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물공장에서 일하던 배진호(가명·54)씨에게 2005년 10월19일은 악몽같은 날이었다. 그날 배씨는 갑작스럽게 호흡곤란을 겪었고 이후 폐렴과 뇌손상 진단을 받았다. 18살에 건설현장에서 일을 시작한 배씨. 그는 개인사업을 거쳐 32살 때부터 쇠를 녹이는 용해작업을 했다. 그리고 95년 10월 배씨는 경남 진해에 소재한 (주)비제이금속(가칭)에 입사했다. 자동차나 냉장고·밸브의 주철합금을 만드는 회사로 230명의 노동자가 일했다.

액체 쇳물 꺼내는 ‘출탕’ 작업

배씨는 이 회사의 주철공장 용해반에서 일했다. 주철과 합금자재를 용해로에 투입한 뒤 액체상태의 쇳물을 꺼냈다. 용해로가 식은 후 내부의 찌꺼기를 제거하는 정비업무도 했다. 액체상태의 쇳물을 꺼내는 이른바 ‘출탕’ 작업은 5명에서 6명이 팀을 이뤄 진행했다. 쇠를 녹이는 용해작업은 보통 8시간에서 16시간이 걸렸다.
출탕작업은 한 시간, 용해로 정비작업은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가 소요됐다. 용해로에 투입하는 재료는 선철과 규산·고철·철-규산 화합물·철-망간 화합물 등이었다.
재료에는 모두 망간(Manganese)이 포함돼 있었다. 2005년 10월19일 배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다. 같은 조에서 일하는 동료가 집안사정으로 결근한 날이었다. 이날은 오전에 4명이 출탕작업을 했다. 오전 11시부터 용해로 안의 정비작업을 했는데 그날따라 분진과 흄이 심하게 발생했다. 정비작업을 한 지 30분이 지났을까. 배씨는 갑자기 심하게 숨이 차올랐다. 가슴에 통증도 느껴졌다. 배씨는 동료에게 말하고 휴게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지만 숨이 차는 증상은 가라앉지 않았다.

망간 분진이 급성호흡곤란 일으켜

조퇴를 한 배씨는 회사 근처 내과를 방문했다. 치료를 받았지만 호흡곤란 증상은 오히려 심해졌다. 3일 후 대학병원으로 옮겨 급성 호흡곤란과 폐렴·급성 폐부종 진단을 받았다. 이틀 후에는 일시적으로 호흡이 정지돼 저산소성 뇌손상과 급성 신부전증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3개월 동안 입원치료를 받은 배씨는 이후에도 오랫동안 재활치료를 받았다.
배씨에게 나타난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은 높은 농도의 분진을 흡입해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흡입한 분진 성분 중 하나가 바로 망간이었다. 10년 동안 쇳물을 녹이는 작업을 하면서 망간과 철분진에 노출됐던 것이다. 특히 용해로 안을 청소하는 정비작업에서 망간 분진에 고농도로 노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두 얼굴 지닌 중금속 ‘망간’
망간은 대기 중에서 물이나 토양으로 침전돼 강이나 호수에서 발견될 수 있는 자연발생 금속이다. 은색으로 맛과 냄새가 없다. 영양을 위해 음식물을 통해 낮은 농도로 노출되는 것이 필수적인 중금속이기도 하다.
망간은 주로 금속형태로 사용되는데 90%가 제강작업에 사용된다. 용접작업에서 망간이 함유된 합금이나 망간이 코팅된 전극봉이 사용되기도 한다. 망간은 염색제·건전지·농약·가축을 위한 식품첨가제·비료·페인트 건조제·가죽제품 등을 제조할 때도 사용된다.
망간은 주로 먼지나 흄을 통해 흡입된다. 대표적인 건강영향은 보행장해나 손발 저림, 손 떨림 등 파킨슨증후군이다. 망간에 과도하게 노출될 경우 화학적 폐렴이 발생할 수 있다. 망간 섭취는 소화기계의 심각한 화상과 상기도 부종, 순환기계의 약화 등을 불러온다. 장기간 노출되면 신경과민과 기억력 감퇴·피로·근력 약화·무력감 등의 중추신경장해와 기관지염·폐렴 등 폐 장해가 생긴다.



화학물질 문의 :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작업환경팀(032-5100-724)
 
<2009년 5월 20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