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기관에 기안을 해서 공문을 보내면 무슨 직급이냐고 물어올 때가 많습니다. 기능직이라고 말했을 때, 어떠하겠습니까? 취합과 협조를 요구하는 공문작성이 대부분인데 취합률은 떨어지고 협조는 사정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 참담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일할 때 열심히 할 생각이 안 든다. 일반직이야 업무평가 잘 받아서 미리 승진할 수 있으니까 일도 열심히 할 것이다. 어차피 기능직은 승진연한을 다 채워야 승진하니까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되는 거다.”

기능직, 승진적체와 모멸감 심해

26일 민주공무원노조가 주최한 ‘기능직 공무원 제도개선 현장토론회’에 소개된 한 기능직 8급 공무원들의 사례다.
같은 직급을 기준으로 했을 때 기능직 공무원과 일반직 공무원의 보수차이는 거의 없다. 일반직인 기술직들이 받는 기술수당을 같은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어도 기능직 공무원들은 못 받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기능직 공무원은 승진적체 현상이 일반직보다 심각해 생애소득에서 차이가 벌어지게 된다. 지난 1월 전국공무원노조가 펴낸 '기능직공무원노동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직 공무원들이 6급까지 승진하기 위해 걸린 시간은 20년이 채 되지 않았다. 반면 기능직 공무원들은 26년이 넘었다. 9급부터 시작하는 일반직과 달리 10급부터 공직생활을 시작하고 최대 6급까지만 가능한 승진제도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비슷한 일을 하면서 기능직이라는 이유로 업무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인간적 모멸감이 심각하다.

“기능직-일반직 통합해야”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백남식 민공노 제도개선위원회 사무국장은 “기능직이라는 단어로 사람의 수준을 결정하는 문화 때문에 행정 신뢰도 추락과 조직 내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 사무국장은 단기적인 제도개선 과제로 △기능 10급 폐지 △5급 이상의 상위직급 확대 △직급별 정원 책정시 직종간 차별 폐지 △기능직에 대한 전문교육지원 △우대승진 적용 대상을 기능직까지 확대 △기능직에게 자격증 수당 지급 등을 제안했다.

중·장기적인 과제로는 기능직 공무원을 일반직 공무원으로 흡수하거나 일정 비율의 기능직을 일반직으로 특별채용해 단계적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백 사무국장은 “동일 직급·호봉일 경우 급여차이가 없고, 기능직을 일반직으로 흡수해도 총액 인건비 제도에서 예산증액도 필요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능직 공무원이 겪고 있는 실질적인 차별을 없앤다는 점 뿐 아니라 정서적 박탈감도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관건은 기능직과 통합하면서 승진 피해를 우려한 일반직 공무원들의 반발이다. 실제 기능직과의 통합을 반대하는 일반직 공무원들의 반발감이 만만찮다는 게 공무원노조 관계자들 설명이다. 일부 노조 게시판에서는 최근까지 기능직과 일반직이 서로 비난하면서 기능직들의 일반직 전환을 놓고 논쟁하고 있다.
백 사무국장은 “기능직이 일반직으로 흡수되는 만큼 일반직의 정원을 늘리게 되면 일반직의 상위직급도 확대된다”고 말했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국장은 “직제 전환시 일반직이 느낄 수 있는 승진상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일반직들의 승진기회를 확대하는 등 정교하게 통합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9년 5월27일>
 
노조가입 대상 중 40% 이상이 기능직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08년 6월 현재 전체 공무원 97만4천830명 가운데 기능직 공무원은 12만9천142명으로 13.2%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노조가입 가능한 것으로 추산되는 30만명을 기준으로 한다면 40%를 넘기게 된다.
운전원이나 방호원 등 기능직에만 있는 직군을 제외하고 일반직과 업무가 겹치는 기능직만 하더라도 30%가량 된다는 것이다.
일부 공무원노조 관계자들은 “기능직 공무원출신이 노조 위원장을 하게 되는 시대가 멀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공무원 노동계도 기능직 차별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김학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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