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킬’이라는 말이 있다. 산과 들을 사람에게 빼앗긴 동물들이 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는 것을 일컫는다. 직업이 운전인 운수노동자의 죽음은 로드킬과 다를 바 없다. 비교적 취약한 노사관계나 고용형태, 열악한 근로조건으로 인해 교통사고로 취급될 뿐 산업재해의 영역으로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재판부는 화물노동자나 퀵서비스맨의 교통사고를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화물차로 출근 중 교통사고

화물운수업을 하는 업체인 A운수 소속 운전기사 문아무개씨는 2007년 11월20일 화물차량을 이용해 집(충북 청원군)에서 업무장소인 청주사료공장으로 가던 중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청주 신오창 네거리 방향 복현교 위에서 그만 미끄러져 중앙분리대와 충돌한 것이다.

이 사고로 문씨는 제1요추체 압박골절을 입었다. 그는 지난해 1월8일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요양승인 신청을 했다.
공단은 문씨가 출·퇴근용으로 제공된 교통수단이 아닌 화물차량으로 출근 중 발생한 교통사고는 업무상재해가 아니라며 불승인처분을 내렸다.
문씨는 “입사 당시 사업주로부터 화물차량을 이용해 출·퇴근을 허락받았으므로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서 발생한 재해”라며 소송을 냈다.

출·퇴근사고의 업무상재해 판단근거

이 사건의 원고는 문아무개씨고,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재해 당일 새벽 청주사료공장으로 가기 위해 화물차량을 운전하다가 발생했으므로 업무상 재해”라며 문씨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요지는 이러하다.

“운수회사의 사업장 소재지(경기도 이천)나 이 사건 차량의 차고지(충남 천안) 및 문씨의 주거지 관계에 비춰 원고가 이 사건 차량 이외에 청주나 송탄사료공장까지 출·퇴근하는 방법이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 원고의 주된 업무는 빈 화물차량을 운전하여 사료공장으로 가서 사료를 공급받은 후 각 양계농장에 사료를 운반·배송하는 업무다.
이러한 업무내용이나 근무형태를 보면 원고가 화물차에 탑승하여 운전을 개시하는 때로부터는 업무수행이 시작되어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 있다고 보인다.”

이 사건에서 눈 여겨 보아야 할 지점은 법원이 원고가 이용한 차량보다 업무개시 시점을 판단기준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출·퇴근재해의 산재 여부는 매우 제한적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업보험법 시행규칙에 의거해 △사업주가 소속 근로자들의 출·퇴근용으로 제공한 교통수단의 이용 중에 발생한 사고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에 대한 관리·이용권이 근로자 측에 전담돼 있지 않는 경우만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원고의 입사 당시 사업주가 이 사건 차량을 원고의 주거지 부근에 주차한 후 이를 이용해 청주사료공장으로 가서 사료를 공급받아 업무를 수행하도록 용인하였던 점’을 업무상재해를 인정하는 주요한 근거로 삼았다. 즉 이 사건 차량에 대한 관리·이용권이 전적으로 원고에게 전담돼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법원은 “원고가 자택에서 이 사건 차량에 도착할 때까지가 출근에 해당하고, 그 이후 차량에 탑승한 이후에는 바로 업무의 개시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관련 판례>
서울행정법원 2009년 3월4일 선고 2008구단7642 판결 요양불승인처분취소

 

<2009년 4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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