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비정규직법 개정 문제를 놓고 본격적 논의가 시작됐다.
환경노동위원회(위원장 추미애)는 12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환노위 자문위원 회의’를 가졌다. 국회에서 처음으로 열린 비정규직법 토론회였다.

허원용 노동부 고용평등정책관·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박지순 고려대 교수가 각각 발제에 나선 가운데 노동계에서 김동만 한국노총 부위원장·배강욱 민주노총 부위원장, 경영계에선 이동응 경총 전무·박종남 대한상의 이사·유석규 브이엠에스 솔루션스 이사, 학계에서는 이병훈 중앙대 교수·이철수 서울대 교수·조준모 성균관대 교수·하종범 한국기술교육대 노동행정연수원 교수가 참석했다.

환노위 소속 추미애 위원장과 김재윤·김상희 민주당 의원,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이 각각 참석했으나 한나라당 의원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추미애 “앞으로도 논의의 장 마련”

이날 추미애 위원장은 “정부는 지난달 1일 정부·여당 내 의견조율도 거치지 않고 법안만 내놨다”며 “다수당 힘의 논리 이외에 어떤 논리도 갖추지 못하고 청와대의 뜻에 따라 낸 것 같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추 위원장은 “여당은 4월 국회에서 개정안을 상정하지 않았다고 정치적 압박을 하고 있으나 이 법은 사회적 여론을 모아야 한다”면서 “법 시행까지 한 달여를 남겨놓고 법을 고친다니 누가 정부를 믿겠느냐”고 꼬집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올해 말까지 노동유연화를 강조한 데 대해 추 위원장은 “대통령이 나서 취약한 근로환경을 흔들고 있는 셈”이라며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확대하면서 간접고용도 넓히기 위해 파견사유도 넓히겠다는데 그것도 점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추 위원장은 “노동유연화가 아니라 사회안전망, 고용서비스 확충 등의 고용친화적 노동정책에 역량을 쏟아야 한다”며 “고용정책이 노동자·국민 등 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폭넓은 토론의 장을 마련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 논의의 장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노동부, '100만 고용대란설' 유지

간담회에서 비정규직법 개정에 대해 노사는 물론 전문가들의 입장도 엇갈렸다. 이날 노동부를 제외하고 전문가 발제자 3명 사이에서도 입장차가 존재했다.
허원용 고용평등정책관은 기존의 100만 고용대란설을 유지하며 4년 기간 연장을 골자로 한 비정규직법 개정의 불가피성을 주장했다.
그는 “올해 7월 근속 2년을 초과하는 비정규직(한시적근로자) 규모는 1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며 “올해 7월부터 정규직화 또는 실직 위험에 노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4년으로 사용기간 연장시 고용을 유지하면서 2년차, 3년차에 정규직으로 이동할 기회가 있고, 4년 뒤 정규직화가 되지 않더라도 다른 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고용기간이 연장돼도 비정규직 확산은 적정수준에서 통제될 수 있다”고 밝혔다. 차별금지제도가 유지·강화되고 정규직 전환 지원으로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추경에 포함된 정규직 전환지원금 1천185억원(고용보험기금 900억원, 일반회계 285억원)과 사회보험료 감면을 적용할 때 각각 월 18만원과 월 7만원 등 총 월25만원 지원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김유선·은수미 4년 연장 우려

김유선 소장과 은수미 부연구위원은 정부의 100만 고용대란설을 반박하고 나섰다.
김 소장은 “최근 정부는 말을 바꿔 올해 7월 이후 (1년 사이) 100만 고용대란설을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 최대 30만명을 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의 4년 기간연장 주장이 그나마 긍정적인 정규직 전환 효과만 없애고 장기적으로 경기회복시 비정규직 일자리만 증가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은수미 부연구위원은 “올해 3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원자료 분석 결과를 보면 1년 미만의 임시직과 1년 미만과 1년 이상 기간제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비정규직법이 기간제를 줄이는 방식으로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은 부연구위원은 일본의 파견직 확대로 인해 노동시장이 무너지고 있는 예를 들며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박지순 교수는 “기간제법 취지에는 찬성하나 2년 제한은 너무 무리한 것이었다”며 “기존 기업이 기간제를 무제한으로 사용했던 점을 감안해 3~4년의 완충기간을 뒀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박 교수는 2년가량 유예한 가운데 유예된 기간 동안 고용안정을 위한 종합적 논의에 나서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마련하는 게 좋다는 의견을 밝혔다.

학자들도 법개정 의견차 팽팽

간담회에 참여한 자문위원들도 역시 의견차를 보였다. 이철수 교수는 ‘2+2년안’을 제안했다. 그는 “2006년 정치 공방 속에서 2년 기간제한이 결정됐으나 실사구시적 차원의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며 “2년으로 하되 노사(집단협정을 통해)가 원할 때 2년을 연장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 경우 기업이 일거에 정규직 전환이 어렵다면 사정에 따라 나머지 2년에 대해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취지로 보인다.
조준모 교수는 ‘2년 유예안’을 지지했다. 그는 “2년이냐, 4년이냐로 기간 논쟁으로만 갈 때는 정상적 해법을 찾기 어렵다”며 “사회안전망과 차별해소 기제와 더불어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법시행을 2년간 유예한 뒤 그 기간 동안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하종범 교수는 “현행법은 긍·부정의 효과를 모두 가지고 있다”며 “현재로선 대안은 개별근로자의 입장에서 고용유지를 하는 방향으로 풀어야 한다”며 정부의 2년 연장안을 지지했다.
반면 이병훈 교수는 “은수미 박사가 제시한 최근 기간제가 증가추세로 돌아선 것은 정부의 정책적 판단과 입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남용과 차별을 제대로 고쳐 나가는 정부의 입장이 굽힘 없이 가야지, 다른 의도를 갖고 하면 노동시장이 망가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매일노동뉴스 2009년 5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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