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권장하는 사회는 없어도 자살을 조장하는 사회는 있다. 최근 우리 사회가 그렇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은 10년째 자살률 1위다. 지난해 자살한 이들만 1만1천194명. 하루 평균 30.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간당 1.28명에 달한다.

자살 통계만 보면 우울하다. 경제위기로 살기가 팍팍해지고 있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이 더 늘어날까 걱정스럽다. 지난 4일 이명박 대통령은 ‘가정의 달’ 기념 라디오연설에서 ‘자살 세태’를 지적하며 이렇게 밝혔다.

“자살률이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충동적으로 자살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선 안 됩니다. 가족 사랑이 있는 한 두려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대통령은 충동에 사로잡혀 자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안타까운 마음에서 그랬겠지만, 결국 자살을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로 치부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 해 1만명 이상이 자살을 택하는데, 과연 그 원인이 개인과 가정에만 있을까. 최근 화물연대 한 간부의 죽음은 이 대통령이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날 것 그대로 보여 준다.

화물연대 광주지부 제1지회장이었던 고 박종태씨는 지난 3일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 야산의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됐다.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에 “쫓겨난 동료들이 복직될 수 있도록 하자”는 글을 올리고 사라진 뒤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아내와 두 자녀가 있는 박 지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대통령의 말처럼 ‘충동적’으로 아까운 목숨을 포기했을까.

박 지회장의 유서에 그 단서가 있다. “저의 죽음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최소한 화물연대 조직이 깨져서는 안 된다는 것, 힘없는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린 지 43일이 되도록 아무 힘도 써 보지 못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하기 위해 선택한 것입니다.”

대한통운의 택배기사였던 박 지회장과 그의 동료 78명은 지난 1월 휴대폰 메시지로 계약해지를 통보받았다. 화물차량 개인소유주인 이들은 대한통운과 위수탁계약(지입제)을 체결했고, 지난해 말 화물연대와 운송료 인상에 합의했다. 그런데 대한통운은 운송료 인상에 합의한 지 두 달 만인 1월에 합의를 파기했고, 이에 항의하는 택배기사들을 '본사의 방침'이라며 계약해지했다. 또 임시직 채용, 민형사상 손해배상 책임, 화물연대 탈퇴 등을 거론하며 교섭을 사실상 거부했다.

이러한 정황을 고려할 때 대한통운이 박 지회장을 죽음으로 내몬 일차적 원인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목숨까지 버릴 필요는 없지 않았나’라는 지적이 나온다. 주변의 증언을 종합하면, 해고된 동료 78명을 책임지고 있었던 박 지회장의 고뇌가 너무 컸던 것으로 짐작된다.

집단 계약해지를 당한 뒤 43일 동안 박 지회장은 수차례 교섭을 촉구했고, 항의농성을 벌였지만 대한통운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에서 항의를 하려 해도 이를 막는 경찰 앞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경찰은 1인 시위조차도 경찰력을 동원해 둘러쌌고,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집회를 막았다. 정말 '억울해도 항의할 수 없고, 하소연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박 지회장 앞에 가로놓여 있었던 것이다.
화물연대의 교섭 요구에 회사측이 무작정 버틴 것은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택배기사들은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는데, 노동부는 행정해석을 통해 이들의 노동자성을 부정했다. 최근에는 화물연대가 소속된 운수노조와 건설노조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려 교섭당사자의 지위마저 흔들고 있다.

이유 없는 죽음은 없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체념해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죽음으로 항의하는 경우도 있다. 두 가지 선택 모두 개인과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다. 때문에 사회나 정부가 책임이 없다고 외면하는 것은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 박 지회장의 죽음은 분명 특수고용직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 항의이자 개선요구다. ‘충동에 사로잡혀’ 그런 선택을 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한통운은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박 지회장과 그의 동료 78명을 복직시켜야 한다. 노동부는 특수고용직의 노사갈등으로 인한 죽음의 행렬을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된다. 특수고용직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이상, 하루빨리 입법화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매일노동뉴스 2009년 5월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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