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죽음의 그림자’로 불리는 석면은 온석면으로 구성된 사문암을 채광·채석해 얻어지는 광물 섬유다. 보온·단열 효과가 매우 뛰어나 공사장 내부단열재와 배관피복 용도로 많이 사용됐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재료가 인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최근 충남 보령과 홍성을 비롯한 석면광산, 부산 연산동 인근 석면공장, 초등학교·지하철 등에서 석면 문제가 계속 불거지고 있다.

석면은 공기 중에 버니 형태로 날아다니다가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전달된다. 악성중피종과 폐암·석면폐 등 석면관련 질병은 석면을 취급하는 공장노동자에게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다. 공장 주변 수킬로미터 인근지역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친다. '소리 없는 대량 살상무기'인 셈이다.

석면 최대 피해자는 건설노동자

프랑스는 지난 95년 국영방송 2채널의 한 프로그램을 통해 프랑스 최대 노조인 CGT(노동총연맹)의 석면관련 자체 조사결과를 방송했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프랑스에서 95년 한 해 동안 석면에 의한 직업병으로 숨진 노동자가 3천명에 달했다.
국내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100만명당 13.9명이 악성중피종에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에서는 최근 4년간 악성중피종으로 산재보상을 받은 사례가 148건이었다. 유럽에서 석면으로 인한 악성중피종 환자는 매년 1만여명, 폐암 환자는 2만여명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70년대에 사용된 1인당 석면 사용량(3킬로그램)이 약 15명의 악성중피종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석면은 66년부터 90년까지 방직산업에서 자동차 부품·난열재료·건축자재 등에 다양하게 쓰였다. 특히 2005년 기준으로 약 6천톤이 국내에 수입됐고 석면제품의 82%가 건축자재로 사용됐다. 아무런 안전장치나 규제 없이 들어온 석면이 무고한 노동자와 공장주변 서민들에게 막대한 인명피해를 끼쳤다. 돈만 챙기는 자본가들의 파렴치한 범죄행위가 정부의 묵인 하에 진행된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석면피해 사망자는 99년 16명, 2001년 24명, 2003년 33명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석면의 가장 큰 피해자는 건설현장노동자로 추정된다. 석면질환은 20~30년 오랜 잠복기 이후 발병한다. 이 때문에 개인질환으로 인식해 버리는 경향이 많다. 담배를 많이 피우는 경우 더욱 그렇다.

석면 피해자는 휴식기에도 호흡이 곤란하며, 반복적으로 호흡기 감염이 일어난다. 폐가 손상됐기 때문이다. 기침할 때 피가 보이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새마을운동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 유행한 것이 시골집에 슬레이트 지붕을 씌우는 것이었다. 이 슬레이트 지붕은 석면을 80%나 함유하고 있다. 새마을운동의 후유증이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대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업무 인과관계 입증 어려운 건설노동자

석면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은 한국석면추방전국네트워크(BANKO·Ban Asbestos Network Korea)와 더불어 석면피해자구제와 예방대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건설노동자들이 석면 피해로 산업재해보상법의 보호를 받기란 쉽지 않다. 업무상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고령으로 세상을 떠난 노동자들도 많고 아예 회사가 사라진 곳도 많다. 대부분 구두계약으로 일을 한 경우가 많아 피해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찾기도 힘들다.

최근 도심의 각종 뉴타운 난개발지역에서 고정적으로 작업을 하는 굴삭기 조종사들 또한 피해가 우려된다. 이들은 자영업 형태의 개인사업주다.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특별법을 제정하려면 이러한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특성을 잘 살펴야 한다.

건설산업연맹 노동안전보건위원회에서는 건설노동자 건강권 쟁취사업의 일환으로 원진녹색병원과 함께 석면피해자 상담·홍보·교육·건강검진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핫라인 상담전화(02-490-2097, 02-841-0293)도 열려 있다. 건설노동자를 대상으로 무료건강검진도 실시한다. 수도권의 배관공·용접공·닥트공·굴삭기운전자 등 석면피해 의심자를 상대로 다음달 1일까지 건강검진을 실시할 예정이다. 참고로 일요일은 이달 22일과 다음달 1일만 가능하다. 석면노출 가능성이 높은 작업을 10년 이상한 건설노동자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조합원은 지부로 연락하고, 비조합원은 건설노조 노동안전국(02-841-0293)으로 연락하면 된다.
 
 

<2009년 2월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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