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사고를 경험하지 않은 지하철 기관사의 공황장애도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는 이례적인 판결이 나왔다. 지금까지는 지하철 운행 중 사람을 치거나 다치게 해 정신질환이 발생한 경우에 한해 산업재해로 인정됐다. 이번 판결이 지하철을 비롯한 철도 등 궤도사업장의 기관사들에게까지 확산될지 주목된다.

서울행정법원(행정5단독 전대규 판사)는 김아무개(52)씨가 “지하철 기관사로 발령받은 후 긴장감 때문에 공황장애가 발생했다”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 취소소송에서 이같이 판결했다. 공황장애는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특별한 이유 없이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는 극단적인 불안증상을 말한다. 극도의 공포심을 느끼면서 심장이 터질 것같이 빨리 뛰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는 증상을 동반한다.

김씨는 지난 2003년 3월 서울지하철공사(현 서울메트로) 기관사로 전직돼 일하던 중 4년 만인 2007년 3월 운행 도중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다. 가슴이 빨리 뛰고 숨이 차 열차 운행을 계속하기 힘들었고, 곧바로 응급실로 후송됐다. 그해 5월 김씨는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요양을 신청했으나 거부당했다. 공단은 “업무와의 연관성보다는 개인적 취약성으로 공황장애를 앓게 됐다”며 불승인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건강했던 김씨가 공황발작 증상을 보인 것은 기관사로 전직된 이후”라며 “고속운행에 대한 불안감과 정확한 시간에 출발과 정차를 반복해야 하는 긴장감과 운행지연으로 인한 경위서 제출, 승객들의 항의와 언론보도 및 이로 인한 문책성 교육 등으로 지속적으로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심리적 스트레스를 겪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김씨가 발병에 따른 전환배치로 기관사 업무를 수행하지 않은 이후 공황장애 증상이 상당히 호전된 점 △김씨와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지하철 기관사들 중 상당수가 공황장애를 호소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춰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김씨의 성격이나 유전적·생물학적 요인 중에는 공황장애의 발병원인이 내재돼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면서도 “김씨가 기관사로 전직된 이후 겪었을 육체적 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직접적인 발병원인은 아니더라도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공황장애가 유발됐거나 자연적인 진행경과 이상으로 악화됐다고 추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2007년 가톨릭대병원 산업의학과가 서울도시철도 기관사 836명에 대한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기관사 5명 중 1명이 1개 이상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황장애를 앓는 기관사 비율이 일반인보다 7배나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2009년 5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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