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미디어법’을 두고 첨예하고 맞서고 있는 여야의 행보가 다음주 분수령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여권에서 두 법안을 강행처리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지난 7일 “대량해고 사태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며 비정규직법 직권상정을 시사했다. 한나라당이 공식적으로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또 한나라당은 13일까지 미디어법을 논의하겠다고 야권에 통보한 상태다. 이 시점이 지나면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미디어법 처리절차에 들어가겠다고 최후통첩을 한 것이다. 이런 기류를 볼 때 두 법의 운명은 13일 전후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여권의 두 가지 행보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8일 열린 한나라당과 노동부 간 당정회의다. 이날 당정은 해고에 내몰린 비정규직 보호와 사회안전망 강화 대책을 논의했다. 한나라당은 추경예산에 편성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기금 1천185억원의 집행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하나는, 이날 열린 한국노총과 한나라당 간 정책협의회다. 한국노총과 한나라당은 정책연대에 따라 정기적으로 정책협의회를 해 왔다. 이날 한국노총은 정부의 공공부문 대책과 한나라당의 비정규직법 처리방향에 대해 집중 성토했다고 한다. 반면 한나라당은 비정규직법 시행유예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한국노총에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정책협의회에는 노동부는 불참했다. 노동부는 그간 정책협의회에 현안이 있을 때마다 참석해 정책 설명을 했다. 비정규직법을 두고 당정회의가 열렸는데도, 노동부는 정책협의회에 불참했다. 비정규직법을 두고 노동계를 비난해 온 노동부와 각을 세우고 있는 한국노총을 한나라당이 배려한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비정규직법을 두고 강경입장을 보여 온 당정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적지 않다. 결과적으로 당정은 비정규직법 시행 유예에 매달린 나머지 비정규직 해고사태를 사실상 방치했기 때문이다. 또 비정규직법 처리 여부에 발목이 잡혀 있다고 하나, 정규직 전환기금을 집행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여론조차 외면했다. 노동부는 비정규직 해고사례를 수집하는 데 열을 올렸고, 여당은 이를 부풀리는 데 앞장섰을 뿐이다.

당정회의가 “비정규직 해고사태를 수수방관했다”는 비난여론을 의식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때문에 야권에서는 “여권이 비정규직법을 직권상정하기 위해 수순밟기에 들어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한다. 비판여론을 희석하고, 직권상정을 위한 ‘명분쌓기’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여야가 합의한다면 직권상정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야의 입장차가 워낙 크다. 여야가 입장차를 줄여 극적인 합의를 이뤄 낸다 해도 미디어법 처리 여부와 연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비정규직법은 미디어법과 함께 처리되거나 미디어법 처리를 위한 양보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시행된 비정규직법을 유예한다면 법 적용의 형평성 문제뿐 아니라 신뢰에도 금이 간다. 위헌시비도 불붙을 것이다.

현재로선 여야의 복잡한 셈을 고려할 때 합의처리 가능성은 매우 낮다. 여권이 비정규직법·미디어법을 직권상정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그래도 직권상정만은 막아야 한다. 해당 상임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리적 검토를 바탕으로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게 옳다. 국회법에 있는 법 처리절차를 지키는 게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직권상정을 막는 일은 야권에 달렸다. 실질적으로는 국민과 노동계의 여론에 비정규직법의 향배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저임금과 비정규직법 논의 과정에서 함께했던 양대노총이 공조를 더욱 확대하고 여론을 선도하는 게 필요하다. 양대노총 위원장은 “법 시행 유예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목소리를 내지 않았나.

“비정규직을 대변하지 못하는 양대노총이 국회와 논의하는 게 맞는 것이냐”라는 노동부장관의 비난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회에 전체 노동자를 대변하는 노동단체로 거듭나지 않으면, 양대노총은 정규직만의 조직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양대노총은 비정규직법 직권상정을 막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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