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국정부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와의 약속을 이행할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국제노동조합 진상조사단이 방한 3일째인 25일 기자회견에서 남긴 말이다. 조사단은 지난 23일 방한해 민주노총·한국경영자총협회·노동부·민주당·국가인권위원회 등을 방문했다. 조사단에는 국제노총(ITUC)·경제개발협력기구 노동조합자문위원회(OECD-TUAC)·국제금속노련(IMF) 등 국제노동계를 이끌고 있는 주요 단체 관계자들이 포함됐다.

조사단 방한은 지난해 12월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총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뒤 추진됐다.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사항 이행을 점검도 방한 목적에 포함됐다. 국제노동단체들이 개별국가의 노동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진상조사단을 구성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조사단이 내놓은 결과보고는 더욱 충격적이다. 조사단은 "한국에서의 조합원 및 노조권리 탄압이 2007년 OECD 감시과정(monitoring process)이 중단된 이후 개선되기는커녕 악화됐다"고 평가했다.

한국사회가 앞으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과거로 역행했다는 것이다. 조사단은 노조탄압 사례로 노조파업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을 들고 OECD 감시과정 재개를 회원국에게 요청하겠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96년 OECD에 가입하면서 '결사의 자유 및 단체교섭권과 같은 노동기본권을 국제적 기준에 맞도록 노동법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OECD 가입 이듬해인 97년부터 노동기본권과 관련해 OECD 고용노동사회분과위원회(ELSAC)의 감시를 받았다. OECD 회원국가 중에서 유일한 감시국가 지위는 2007년 6월에 해제됐다.

결국 2007년 6월 이후 1년6개월이 지나도록 한국정부는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번 조사에서 드러났다. 그것도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외국인의 조사였다는 점에서 상황은 심각하다.
조사단이 기자회견을 한 25일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지난해 2월 취임한 이 대통령은 '선진화'를 주창했다. 노사관계 선진화의 실천계획으로 제시한 것이 '법과 원칙'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법과 원칙 이면에는 국제기준에 역행하는 조치들이 대거 포함됐다. 조사단이 거론한 파업노동자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국제기준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한 우리사회의 선진화는 여전히 멀어 보인다.
 
 
<매일노동뉴스 2월26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