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비정규직법 시행 시기를 4년 유예하는 쪽으로 당론을 모아가고 있다. 법 시행 자체 유보해 7월에 닥칠 실업대란을 막고, 중소기업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준비기간을 주자는 것이 한나라당의 주장이다. 이를 두고 이명박 정권에서는 비정규직법을 시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비정규직 남용을 규제하자는 입법취지가 실종될 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4년 뒤 정규직 전환하라는 뜻 아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비정규직 법안을 이번에 처리하지 않으면 7월에는 비정규직 대란이 일어난다. 민주당이나 민주노총에서 마냥 반대해 법안 처리를 막아 비정규직 대란이 오면 민주당이나 민주노총의 책임이다.
이 법안은 한나라당이 일방적으로 '우리 주장이 옳다'고 처리할 수 있는 법안도 아니다. 여야·민주노총·한국노총이 합의 처리하는 방향이 옳다. 지난 13일 한나라당 정책의총에서 나온 의견의 대세는 법 시행을 4년 유예하자는 것이었다. '2년 사용기한 제한'을 경제가 좋아지고, 중소기업에서 정규직 전환시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다 마련하는 기간으로 4년 정도 유예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노동법에 보면 복수노조와 노동자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항이 한국의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세 차례에 걸쳐서 무려 13년간 유예됐다. 부칙에 유예조항을 뒀다. 마찬가지다. 비정규직 법안도 지금 경제가 어렵고 정규직 전환을 하려고 하는 중소기업의 사정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에 그 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유보를 해서 부칙에서 유예하는 게 옳지 않나.
4년 유예를 한다고 해서 그 사이에 정규직 전환을 막는 것은 아니다. 정규직 전환하는 대기업이나 은행, 업종에 따라 정규직 전환하는 것은 별도다. 일률적으로 4년 후에 정규직 전환하라는 뜻이 아니다.


김성태 한나라당 의원
잔치집 가려고 4년 굶기겠다는 발상


사실관계를 분명히 하자. 지난 13일 개최된 비정규직 고용안정 대책관련 정책의총에서 비정규직법 개정에 대해 결정된 당론은 없다. 법 시행 유보의견이 대세를 이룬 것은 사실이나 4년 연장안에 대한 홍준표 원내대표의 의견에 대해 당론으로 의결하지도 않았고 동의하지도 않았다.
정부안은 절대수용 할 수 없는 개선책이다. 비정규직 전환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자는 주장은 4년 시점이 다가올 경우 또 다시 같은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무기한 연장이다. 비정규직 사용의 완전 자유를 보장하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개정 이유로 거론되는 100만 해고대란설은 객관적 근거 없는 주장에 불과하다. 지속적인 업무에 지속적 고용을 보장하자는 비정규법 입법취지를 감안할 때, 정부안은 영원한 비정규직의 고착화를 야기할 뿐이다.
당론으로 거론되는 정규직화 시행시기 4년 연장은 너무 가혹하다. 홍 원내대표가 정책의총 후 지난 14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한 4년 유예의견대로 비정규직법이 개정되면 기업들은 2007년 7월 이후 근로계약을 맺은 기간제 노동자를 2013년 6월까지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아도 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정부안과 결과가 다를 바 없는 안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 임기 내에 정규직 전환은 없다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인식을 확대해 노동의욕 상실은 물론 고용불안을 가속화시킬 것이 자명하다.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
비정규직 문제 해결 않겠다는 선언



한나라당과 정부의 4년 유예방침은 사실상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선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말 그대로 4년, 자신들의 임기기간 동안 비정규직 문제를 면해보자는 책임회피식 정책이다. 이렇게 되면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있는 사업장들도 정규직 전환을 하지 않게 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양산될 것이다.
대부분의 채용을 실습사원(인턴)으로 쓰고, 다시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책으로 비정규직 대한민국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기업은 앞으로 4년간 정규직 전환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으로 친기업적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정규직 전환이 지체되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나면 경제회복에 치명타를 줄 것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경제의 회복은 그 속도가 더뎌 질 것이다.


노항래 민주당 수석전문위원
비정규직 남용 규제, 입법취지 어디로?

정부의 기간연장안이나, 한나라당 시행 유예안이나 '조삼모사'라고 생각한다.
일단 정부안은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 늘리자는 것, 2007년 비정규직으로 채용된 사람을 2011년까지 비정규직 형태로 쓰자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말하는 법 시행 4년 유예안은 지금 시점에서부터 4년, 2013년까지 비정규직을 쓰자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주장은 정부안보다도 후퇴한 것이다.
비정규직법의 기간제한 조항은 노동시장 내 기간제 남용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정부나 한나라당의 주장은 기간제 남용 규제를 완화하고, 해당 규제를 사실상 무력화하자는 발상에 불과하다.
경제위기로 정규직 전환에 따른 비용을 부담스러워 하는 중소기업 사용자들도 물론 있다. 때문에 민주당은 정규직 전환에 따른 지원 비용을 추경예산에 반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비정규직 고용유지와 전사회적 고용의 질 제고가 가능하다.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비정규직 고통 4년 더 연장?




비정규직법 4년 유예는 편법을 동원한 미봉책이다.
정부는 '100만 해고설'을 얘기하면서 비정규직법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명확한 근거가 있는 얘기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어정쩡한 태도로 논란을 피해가려 하고 있다.
한나라당 원내대변인은 일부 악성노조와 야당의 주장처럼 비정규직법을 계속 방치하면 7월 이후 대량 실업사태를 통한 혼란이 우려된다고 했다. '악성노조'라는 대변인 성명에서 한나라당이 얼마나 안이한 인식을 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정부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노동계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비정규직이나 비정규직노조의 의견을 얼마나 들었는지 되묻고 싶다.
한나라당은 정규직으로 전환한 기업에 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사회보험료 감면은 비정규직이 아닌 기업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이다. 당장 비정규직이 경제위기의 최대 피해자가 될 상황인데 왜 남의 다리만 긁어주려고 하나.
정부 입법 개정안에는 100만 해고설이라는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가 하나도 없다. 정부와 여당은 노동계와 논의를 통해 명확한 답을 찾아야 한다. 불법파견과 특수고용 문제도 함께 다뤄야 한다. 비정규직 법 시행을 4년 동안 유예 하겠다는 것은 비정규직의 고통을 4년 더 연장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민주노총 우문숙 대변인
정부나 한나라당이나, 오십보 백보




정부 입법안에 대한 노동계의 비판이 워낙 거세니 한나라당이 정부안을 받아들일 경우 생길 반발을 피해가려는 꼼수다. 겉으로는 법 시행 4년 유예지만 안으로는 경영계가 요구했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한나라당은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은 안중에 없다는 것이다.
법 개정이 아닌 유예를 선택한 것도 법의 부칙조항을 수정하는 것이 쉬운 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법 개정 과정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나 노동계의 반발을 피해가기 위한 것이다. 사회보험료 감면과 정규직 전환 대책을 세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듣기 좋은 말에 불과하다. 비정규직은 이미 경제위기로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다.
정부안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으면서 마치 노동자를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비정규직법에 대한 정부와 한나라당의 입장은 같은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노동계와 협의했다고 하니 대화는 하겠지만 입장 차이를 좁힐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정부는 경제가 올해 하반기에는 나아질 것이라고 한다. 경제는 나아질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4년 뒤로 미루겠다고 한다. 한나라당이 비정규직의 고통에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다.

구은회·오재현 기자
 
 
<매일노동뉴스 4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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