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과 식품에 석면이 포함됐다는 언론보도는 시민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 넣고 있다. 소비자 집단소송도 준비되고 있다. 반면 석면 취급 사업장 노동자의 건강실태는 제대로 조명되지 않고 있다. 각계 전문가들은 '석면이 어디서 어떻게 쓰였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연순 교수(동국대 산업의학과)
알려지지 않은 석면 피해, 실태 파악부터


97년 제조업 노동자들의 진폐증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 인천의 한 활석가공공장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4명의 진폐증 환자를 만났다. 최근 석면광산 지역 주민 피해를 조사하러 충남지역에 갔는데, 이곳에서 인천의 활석공장에 활석을 팔았다고 한다. 상황을 따져보니 인천 활석가공공장 환자 4명의 증상이 활석에 의한 진폐증이 아니라 석면폐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한 대형병원의 간호조무사가 수술용장갑에 활석가루를 묻히는 일을 28년간 했다. 장갑이 손에 달라붙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 간호조무사는 활석가루를 장갑에 묻힌 뒤 입으로 장갑에 바람을 넣어 구멍이 났는지를 확인했다. 이 간호조무사는 간질성 폐질환으로 사망했고, 2001년 산재로 인정받아 보상을 받았다. 이 간호조무사 역시 활석에 포함된 탈크 때문에 병에 걸린 게 아닐까 싶다.
이미 한참 지난 일을 다시 거론하는 것은 알려지지 않은 석면 피해자가 엄청나게 많을 것이라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석면 화장품을 사용하는 소비자의 건강도 문제지만, 이를 생산하는 노동자의 건강 실태는 더욱 심각할 것이다. 누가 어디서 석면을 취급하고 있는지를 밝히는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가 시급하다. 치옥석을 다루는 일을 하다가 중피종에 걸려 산재 보상을 받은 사례가 있는데, 가령 옥매트 제조 사업장 노동자들의 건강이 어떤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실태를 알아야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임영섭 노동부 근로자건강보호과장
석면 함유 사업장, 철저히 관리하겠다

석면 탈크 제품 유통으로 인한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노동부도 이런 사정을 감안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유통되는 탈크 제품이 국내에서는 생산되지 않고 중국에서 수입되고 있기 때문에 우선 중국산 수입품을 차단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8일에 관세청에 석면이 함유된 탈크가 수입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석면 함유 여부에 따라 제품을 분리해 석면이 함유되지 않았더라도 시험선적서를 확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중단조치로 100%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기 때문에 어떻게 유통되는지 경로를 파악하려고 한다.
샘플을 뽑아 조사를 한 결과, 사업장의 절반이 석면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앞으로 철저하게 관리할 계획이다. 관리 매뉴얼을 만들 생각이다. 매뉴얼은 사업장에 배포하고 교육용으로 사용한다. 석면에 노출된 노동자에게는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하고 건강관리 수첩을 발급해 관리해나갈 것이다. 산업안전감독관이 300명에 불과해 한계는 있겠지만 지방관서별로 일정 주기로 지도감독도 벌일 예정이다.
지난해 말에 뉴타운 대책을 발표하면서 오는 6월을 석면안전점검의 달로 정하기로 했다. 6월에 캠페인도 하고 교육과 일제점검도 벌인다. 일제점검을 앞당겨 실시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최상준 교수(대구가톨릭의대 산업보건학과)
석면 부재료 취급 사업장은 더 심각


석면을 취급하려면 노동부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석면이 포함된 부재료를 가공하는 사업장이다. 석면 불순물이 얼마나 쓰였는지 확인해야 해당 노동자에 대한 특검도 가능하다.
최근 석면 피해 구제에 대한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 법안의 핵심은 구제 대상을 누구로 할 것이냐,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이 얼마냐, 재원을 어디서 충당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외국의 경우 사업주와 국가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석면을 취급해 수익을 올린 사업자에게 가중치를 둬 기금을 조성하는 것이다. 또한 석면 사용을 허가한 국가도 비용 책임을 지는 식이다.
석면 피해 관련 안전보건제도도 개선돼야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탈크처럼, 석면불순물 사용 사업장에 대한 관리가 미비하다. 건축물 철거나 리모델링 과정에서 석면에 노출되기 쉬운 건설노동자에 대한 건강검진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3년이상 근무한 노동자에게 배포되는 건강관리수첩제도 역시 건설노동자에게는 무용지물이다.

변영철 변호사(제일화학 석면 피해 노동자 법률대리인)
제목 : 석면 피해는 산업재해

현재 제일화학 노동자 15명과 공장 인근 주민 2명이 석면 피해 관련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요양보상도 신청했다. 제일화학은 69년부터 24년 동안 부산시 연산동에서 가동된 석면 방직공장이다. 노동자 15명 가운데 3명이 사망했고, 나머지는 투병 중이다.
피해 노동자들에 대해 산재가 인정돼야 하고, 그에 따른 보상절차가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산재 인정이 계속 연기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이 조속하게 보상절차를 취해주기 바란다. 사망자 3명의 유가족들이 공단에 유족보상금을 청구했지만 지난해 12월 불승인됐다. 사망이 업무와 관련이 없다는 이유였다.
석면공장에서 근무했더라도 이미 사망했다면 석면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어렵다. 폐암이나 중피종으로 사망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병원치료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의무기록이 없다. 불승인 받은 후 공단의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소멸시효 때문에 보상금을 못 받는 일이 없도록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개정돼야 한다. 

박종국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
건축물 석면조사 완화? 건설노동자 건강은?


최근 건축물에 대한 석면조사 규정이 완화됐다. 노동부가 입법예고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개정안을 보면 설계도서 등 관련자료를 통해 석면이 함유되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면 석면조사기관을 통한 조사를 생략할 수 있다. 30~40년 전에 지은 건물의 설계도가 남아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자기 건물에 석면이 있다고 신고할 업체가 얼마나 될까.
장기간 석면에 노출돼 있던 노동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도 시급하다. 일반 제조업 노동자들은 어느 현장에서 일했다는 자료가 남아있지만 건설노동자는 그렇지 않다. 어디서 일하다 석면에 노출됐는지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석면관련 질환은 수십년의 잠복기를 거쳐 발생한다. 뒤늦게 병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건설현장도 사업주도 없다.
때문에 석면에 많이 노출되는 직업군을 지정해 해당 노동자가 산업재해 요양을 신청했을 경우 추가적인 증명을 요구하지 말고 보상해줘야 한다. 건설현장에서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건강진단을 받는데 여기서 석면 관련 질환 검진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스즈키 아키라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일본, 석면 피해자 10명 중 4명만 구제


한국에서는 석면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지만, 최근 일본에서는 석면문제가 수면 아래르 가라앉은 상태다. 그렇다고 석면문제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20년 넘는 석면사용금지 운동 끝에 일본 석면건강피해구제법이 만들어진지 올해로 3년째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일본의 산재보험이나 석면구제법으로 인해 석면피해를 구제받은 사람은 10명 중 4명에 불과하다. 석면 관련 질환은 잠복기가 길다. 앞으로도 석면 피해자들이 계속 발생할 것이다. 그런데 이미 피해자로 판명된 사람들 중 44%만이 구제를 받은 것이다.
산재보험을 통해 구제를 받는 사람과 석면구제법에 의해 구제를 받는 사람 간 보상 격차도 크다. 석면공장 주변에 거주하다 질병에 걸린 피해자들은 산재보험 수준으로 보상 수준을 높여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장기적인 건강관리체계가 미흡하다는 점도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일본 정부는 이 부분을 보완하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한국에서도 석면피해 구제 관련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일본 법·제도의 미비점을 살펴 참고하기 바란다.
 

구은회‧한계희‧조현미 기자
 
 
<매일노동뉴스 4월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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