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으로 인해 도산하거나 휴업하는 중소기업이 늘면서 해당 업체에서 근무하던 이주노동자들이 '해고 1순위'가 되고 있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합법 신분의 이주노동자는 실직 후 2개월 안에 새 직장을 얻어야 한다. 이 기간 안에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불법체류자(미등록 이주노동자)로 남아야 한다. 이주노동 관련 단체들은 2개월로 제한된 구직기간을 연장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법체류자가 될 처지에 놓인 외국인들을 구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성은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간사
경제 불황의 한파 속에 해고의 칼날이 이주노동자들에게 겨눠지고 있다. 구직신청 후 2개월 안에 취업하지 못하면 본국으로 귀국하도록 규정한 고용허가제의 '구직기간 제한 조항'은 이주노동자를 불법체류자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높다. 경제위기라는 특정 상황에라도 법이 탄력적으로 적용돼야 한다. 한시적으로나마 구직기간을 늘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실직자가 된 이주노동자에게 기회를 줘야한다. 
지난해 11~12월 두 달 동안 1만3천여명의 이주노동자가 고용지원센터에 사업장변경신청을 냈다. 이 가운데 5%가 불법체류자가 된다고 계산해도, 무려 6천500명이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에 올 때 평균 400만원의 송출비용을 브로커에게 지불했다. 해당 국가에서는 4천만원의 가치를 갖는 거액이다. 이 돈을 갚지 못한 상태에서 귀국하면, 해당 노동자는 사채업자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정부는 외국인의 고용기회를 늘리면 내국인의 고용기회가 줄어들 것처럼 여론을 조성한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근무하는 공장은 한국인이 찾지 않는 영세업체다.

■  안경덕 노동부 외국인력정책과 과장
사업장변경신청을 하는 이주노동자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 중 95%가 2개월로 정해진 구직기간 안에 재취업한다. 나머지 5% 중 일부는 귀국하고 일부는 불법체류자가 된다.
구직기간을 늘리자는 의견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구직기간을 늘린다고 해도, 일자리 자체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구직기간이 짧아 불법체류자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실직자가 늘어나는 것이다. 또한 구직기간을 늘리려면 법을 개정해야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정부도 현실적인 방안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각 고용지원센터가 외국인 구인·구직 만남의 자리를 주기적으로 만들고 있다. 여기에서 사업장변경신청을 한 외국인에게 일자리를 우선적으로 알선한다.
물론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외국인도 많다. 국내 체류기간이 짧아 한국말이 서툰 상태에 갑자기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다. 대개 입국 전 송출비용을 대느라 빚을 진 경우가 많다. 이 같은 단기체류자의 빠른 취업을 위해 정부도 노력하고 있다.

■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
구직기간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구직기간 늘린다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얘기하면, 이주노동자가 경기변동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올해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고, 2월 이후 대학졸업자까지 쏟아져 나오면 국내 고용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외국인의 일자리 찾기를 지원해 줄 수는 있지만, 외국인의 고용을 우선적으로 보호하기는 어렵다.
98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많은 이주노동자가 자발적으로 귀국했다. 한국에 있어봤자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다. 일자리가 없어진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무조건 구직기간만 늘려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곤란하다.
한국인과의 일자리 겹치기도 문제다. 지금까지는 한국인이 기피하는 3D업종에 외국인이 근무했지만, 문 닫은 자영업자나 제조업 실직자들이 3D업종에 유입될 가능성도 높다.
고용보험이라도 잘 돼 있으면 사정이 좀 나았을 것이다. 당초 외국인도 고용보험에 의무가입하도록 돼 있었지만, '보험료만 떼 간다'는 여론이 조성되면서 임의가입으로 변경됐다. 그래서 실업급여 혜택조차 못 받는 외국인이 많다.

■  안성근 국제노동협력원 외국인근로지원부장
평상시에도 외국인이 2개월 안에 새 직장을 구하기는 어렵다. 최근에는 일자리도 많이 줄었다. 올 상반기 영세사업장 부도율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시적으로라도 이주노동자들에게 구직기간을 연장해줄 필요가 있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는 사람이 고용지원센터에 구직활동을 증명하듯이, 이주노동자들에게 구직기간을 늘려주는 대신 구직활동증명을 받는 방법도 있다. 구직 노력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더 주자는 것이다.
외국인이 나간 자리에 한국인이 대체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힘들다. 정부는 불법체류자를 내보내고 한국인을 고용한 사업주에게 고용장려금을 지원한다. 하지만 고용장려금을 받아간 사업주는 별로 없다. 외국인을 쓰고자 하는 사업주는 외국인을 쓰도록 하는 편이 낫다.
일자리 겹치기 문제는 제조업보다는 건설업 쪽이 더 심각하다. 하지만 건설업에 종사하는 외국인력 대부분은 중국동포다. 중국동포 문제는 일반적 외국인력 정책과는 분리돼야 한다.

■  정정훈 변호사(공익변호사그룹 공감)
구직기간을 늘린다고 당장 취업이 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2개월로 한정돼 있는 현재의 구직기간은 너무 짧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본인의 귀책사유가 아닌 회사측의 경제사정에 의해 실직자가 되고 있고, 이중 상당수는 불법체류자가 됐다.
고용허가제 하에서 정부는 외국인력 도입계획을 세우고, 외국인과 한국사업주간 고용계약을 중재한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일하기까지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것이다. 그러니 '2개월 내에 일 못 구하면 돌아가라'고 할 게 아니라, 정부가 최소한의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구직기간을 한시적으로 늘려주자는 것은, 외국인에게 특혜를 주자는 것이 아니다. 구직 가능성을 넓혀 주고, 귀국 여부를 외국인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자는 것이다.
외국인력은 경기변동의 안전판이 아니다. 경제상황이 좋지 않으면 내쫓고,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들여오는 방식은 옳지 않다.

■  이상우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국장
이주노동자들에게 구직기간을 늘려주자는 제안에 적극 동의한다. 법 자체를 개정하기는 어렵더라도, 한시적으로 법 적용을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금속노조는 총고용 보장과 일자리 창출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는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의 일자리를 보장하라는 주장도 담겨 있다. 또한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를 우선적으로 해고하지 말라는 요구도 포함돼 있다.
노동계도 이주노동자의 일자리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외국인 때문에 한국인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식의 주장은 옳지 않다. 같은 노동자로서, 일자리를 함께 지키려 노력해야 한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조직화가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는데, 이주노동자를 적극 조직해 공동의 목소리를 낼 필요도 있다. 외국 노동계도 일자리를 상실한 이주노동자에게 체류기간을 보장하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 김승환 건설노조 정책국장
건설현장에 들어와 있는 이주노동자 가운데 약 99%는 중국동포다. 나머지 1%가 동남아시아 국가 출신 등이다.
구직기간이 문제가 되는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구직기간을 늘려줄 필요가 있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해 합법 신분으로 일하던 노동자가 대량으로 불법체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동포에 의한 일자리 대체 문제에 대해서는 일정부분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는 동포들이 무분별하게 건설현장에 유입되고 있다. 이와 관련 노동부는 중국동포에 한해 건설업 등록제를 실시할 계획이다. 노동부에 등록을 한 뒤 취업교육을 받은 사람만 건업현장에서 일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중국동포가 없으면 건설현장이 돌아가지 못한다는 문제도 있다. 경제가 어려워졌다고는 하나, 건설현장을 찾는 한국인은 별로 없다. 아파트 건설현장의 경우 노동자의 70%가 중국동포다. 오히려 경제상황이 나빠지면서 중국으로 돌아가는 동포가 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 2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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