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교도소의 여름은 겨울보다 끔찍하다고 썼다. 하지만 건설노동자에게 겨울은 여름보다 끔찍하다. 일단 땅도, 물도 얼어붙어 공사가 없다. 일자리가 사라진다. 운 좋게 일거리가 들어와도 매서운 추위 때문에 괴롭기 짝이 없다. 허허벌판 공사장에는 추위를 피할 곳이 없다. 오죽하면 건설노동자에게 식당과 탈의실과 화장실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법까지 생겼겠는가.
지난 2006년 2월 말 한 일용직 석공이 늦추위를 피하려 공사장에 모닥불을 피웠다가 불이 옮겨 붙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이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일거리 기다리다 피운 모닥불에 숨져

20년 경력의 일용직 석공 김아무개씨는 2005년 12월부터 공사 준공일까지 전북 진안군 수해복구 공사현장에서 석축업무를 담당하기로 하고 ㄱ건설회사와 근로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눈이 많이 내리면서 수해복구 공사는 잠정휴업 상태가 됐다. 김씨는 그해 12월14일 하루 일당을 받은 것 외에는 이듬해 2월까지 일거리를 받지 못했다.

이후 김씨는 2006년 2월27일 공사 재개가 언제 가능한지 살펴보기 위해 현장에 나왔다가 변을 당했다. 이날 오전 7시20분께 몸을 녹이려고 피운 모닥불이 자신의 몸에 옮겨 붙은 것. 당시 솜바지를 입고 있던 김씨는 휘발유를 불에 끼얹다 불길에 휩싸였다.
김씨의 어머니 조아무개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보상금과 장의비 지급을 요청했다. 공단은 김씨가 사고 당일 고용상태에 있지 않았고, 자의적으로 피운 모닥불로 사고가 발생한 만큼 업무상재해로 볼 수 없다며 거부했다.

불 피워 몸 녹이는 것도 '업무 준비행위'

이 사건의 원고는 김씨의 어머니이고,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이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공단의 손을 들어줬으나,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광주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판결요지는 이러하다.

“첫째, 계약기간이 정해진 근로계약을 체결한 이상 단지 하루 일당만 지급받은 상태에서 공사가 일시 중단됐다 해도 근로관계가 소멸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둘째, 사고 당일 김씨는 작업재개를 기다리며 현장점검을 하던 중 몸을 녹위기 위해 불을 피웠을 가능성이 크다. 겨울철 토목공사 현장에서 공사준비 및 휴식을 위해 불을 피워 몸을 녹이는 것은 작업을 위한 준비행위 또는 사회통념상 그에 수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사의 지배 또는 관리하에서 업무수행 및 이에 수반되는 통상적인 활동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다.”
이 사건의 쟁점은 두 가지다. 먼저 공사가 3개월 가까이 중단된 상태에서 근로계약의 성립 여부다. 재판부는 김씨와 회사가 2005년 12월1일부터 수해복구공사의 준공일까지 기간이 정해진 근로계약을 맺었으므로 공사의 일시중단과 상관없이 근로계약이 유지된다고 판시했다.

두 번째는 공사현장에서 몸을 녹이기 위해 피운 모닥불과 업무와의 관계다. 재판부는 김씨가 이날 작업을 하기 위해 사전에 준비하고 공사현장에 나갔다는 점을 주목했다. 사고 전날 김씨는 현장소장과 전화통화를 했다. 사고 당일에는 김씨 외에도 작업보조인과 포크레인 기사가 현장에 와 있었다.
또 김씨가 공사현장에 와서 귀가하지 않고 불을 피운 행위는 작업가능 여부가 확실해질 때까지 대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재판부는 김씨가 공사현장에서 불을 피운 것은 사회통념상 작업(또는 준비행위)에 수반되는 합리적·필요적 행위라고 보았으며, 이 불이 옮겨 붙어 사망에 이른 것 역시 회사의 지배·관리하에 업무수행(또는 수반되는 통상적인 활동과정)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라고 결론지었다.

<관련 판례>
대법원 2009년 5월14일 파기환송 2009두157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광주고법 2008년 11월28일 선고 2008누1015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2008년 6월25일 재배당 2008누391
전주지법 2008년5월22일 2007구합1061
 
 
<2009년 6월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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