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노사민정 대표들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대타협’에 서명한 이후 지방에서도 지역의 노사민정들이 상생을 위한 고통분담과 지역차원의 역할에 대한 후속 타협이 봇물으 이루고 있다.
일찍이 서구에서도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노와 사가 혹은 진보와 보수가 함께 만나 국가재건을 위한 사회협약을 통해 국난을 극복하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1938년 스웨덴의 살츠요바덴협약(Saltsjobaden Agreement)이나 폴더모델(Polder Model)과 타협의 정치로, 작지만 알찬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1982년 바세나르협약(Wassenaar accord), 아일랜드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국가경제사회위원회(National Economics and Social Council)에 의한 사회협약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중앙과 지역단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러한 노사민정 대타협선언들이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에는 경제위기 직격탄을 맞고 있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래서 본 글은 지금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타협들이 진정으로 지역의 고용창출을 위한 선도적인 역할을 하려면 지역차원에서 지역의 고용·훈련·복지체제를 선도할 수 있는 지역고용거버넌스를 제대로 구축하는 것이라 보고 이에 대한 논의를 해 보고자 한다.

오늘날 자본과 노동의 이동이 활발하고 기술이 급변하는 세계화된 경제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중앙 집권적 정책에서 탈피해 지역 중심의 지방분권적 고용정책으로 전환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통상 양질의 노동력을 쫒아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본은 생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춘 지역에 정착한다. 그러므로 지역차원에서 각 개인이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정책과 교육기관을 지원하고 자신의 거주지역에서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마련해야만 지역이 살아남을 수 있다. 더불어 근로생애 동안 자신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현재와 미래에 지역에서 요구되는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도 이번기회에 대타협의 정신을 실현하고 세계화와 경제위기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지역고용거버넌스 구축과 활성화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정책과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고용·훈련·복지 통합 고용거버넌스 구축

첫째, 지역차원에서 고용·훈련·복지서비스의 통합적 제공을 위하여 통합형 고용거버넌스를 구축하자. 현재 고용·훈련·복지 관련 서비스가 중앙부처와 수많은 기관을 통해 연간 수조원 이상의 재원이 유사한 고객을 대상으로 제공되고 있다. 그러나 관련 서비스 간의 협의·조정 기능이 없어 예산의 낭비, 광범한 사각지대와 이중수혜, 사업효과 저하 등 다양한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또한 각 지방자치단체가 실시하고 있는 일자리창출과 훈련 및 복지사업들 역시 사업들 간에 연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고용 및 훈련서비스와 관련한 중앙 및 지역단위에서의 조정이 얼마나 시급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지역단위에서 상호 연관된 고용·훈련·복지 관련 서비스가 통합적으로 제공돼 사업효과를 높이고 예산절감과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도록 시급히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고용, 인적자원개발, 직업교육훈련과 관련해 유사한 사항들이 여러 법률에서 중복적으로 규정돼 있고, 이를 조정하기 위한 장치들이 부처 및 조직의 이기주의 앞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가로막고 있는 고용정책기본법과 고용보험법·직업고용훈련촉진법·인적자원개발기본법·평생교육법·근로자직업능력개발법까지 포함한 전면적인 법령의 제·개정을 추진해야 한다. 이는 이미 언급한 부처간 이기주의를 뛰어넘는 막강한 파워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전봇대를 뽑아내는 정신으로 대통령이 직접 조정해야 가능할 것이다.

노사정 등의 적극적 참여로 통합거버넌스 효율성·효과성 높여야

둘째, 통합거버넌스에 이해당사자인 노사정 및 지자체, 지역혁신주체들을 적극 참여시켜 사업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극대화시켜야 한다. 우리나라의 고용과 인적자원개발 정책 및 사업은 중앙집권화가 강하고 정부주도로 추진됨에 따라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중앙집권적 정책의 시각으로 지역을 보면 지방간의 특수성이 잘 보이지 않는다. 현실은 지역 간에 고용 상황에서 명백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중앙정부에서 세밀하게 반영할 여지가 거의 없다. 지역밀착형 고용정책이 지역에서는 절실히 필요하지만, 지금까지와 같은 중앙부처 중심의 정책기조 아래에서는 그것을 제대로 반영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따라서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한 고용정책과 서비스가 효과적으로 제공되어질 수 있도록 지역고용의 이해당사자인 노사정 및 지자체, 지역혁신주체들을 적극 참여시켜 수요와 공급 사이에 미스매치(mismatch)를 최소화하도록 해야 한다.

거버넌스 참여주체의 역량을 강화해야

셋째, 거버넌스 참여주체인 지역의 파트너들의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개별 기업별노조나 개별 지부가 조합원이나 기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고용 및 인적자원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정책 역량을 키우기란 매우 어렵다. 지역 사용자단체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즉 우리나라의 지역수준에서는 노사정 모두 개별적으로 고용 및 인적자원개발 정책을 구상하고 사업을 주도하기에는 역량이 매우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지역의 통합고용거버넌스가 실질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지역 노사정의 역량강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라 하겠다. 따라서 정부는 지역고용촉진의 이론적 토대와 정책의제 발굴 등을 지원하기 위한 지역노동경제 전문가 그룹의 육성 및 활용, 지역 대표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연구모임의 구성 및 운영, 거버넌스체제를 실무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예산과 전문·상근인력 지원 등을 통해 전문성을 갖춘 경쟁력 있는 파트너들이 육성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노동계와 경영계도 각자 근로자와 지역의 영세기업들의 적극적 요구를 대변하고 지역차원에서의 고용 및 능력개발에 관한 정책을 개발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노동부가 지역고용거버넌스 컨트롤 타워 맡아야

넷째, 지역고용거버넌스의 컨트롤 타워는 당분간 교육과학기술부나 지자체가 아닌 노동부가 돼야 한다. 현재 지역의 고용·인적자원개발사업을 시행하고 있는 부처로 교육과학기술부, 노동부를 포함해 다양한 부처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차원에서 고용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핵심 기관은 지방자치단체와 지방노동청(지청)이이며 고용정책을 담당하는 주무부처는 노동부이다. 따라서 중․장기적으로 지역주체를 중심으로 한 통합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겠지만 지역의 파트너들의 역량이 강화되기까지는 노동부가 주도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제의 도입 역사가 짧고 더구나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에도 고용정책의 주체는 노동부가 전담해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지자체는 노사를 지역능력개발의 주요 파트너로 참여시키려는 노력 및 능력이 부족하고 중앙정부에 의존적인 정책수립 및 관행이 남아있어 전문성을 갖춘 경쟁력 있는 파트너들이 육성되어지기까지는 지역고용거버넌스의 컨트롤 타워를 노동부가 담당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선진국에서 지역차원에서 성공적인 지역거버넌스모델은 무수히 많다. 아일랜드의 코크(Cork)시나 독일의 슈투트가르트(Stuttgart), 일본 사이마타 사례 그리고 미국의 One-Stop Career Center와 위스콘신(Wisconsin)모델, 영국의 Jobcenter Plus, 호주의 Centrellink와 Job Network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이처럼 선진국에서는 지역의 다양한 파트너들이 참여․협력하는 지역고용거버넌스를 구축해 고용과 복지에 관련된 사업들을 통합적으로, 상호 연계하에 체계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서비스의 중복과 낭비를 막고 예산의 절감과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또한 중앙의존적 관행을 벗어나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지역의 실정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여 세계화에 대응하고 지역사회의 경쟁력 확보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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