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많은 국민들이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노동계 역시 "권력과 폭력에 의해 노동자와 민중이 죽어가는 시점에 전직 대통령의 서거라는 참담한 일이 발생했다"며 애도의 뜻을 밝힌 상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 정의헌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저항 억누르며 계속 밀어붙일 것”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정국이 국회 과반을 장악하고 있는 한나라당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주목하고 있다.
추모정국의 분위기가 한나라당 내부로 옮겨갈 것은 분명하다. 한나라당 안에서는 두 가지 기류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먼저 '시기조절론'과 같은 방식이 부각돼 저항을 억누르면서도 정치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다. 정책 오류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올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정책추진 속도의 문제이지 전환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지금까지와 동일한 방향에서 더욱 치밀하게 대중의 저항을 억누르면서 정치 안정을 도모하고자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와 여당이 취할 수 있는 수단은 경찰과 검찰이다. 경찰과 검찰을 이용한 파시즘적 경향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추모정국에서 형성되고 있는 저항이 어느 정도로 형성될 것인가는 변수가 된다. 정부를 비판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아지겠지만 제2의 촛불이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조직되지 않은 채 자연발생적인 촛불을 기대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민심을 받아안을 대안세력이 부재하다. 민주당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고 진보정당은 분열돼 있다.
물론 민주노총은 민심을 끌어안는 역할을 자임하겠지만 정부의 탄압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인가는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에게는 장단기 과제가 부여된다. 당장 5~6월 투쟁으로 '한나라당식 개혁'을 막아 내야 한다. 나아가 진보대연합을 통해 정치적 구심을 구축해야 한다.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구심점을 만들어 내야 한다.


■ 손종흥 한국노총 사무처장
“MB정부 강압적 드라이브에 제동 걸릴듯”


예상치 못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 같다. 정치적 쟁점들을 의도대로 밀고 가기 어려울 것 같다. 현재의 상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강압적인 정책추진에 드라이브가 걸리지 않을까. 진보적 시민·사회단체와 세우던 각도 무뎌질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정책 자체도 일정부분 전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장 6월 임시국회에서 강행하려던 노동관계법이나 미디어법 처리가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로선 비정규직법 강행처리가 무산될 것으로 예상돼 한숨을 돌릴 수 있다. 다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시한을 정해 처리를 약속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인데, 그것도 지금으로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민주당이 합의해 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9월 정기국회 처리도 녹록지 않을 것이다. 비정규직법에다 전임자임금·복수노조 관련 노조법까지 모든 법안에 과부하가 걸리기 때문에 힘들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 워낙 정국이 요동치는 상황이라 확정할 순 없지만, 굳이 노동계에 대한 유불리를 따지자면 어려운 상황은 아닌 것 같다. 한국노총은 상황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국 상황에 맞춰 치밀한 시나리오를 준비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변화해야 한다. 노동정책뿐 아니라 다른 정책에서도 권위적인 태도를 버리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난해와 같은 촛불정국까지 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민심이 등을 돌릴 수 있다. 한나라당은 10월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나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또다시 실패할 것이다.


■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속도조절하겠지만 큰 변화 없을 것”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보수언론, 재계는 지금의 추모정국이 촛불정국으로 옮아갈 것을 우려해, 어떻게 해서든 이를 차단하려고 절치부심하고 있다. 지금의 추모 열기가 민주주의를 바라고 기리는 여론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면, 노동 문제는 사회적인 성격이 강하다. 추모정국이 정부에 대한 반대여론으로 확산되더라도, 그것이 노동 문제에 대한 압력으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강수를 들고 나올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정부는 북핵 문제 등을 강조하며 추모정국의 전환을 유도할 것이다.
물론 여론이 정부에 대해 부정적으로 돌아서고 있어, 당분간은 정부가 각종 법·제도를 밀어붙이는 데 있어 속도조절에 나설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정부·여당이 6월 임시국회에서 각종 법안 처리를 미루는 상황까지 갈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정부는 스스로 정권기반을 무너뜨리지 않으려면 ‘인권’의 성격이 강한 노동 문제만큼은 열린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 인정까지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인권의 차원에서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은 인정해야 한다. 비정규직법을 졸속으로 개정하는 등 무리수를 둬서는 안 된다.


■ 이병훈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장
“정부, 자기성찰 없으면 국민불신 폭발”

노동정책을 비롯해 현 정부가 참여정부로부터의 단절을 무식하게 몰아붙이면서 전직 대통령 서거라는 비극이 발생했다. 참여정부도 비정규직법 제정 등을 추진하며 노동·시민·사회단체들과 마찰을 빚었지만, 현 정부는 지난 정부의 정책을 더욱 개악하려고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서거 사태를 겪으며 정부가 과연 얼마나 자기성찰을 할 것인가가 핵심이라고 본다. 국민들은 현 정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했다고 믿고 있다. 노동을 비롯한 국정기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국민들은 정부의 일방적 밀어붙이기가 예상치 못한 극단적 상황을 만들었다고 인식하고 있다. 대화와 타협 없는 밑어붙이기가 결국 부메랑이 돼 돌아갈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노동 문제도 마찬가지다. 6월에 큰 격돌이 불가피하다고들 하지 않나. 정부가 잠시 유화국면을 거친 뒤 다시 일방적인 강공 드라이브를 펼친다면, 국민들의 거센 반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기조에 변화를 주고, 대화를 통해 노동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영결식 뒤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면 제2의 촛불국면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 이상동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경제연구센터장
"영결식 이후 정치추진력 상실 여부 관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비정규직법 개정 등 개별적인 의제들의 즉각적인 변화는 어렵다고 본다. 6월 임시국회에서 비정규직법 개정이 가장 큰 이슈가 될 것으로 전망했는데, 임시국회 개최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 아닌가.
그러나 여론이 잠잠해지면 노동유연화로 요약되는 노동정책을 다시 밀어붙일 가능성은 남아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와 이명박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기조 변화 가능성에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현 정부가 타격을 입고 자체 동력을 잃게 되는가이다.
지난해 촛불정국 당시를 돌이켜보면 어쨌든 촛불의 힘으로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정책이 주춤하지 않았나. 29일 진행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분수령이 될 것이다. 그 이후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지만 예측은 어렵다. 다시 한 번 강조하면 이번 일로 이명박 정부가 정치적인 동력을 얼마나 상실할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 남용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사대책본부장
"변해도 안 되고 변하지도 않을 것"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가 큰 사건이기는 하지만 노동정책뿐 아니라 다른 정책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현 정부의 노동정책은 노사협력의 확산, 문제되는 사업장의 노사갈등 관리, 비정규직법을 포함한 제도개선 등이다. 현 정국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들이 아니다.
비정규직법만 해도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개정안을 발의하는 것뿐이다. 나머지 국회통과 여부는 국회의원들의 몫이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법제도 개선에 변화를 주지도 않을 것이고,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부에서는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한 정부의 엄단방침을 밀어붙이기식 노동정책으로 얘기한다. 이것은 정책이 아니라 법집행 차원이다. 29일 영결식이 끝나고 민주노총과 산하 연맹 등에서 잇따라 집회를 계획하고 있는데, 동시다발적인 집회에 가동인력이 부족해 다소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노동정책의 변화도 아니고 공권력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일부는 그런 기대를 하겠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2009년 5월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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