 몇 장을 들고와서는 큰일 났다고 합디다. 가족 그림을 그렸는데 대부분 아빠가 아주 작게 그려져 있거나 아예 없다는 겁니다. 아이에게는 늘 일만 하고 얼굴 보기 힘든 아빠는 가족이 아닌 셈입니다.”

노동자들이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면서 건강권을 착취당한다고 하면 이 또한 과도한 것인가? 공단 근처에는 술집이 넘쳐난다. 공업도시에는 단란주점과 노래방 등이 밀집해 있다. 잔업·특근까지 하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술에 취하는 것은 행복일까? 아니면 또다시 돈과 몸을 바쳐야 하는 문화적 착취라고 하면 과도한 것인가?

‘88만원 세대’라는 얘기가 있다. 젊은 세대들이 비정규직으로 88만원의 임금을 받고 살아야 하는 처지라면, 정규직의 기성세대는 단순히 그들의 미래를 가로막는 구세대인가.
잔업·특근해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대학에 보내 봤자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 자식이 88만원 세대라면 부모세대는 공장에 묶여 죽도록 일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노동으로 보내고, 지친 몸을 이끌고 자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하는 ‘잠일술 인생’을 보낸다. 대공장의 노동자들도 공간·시간·문화·관계의 모든 영역에서 착취당하는 노동자라고 하면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할지 모른다.
 
잔업·특근이라도 해서 그 정도 연봉을 받는다면 행복한 것 아니냐고 얘기할 수 있다. 비정규직이 넘치고 대다수 노동자들이 중소·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사회는 ‘잠일술 인생’의 고통을 냉정하게 외면한다. 거꾸로 ‘배부른 대공장 노동자’라는 혐오만을 남긴 채 노동자 내부를 철저히 쪼개 놓았다.
 
3년 전 어느 날, 현대자동차노조가 임금교섭을 시작하기 위해 ‘임단협 출정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출정식은 평일 낮에 일손을 놓고 전체 조합원들이 한곳에 모여 하는 행사다.
행사는 울산공장의 본관건물이 있는 잔디밭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닌가! 빗물에 젖어 앉을 수가 없으니 행사를 연기하기로 했다. 노조 사무실에 전화가 빗발쳤다. 속으로는 ‘조합원들의 임단투에 대한 열기가 매우 높은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조합원의 전화를 받아 보니 그게 아니었다.

“아니 오래간만에 일 안 한다고 하니까 입사동기들하고 족구 한판 하고 막걸리 한잔 하기로 했는데 이제 와서 취소하면 어떻게 합니까?”
매일 잔업에 내몰리다가 모처럼 노조 행사 때문에 일을 멈추는 짬을 이용해 동료나 친구들과 여가를 보낼 계획이었다고 했다.

그해 어느 날 현대자동차 인근 시장에서 술자리를 하고 있을 때다. 현대자동차 조합원 몇 명이 몰려왔다. 기분 좋게 술을 들이키면서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야, 이거 진짜 살맛 나는 일터라고 하더니 오늘 같은 날이야말로 살 맛 나네.”
당시 현대차노조 간부들이 입는 조끼의 뒷면에는 ‘살맛 나는 일터’라는 구호가 쓰여 있었다. 무엇 때문에 살맛이 나는지 물었다.

“평소 같으면 잔업하고 술 몇 잔 하면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오늘은 현장 협상이 잘 안 돼서 잔업도 거부하고 빨리 퇴근했어요. 지금 2차를 했는데도 여유가 있잖습니까. 3차 하고 가도 12시가 안 될 것 같아요. 간만에 여유 있게 빨 수(마실 수) 있으니 살맛 나지요.”
강성 노조 때문에 생산 차질이 빚어진다는 언론과 정부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대의원들의 잔업거부와 천막농성이 ‘잠일술 인생’의 노동자들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여유를 준 것이다.
누구나 직장의 일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 일반적인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장순회 도중에 만난 고참 노동자들의 절절한 하소연을 들으면 결코 일반적 얘기로 흘려들을 수가 없다.

“이제 내 나이 50이 훌쩍 넘었어요. 현장 조합원들 목소리를 들으려면 제대로 들어야 합니다. 이 나이에 아직 기력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주야 맞교대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제발 야간근무 이것만은 좀 없앴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한두 명의 얘기가 아니었고, 짧은 얘기도 아니었다. 

2009년 초 휴업이 반복되는 인천의 한 공장 노동자들이 모처럼 평일에 모였다. 족구며 축구며 한참을 뛰다가 모여서 얘기를 나눈다.
“야, 휴업해서 한편으로는 걱정되지만 그런 것만 없으면 너무 좋네. 그냥 이렇게 잔업도 없고 여유 있게 사는 것이 정상적으로 사는 것 아냐?”

모두가 잔업·특근을 하는 것보다 현재와 같이 삶의 여유를 가지는 것이야말로 정상적인 생활이라는 것에 모두가 동의했다.  
그러나 이런 여유는 항상 질식당한다. 사교육비, 아파트 늘리기를 비롯해 끝없이 더 많은 소비를 요구하는 프레임이 이들의 소박한 요구를 짓눌러 버리기 때문이다.
 
조합원은 현금인출기, 노조는 자판기

20년이 넘는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를 거쳐오며 현장의 문제들에 대한 분석은 꽤 많이 나왔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은 그다지 많지 않다. 조합원 상당수는 구체적인 삶에 대해 고민한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내 삶을 함께 책임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노동조합에 대한 ‘도구주의적’ 생각도 꽤 있다. 노동조합은 돈을 더 따내는 기계로 필요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제반 문제를 노조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조합원들이 ‘현금인출기 인생’이라고 자조적 평가를 하듯이 ‘돈을 버는 역할’에 머물고 있는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노조 또한 ‘자판기 노조’가 될 수밖에 없다. 해마다 반복되는 임금협상에서 노조 집행부가 알아서 임금도 올리고 성과금도 따내는 자판기가 되고 있다. 심지어 [누가 노동조합을 자판기로 만들었나]((주)레이버플러스·2005)라는 책이 발간되기도 했다. S사의 노동조합에 대한 조사분석 결과 발표를 듣고 난 후, 한 조합원은 이렇게 얘기했다.

“그나마 자판기라도 있으면 동전을 넣고 빼내기라도 하지, 없으면 직접 타서 먹어야 돼.”
조합원들은 노조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는다.
‘경기장에서 일어서기’라는 프레임 속에서 날로 높아 가는 생계비를 충당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더 많은 임금을 통한 보충이다. 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구멍을 메우지 않으면 끝이 없다.

노동자는 임금을 벌어 오는 기계, 노동조합은 임금인상을 하는 기계로 전락하고 있다. 노동조합운동이 점점 실리주의적으로 변했다는 평가를 넘어 조합원들만의 이익을 챙기는 ‘이권노조’로 변모한 것이다.<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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