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해프닝이 일어나고 있다. 이사회를 강행하려는 경영진과 이를 막으려는 노조 간 실랑이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가스공사 경영진은 이사회 장소를 두 번이나 옮겼다. 경기도 분당 본사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이사회 장소는 서울 강남의 음식점으로, 다시 호텔로 바뀌었다. 한국전력공사 경영진은 노조의 저지를 피해 겨우 이사회를 열었지 만 안건을 의결하지는 못했다.

해프닝이 벌어진 이유는 경영진이 ‘인력감축안’을 이사회 안건으로 상정했기 때문이다. 당초 정부는 2012년까지 정원 10% 이상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4차 공기업 선진화방안을 확정했다. 그런데 정부 스스로가 이를 뒤집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연이며, 각 부처 장관이 조연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다음달 중순 공공기관 경영효율화 추진실적 점검회의를 주재한다. 이 대통령은 최근 "공공기관 선진화가 더디다"며 “내년까지 선진화방안을 마무리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정부 각 부처는 산하 공공기관에 인력감축과 지분매각을 채근하는 지침을 경쟁적으로 내려보내기 시작했다.

지식경제부는 초임삭감과 정원감축을, 보건복지가족부는 임금반납을, 행정안전부는 임금 1~5% 반납을 지침으로 내렸다. 지경부는 “4월 중순 VIP(대통령)가 주재하는 경영효율화 추진실적 점검회의 전까지 조기에 마무리하라”는 웃지못할 내용을 지침에 담기도 했다. 경영사정에 따라 개최시점이 다를 수밖에 없는 공기업들의 이사회가 비슷한 시기에 몰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각 부처 수장들이 ‘충성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노조는 당연히 발끈했다. 한국노총 공공연맹은 최근 중앙위원회에서 대졸초임 삭감과 정원감축을 다루는 이사회를 저지하기로 결의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도 이사회 원천봉쇄 방침을 확정했다. 이사회 저지는 약속을 위반한 정부에 대한 노동계의 경고다.
이번주에도 공기업 이사회가 줄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노조의 저지로 안건을 결의하지 못했던 한국전력공사도 30일을 전후에 이사회를 다시 개최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와의 충돌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가 노조와 충돌을 감수하면서까지 인력감축을 강행해야 되는지 의문이다. 감원한다고 공공기관이 정부의 말대로 선진화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되레 침체된 경제를 살리려면 공공기관이 앞장서 채용을 늘려야 한다. 올해 경제가 가장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시기에 공공기관마저 무리하게 인력을 감축해 얻을 것은 없다.

신규 입사자의 초임을 삭감하라는 분위기는 버젓이 종전 입사자의 임금 삭감 또는 반납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면서 신규 채용은 억제하라는 게 정부의 지침이다. 기껏 깎인 임금으로 만드는 일자리가 ‘복사알바(아르바이트)’나 ‘커피알바’에 불과하니 환영보다 반발이 많은 것이다. 또 대졸 신규입사자의 초임삭감은 종전 입사자와 노동조건 차별 적용에 해당돼 법적 다툼의 소지가 있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다. 공기업들이 "교섭사항이 아니다"며 강행하려는 것은 꼼수에 다름 아니다.

정부는 당장 공공기관에 내린 지침을 철회해야 한다. 대통령 말 한 마디에 각 부처가 일관성 없이 충성경쟁을 하는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 공공기관 경영진도 이사회에 상정할 안건을 철회해야 한다. 정부의 일방적 지침이 아니라 공공기관의 특성에 따라 감원 여부와 지분매각 시점을 결정하는 것이 옳은 수순이다. 노사가 대화를 통해 그 방안을 확정한 후 이사회에 상정해도 늦지 않다.
그런데도 공공기관의 이사회가 강행된다면 공공기관 노사 간 충돌은 노정 간 충돌로 확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매일노동뉴스 3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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