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 도무지 실감이 안 나는 금액이다. 하루에 1천만원을 쓴다고 해도 274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써야 다 쓸 수 있는 돈이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주식시장 호황으로 지분가치 평가액이 1조원을 넘은 주식부호가 9명이나 됐다. 지난해 말 5명에서 4명이나 늘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정몽준 한나라당 국회의원·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이 '1조원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이쯤 되면 1조원과 비정규직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따져 보자. 민주당은 정부가 1년에 1조2천억원씩 3년간 정부 재정에서 지원하면 정규직 전환을 꺼리는 중소·영세업체의 부담을 덜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는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 1천185억원의 정규직 전환지원금을 책정하는 데 그쳤다.
 
만약 이건희 회장이 주식으로 번 돈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기금에 써 달라"고 재단이라도 만들어 기부한다면, 정부 예산 없이도 정규직 전환기금이 마련될 것이다. '씨알도 안 먹힐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려 나라 밖을 살펴보자.
빌 게이츠·워렌 버핏·조지 소로스·테드 터너·오프라 윈프리 등 미국의 내로라하는 부자들이 지난 5월 뉴욕에서 몰래 만났다. 당초 기부하기로 약속했던 금액을 불황에 맞춰 더 늘리기 위해서였다. 96년부터 이들이 기부한 금액은 이미 90조원을 넘어섰다.

국내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실천하는 기업들도 있다. 발렌베리그룹은 스웨덴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150년 동안 5대째 부자세습의 전통을 이어 오고 있다. 이 그룹은 에릭슨(통신기기)·일렉트로닉스(가전)·ABB(중전기)·사브(SAAB·항공기)·스카니아(상용차) 등 100여개의 계열사를 갖고 있다. 스웨덴 주식시장 총액의 절반, 국민총생산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경영진의 사유재산은 고작 200억원대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사회에 모두 기부하고 있다.

상속 문제로 고민하던 이건희 회장은 2003년 발렌베리가를 방문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 회장은 부자세습만 본 것 같다. 불법적으로 경영권을 넘겨준다는 논란 속에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사건'과 같은 얘기만 들리고, '글로벌 기업' 삼성이 국내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중소·영세사업장이 여력이 없어 비정규직을 다 해고할 것이라며 위협하기 전에 사회적 책임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부터 살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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